인생의 촌극에 촌극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갑자기 왠 김춘수의 시냐고? 아니다. 이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님들이라면 이 이야기가 음식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고 계실 것이다.
나는 도마 위에 고등어 한 마리를 앞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무방비하게 놓인 고등어와는 달리 내 손에는 날이 시퍼런 식칼을 들려있다. 그래, 무서울 것이 하나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과 달리 내 입은 나도 모르게 “흐으…….”하는 신음을 내고 있었다. 이런 바보 멍청이, 고등어구이를 한다면서 생물 고등어를 사 오면 어쩐단 말인가, 하다못해 토막이라도 좀 쳐서 오든가. 내장만 겨우 제거했을 뿐 대가리가 덜렁 덜렁거리는 채로 말이다. 어쩐지 그냥 달라고 할 때 나를 보는 마트 직원 아주머니의 표정이 영 이상야릇하시더니……. 나는 울상을 지으며 눈앞의 고등어를 이곳저곳 찔러 보았다.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다. 얼마 전에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적은 수첩에 큰아이가 콩자반 반찬이 장난감인 줄 알고 가지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았던가.(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서는 콩자반 반찬을 그때까지 한 번도 집에서 먹은 적이 없었다.)아이에게 많은 음식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그래, 할 수 있다. 떨리는 손으로 힘차게 대가리와 몸통 사이로 칼을 내려쳤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기껏해야 칠 년 전인가 팔 년 전인가의 일기 중의 한 부분이다. 지금이야 그까짓 것. 하고 조금 어설퍼도 뚝딱 구이용으로 손질하겠지만 적어도 20대 중반의, 아직 경험치가 많이 딸리는 초보 가정주부인 그때의 나는 그랬다.
사실 나는 생선을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비린내도 비린내지만 가시를 발라 먹는 게 영 어설프다. 우리 이여사님이야 “이 귀하고 맛난 것을 왜 못 먹냐?”라며 구박을 하시겠지만 어쩌겠는가. 영 젓가락이 가질 않는걸. 지금이야 그 짭짤하고 풍미가 가득한 기름진 맛을 알게 되었다지만 아직도 가시를 바르는 모양새가 영 어설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손재주가 없다.)
아무튼 엄마는 그런 내게 항상 어떻게든 생선을 먹이려 무진 애를 쓰셨다. 어쩌다 시장에 나온 큼지막한 갈치를 가을 무와 함께 빠알간 양념에 짜글짜글 졸여 주시기도, 꾸덕꾸덕하게 잘 마른 과메기를 마늘쫑과 함께 김에 싸 내 손에 들려주시기도, 제사상에 오를 만큼 잘생긴 굴비를 통으로 구워 주시기도 하셨다.(지금 생각해도 의문인 게 못해도 삼자짜리(30cm이상) 생선을 어떻게 오븐도 없이 골고루 익히셨는지 진짜 미스테리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기대를 가열차게 외면했더랬다. 물론 그때마다 엄마의 지청구가 밥상머리를 날아다녔지만 그래도 취향이 아닌 것을 어쩌겠는가?
그런 내가 유일하게 먹던 생선이 고등어 구이었다. 그 얇은 껍질의 씁쓸한 맛과 두툼한 살점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 맛이라니. 커다란 살점을 밥과 생김에 싸 간장에 콕 찍어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자잘한 살점을 발라내어 밥과 함께 쓱쓱 발라먹는 것도 근사하다. 그러나 잔가시 하나 없는 그 큼지막한 살점이 주는 포만감이라니. 그만한 호사가 어디 있을까.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국 그날 내가 구운 고등어는 김춘수의 시처럼 고등어구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그 미지의 무언가가 되었다. 서툴게 뒤집은 탓에 살점은 다 부스러졌고 심지어 제대로 익히지 못해 밥 먹기 직전 다시 후라이팬으로 돌아가야 했었다. 덕분에 식사 시간이 한 시간이나 늦어진 것은 덤이다. 그러나 서툴게 발라낸 살점을 아기새처럼 열심히 받아먹는 아들들이 어찌나 신통하고 고맙던지, 그리고 생선구이라는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는 미지의 그 무언가를 성공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했던지. 지금이야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 실소가 나는 촌극이지만 말이다. 뭐, 촌극이면 어떠랴. 그런 촌극 하나하나가 모여 근사한 결과물이 나온다면 그것만큼 감동적인 게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