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 자공이 물었다. “종신토록 받들어 실천할 만한 한 마디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서(恕)가 아닐까?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이는 공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논어 위령공’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는 남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덕목을 말하는 서(恕)를 강조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논어(論語)’는 공자가 직접 서술한 것이 아니다. 논어는 그의 후학들이 공자의 언행을 모아서 편찬한 책이다. 요즘 말로 말하자면 일종의 ‘인터뷰’인 셈이다. 당시 이들이 ‘인터뷰(Interview)’라는 영어 단어를 알았을 리는 없겠지만, 논어 편찬 과정은 인터뷰 과정과 흡사하다.
‘인터뷰’의 사전적 정의는 기자가 취재를 위하여 특정한 사람과 가지는 회견 또는 면접 등을 의미한다. 인터뷰어(interviewer)가 인터뷰이(interviewee)를 상대로 생각을 공유하고 기록을 남기는 데 인터뷰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공자는 인터뷰이, 그의 후학들은 인터뷰어로 볼 수 있다. 논어는 그러한 인터뷰에서 나온 산물이다. 요즘 인터뷰는 신문·방송사 기자들과 유명 연예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위 친구나 가족들,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 역시 인터뷰의 한 과정이다. 누구나 매일, 인터뷰이 혹은 인터뷰어가 되어 소통하며 살고 있기에.
오늘날 우리는 각종 매체의 발달로 인터뷰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각종 방송에서는 유명인사의 인터뷰가 방영되고, 신문·잡지의 지면에서도 인터뷰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탄생한 SNS 덕분에 보통사람들도 인터뷰 홍수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트위터를 통해 소위 ‘오피니언 리더’와 인터뷰를 하고,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인터뷰 과정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예(禮)’의 정신이 결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SNS는 첨예하게 대립이 되는 사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을 때 인신공격과 감정적 발언이 잦은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현상은 개인 메시지가 타인에게 공개적으로 노출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더 가까이 사내 열린게시판은 어떠한가. 열린게시판은 직원들의 관심사와 의견을 엿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공사 내 유익한 정보와 이슈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인터뷰’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보기 힘든 험담이나 영양가 없는 농담조의 이야기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입으로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이 지금은 한 번 올린 글은 되돌릴 수 없다고 바뀌어야 할 형국이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열린게시판의 순기능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익명성이 보장되는 자유는 배려와 질서 속에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우리의 전통에는 상대방과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禮)’의 정신이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삶의 마음가짐을 공유하여 세상이 나아진다면 그것만큼 값진 것도 없다. 오늘날과 같은 인터뷰 홍수시대에 필요한 것은 ‘예(禮)’라는 제방이다. 이미 인터뷰할 여건은 충분하다. 다만 거기에 덧붙여 타인의 마음 헤아리기를 내 마음처럼 하는 태도가 함께 한다면 적어도 물난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논어’라는 인터뷰 모음 글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이유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배려하는 ‘예(禮)’의 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인터뷰의 고전(古典)이 탄생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