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읽으며
한동안 나는
늘 무엇인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애썼다.
어쩌면 아니라 해도
여전히 내 안에는 그 무엇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다.
돌아가신 어머님께서는 아침마다 출근길에 나를 부르시고 ”아무리 바빠도 여기 꽃 핀 것 좀 봐라. 이 꽃을 볼 때마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낀단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의 나는 늘 바쁘고 치열했다. 바쁜 출근길에 들려온 어머님의 그 말씀은 그저 귀찮게만 여겨졌다.
박찬국 교수님의 책『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에는 일본 시인 마쓰오 바쇼의 시가 인용되어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냉이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울타리 옆에
시인은 울타리 옆에 피어난 존재감 없는 냉이꽃을 경(敬)이라는 감정 속에서 신비롭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시가 인간과 사물을 특정한 조건들로 환원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바라보려 한다는 점에서 과학의 언어보다 더 엄밀하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평범하게 세월을 살아내신 어머님의 눈은 어떤 유명한 시인의 시선보다 더 깊고 통찰력 있으셨다. 그리고 이제,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도 비로소 조금씩 그 눈을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하이데거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위기를 모든 존재자에 깃들어 있는 성스러움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고 보았다. 존재의 성스러움이 지워진 세계, 인간과 만물이 기술적 수단이나 자원으로만 여겨지는 세계는 결국 ‘궁핍한 세계’일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아마 어머님은 하이데거의 글을 읽어보신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통찰력을 지니신 것은 어머님이 언제나 세상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셨기 때문이었다. ‘숨 쉬듯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늘 말씀하시던 어머님의 그 시선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존재를 성스럽고 소중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힘이었다.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통해 하이데거를 다시 만나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마고 데이(Imago Dei)'를 떠올렸다. 이 책 안에서 하이데거는 존재의 성스러움을 통해, 우리 각각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언젠가부터 나 또한 무엇이 되기 위한 삶보다는 그저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자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 와서 무엇이 되진 못했을지라도, 나라는 존재 자체에 깃든 성스러움이 내가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되어줄 것이라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