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를 읽고

독서모임 발제

by 박 윤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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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저자의 서문에 담긴 다음 문장 때문이었다.


‘... 지금까지 내 삶에 깊고 뚜렷한 흔적을 남겼던 이 책들은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 내가 들었던 것과는 무척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p.9)


나 역시 궁금했다. 청소년 시절과 대학 시절에 읽었던 그 책들이 이제 중년의 삶을 지나가는 지금의 내게 다시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여전한 지 아니면 전혀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다가올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시작한 서클(그때는 동아리 대신 서클이라 불렀다.)이 ‘청람’이라는 독서서클이었다. 중앙여고와 인창고등학교 출신이 함께 했던 동문 연합서클이었는데, 내가 10기였으니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없지 않다. 우린 매주 금요일, 지금은 없어진 대학로 가톨릭회관에 모여 독서 토론을 했다. 돌이켜 보면 독서보다는 친목이, 토론보다는 애프터(지금의 2차)가 더 중요한 모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신입생 시절 처음 접했던 몇 권의 책은 지금까지 내 삶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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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 목록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민중과 지식인』, 그리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이 세 편에 관한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아마 국영수 중심 과목을 달달 외우며 공부하고 학력고사(지금의 수능)를 치른 후 대학에 들어온 나에게 이 책들이 보여준 세상은 전혀 다른 현실이었다. 신념과 가치라는 단어의 의미가 처음으로 각인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 스무 살의 나는 이 책들이 지닌 깊이와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소하고 어려웠으며 여러 면에서 오히려 무감각하게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억과 궁금증으로 『청춘의 독서』를 읽게 되었다. 아쉽게도 책에 소개된 작품 가운데 예전에 읽은 것은 많지 않았다. 열다섯 편 중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맹자』, 『광장』, 『사기』, 『역사란 무엇인가』, 이렇게 여섯 편뿐이다. 그중에서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은 『맹자』, 『사기』,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맹자』와 『사기』는 이후 인문학 강좌를 통해 반복해서 접했기 때문이고, 『역사란 무엇인가』는 대학교 1학년 교양과목 리포트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 이러한 구성으로 책을 선정하라고 한다면 어떤 책들을 선택했을까 궁금해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다섯 번 이상 다시 읽은 책들이다.


정석경의 『숲 속의 방』, 박경리의 『토지』, 김훈의 『칼의 노래』, 이광수의 『단종애사』,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


이렇게 열두 권이다. 쓰고 보니 문학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책들은 살면서 꼭 한 번쯤은 접하고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다시 『청춘의 독서』로 돌아와 이번 독서모임에서는 『맹자』와 『역사란 무엇인가』 두 작품을 중심으로 발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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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p.130~131

... 맹자는 공동체의 질서를 중시했다... 인간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기적 동물이다. 사회를 만들어 생활하는 과정에서 협동 정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체를 위한 자기 근친성이다. 희생 같은 ‘사회적 재능’을 전환시켜 왔다. 이타 행동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유전적 근친성이다. 이타 행동이라는 재능은 먼저 유전적 근친성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표출되어 낮은 사람에게로 확장된다... 맹자의 사회사상 중심에는 가족이 있고, 그중에서도 으뜸은 부모에 대한 효도다.


유교 윤리의 핵심은 가족윤리이다. 가족은 유교 세계관의 근간이며, 부모와 자녀 간 사랑을 확장하여 이웃과 사회, 나아가 세계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또한 유교는 공동체적 생명의식과 연대를 강조한다. 인간은 하늘의 본성을 부여받은 존재로 서로 긴밀한 연대 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는 하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연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 연대가 어우러진 구조이다. 이러한 관계는 차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와 역할을 인정하는 질서를 의미한다. (한국인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中)


또한 이러한 관점은 그리스도교의 이마고 데이(하느님을 닮은 존재) 그리고 공동체성 이해와도 통한다. 또한 가족과 화해의 중요성이라는 점에서 다음 성경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3–24)


하느님께 드리는 공경보다 사람과의 화해가 먼저라는 가르침이다.


발제 1.

맹자·유교·그리스도교에 나타난 가족관을 오늘날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부모가 자식을 향해 느끼는 마음, 자식이 부모를 향해 느끼는 마음은 인간에게 본래 주어진 본성인가? 아니면 사회와 문화 속에서 형성된 가치와 학습의 결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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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저자는 랑케의 『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를 읽은 경험과 비교하며 『역사란 무엇인가』가 주는 감동과 충격을 이야기한다.


저자와 달리 학창 시절 나에게 세계사는 그저 암기 과목에 불과했다. 역사적 사실과 인물, 연도를 달달 외우는 과목이었을 뿐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랬던 나에게 갓 신입생이 되어 교양과목 시간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리포트를 쓰는 작업은 너무나 어렵기만 했다.


그럼에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와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이 두 문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가 절대적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해석의 과정을 통해 다르게 이해된다는 사실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p.306

...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인 것이다.


p.314.

.. 역사책을 볼 때 언제 집필되었고 언제 출판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때로는 이런 것이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저자는 스무 살 때 처음 이 책을 읽고 인생의 고비마다 지속적으로 읽었다고 했다.


한강 작가 또한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가 되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中에서)라는 문장을 통해 죽은 이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의 현재 역시 과거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힘든 현실을 겪으며,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도 서로 다른 이념과 위치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해석하고 기억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경험조차 각자의 위치와 시간 속에서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발제 2.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는 것이다.’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이렇게 같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되풀이하여 읽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삶의 자리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듯, 과거의 나와 이어진 현재의 나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며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이번 나눔을 통해 각자의 시간 속에서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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