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sienna May 09. 2016

알면 알수록 진국인 배우,
마크 러팔로

고난과 역경을 딛고 배우로서 자리매김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얼굴이 된 배우, Mark Ruffalo 마크 러팔로. 아무래도 한국 관객에게는 <비긴 어게인>에서 거듭된 실패로 인해 삶에 쪄들어 있는 음악 프로듀서 으로, 혹은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차분함과 분노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브루스 배너/헐크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최근 또 한번 인상 깊은 연기를 남겼는데, 이는 바로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작품상에 빛나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열혈 기자 마이크 레젠데스다. 가톨릭 교회의 치부를 다시 한번 드러냈을뿐더러 정의로운 언론과 탐사보도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마치 오뚝이를 연상시킬 법한 그의 인간승리 이야기는 팬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보통 한 배우에게 관심이 가면 작품에서 비추어진 그의 모습과 현실 속에서 내가 모르는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별개라고 생각하며 배우는 그저 배우일 뿐이라고, 배우로서만 좋아하자는 위주지만 마크 러팔로는 왠지 모르게 알면 알수록 진국인 배우이자 본받을 만한 사람인 것 같다.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스텔라 애들러 연기학원'을 다니며 배우의 꿈을 키웠던 젊은 시절 마크 러팔로는 지금까지도 그의 스승이 한 말을 잊지 않고 있다.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너는 책임이 있다. 네가 살고 있는 문화를 반영할 것, 그 문화를 위해 어떻게든 받은 것을 되돌려줄 것, 풍부한 정치적 지식을 가질 것,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것,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말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말할 것."

이렇게 배우로서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러팔로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 넘는 오디션을 보며 연기의 문을 두드렸다. 이 이야기가 바로 그 유명한 "800번의 오디션" 이야기다. 그가 계속해서 좌절했던 이유 다름 아닌 그의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훈남인 그의 얼굴이 오디션을 보는 감독과 작가들 눈에는 성이 안 찼나 보다. 그저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키가 유독 큰 것도 아니고 (173cm 정도) 특출 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닌 그였기에 거의 10년이란 기간 동안 바텐더, 도어맨, 페인트공, 나무 심기 아르바이트 등등 온갖 일을 하며 본인이 직접 운영한 극단 활동과 병행해가면서 살았다. 오히려 이런 끈기와 노력이 그를 특출 난 연기파 배우로 성장시킨 것이 아닐까--

"[바텐더로 일하던 시절] 제가 만든 술이 꽤 유명해져서 손님들이 그걸 '마카리타'라고 불렀어요."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었던 걸까. 1998년 극작가 케네스 로네건의 연극 <이것이 우리의 청춘>에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케네스 로네건의 장편영화 데뷔작 <유 캔 카운트 온 미>에 주연 자리를 꿰찬다.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과 여우주연상 후보로 빛나는 이 작품을 통해 러팔로는 몬트리올 국제 영화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고,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젊은 말론 브랜도를 연상시키는 혜성 같은 신인 배우로 통했다.

"캐스팅 디렉터들이 '대체 어디서 왔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답했죠, '무슨 소리냐, 십 년 동안 여태껏 당신들 등잔 밑에 있었는데 어딜 보고 있었던 겁니까?'"

영화판에서 드디어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때, 그는 작품 활동 중 어느 날 깨어나도 무섭도록 선명한 악몽을 꾼다. 마치 자신이 뇌종양을 앓고 있는다는 꿈-- 미친 소리 같지만 정말 뇌종양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촬영장의 팀닥터와 친했던 그는 다음 날 아침 그녀에게 물었다. "날 미친 사람 취급할 지도 모르겠는데, 어제 밤에 꿈을 꿨어. 왠지 나 뇌종양이 있는 것 같은데... 한 번 알아볼 수 있을까?" 황당하지만 진심이었던 그의 질문에 팀닥터가 답하길, "그래, 당신 미친 것 같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두려움 속에 살 필요는 없으니 내일 CT Scan을 받아보자."

과연 하늘에서 그에게 경고를 한 것이었을까-- 그 결과, 그의 꿈이 맞았던 것이다. 그의 왼쪽 귀 뒤쪽에 골프공만 한 종양이 발견되었고, 러팔로는 이 사실을 최대한 차분히 받아들였다. 물론 최악의 상황에는 정말 죽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청신경 종양이라고 확인되었을 때 즈음 그는 이미 왼쪽 귀의 청력을 7퍼센트 정도 잃었을 때였다.

"왼쪽 청력을 잃을 확률이 80%이고, 안면신경마비가 올 확률이 20%입니다. [수술을] 서두르셔야 합니다."

당시 신혼이었던 러팔로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뇌종양을 발견하고 2주 뒤면 첫 아이를 낳을 아내에게 그는 차마 남편이 뇌종양을 앓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제 아내는 제 동반자이자 제 친구였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그 사람한테 차마 말을 못했어요.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게 어떻게 말해야 될지를 몰랐어요. 그래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기다렸죠. 솔직히 저는 제가 죽는 줄 알았어요. 아들이 태어날 때...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요."

2주 후, 러팔로의 부인은 아들을 순산하였다. 그리고 또 일주일 후, 고심 끝에 뇌종양에 대해서 고백한 그는 아내 외에 단 두 사람에게만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렸다.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 그리고 그 당시 매니저. 마지막으로 수술 바로 직전에 그의 가족에게 소식을 알렸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분명 자신의 비극을 그들의 비극으로 생각할 것을 알았기에,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의 무게에 설상가상 지인들의 걱정까지 안고 갈 기력이 없었다. 본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파하는 걸 보기 싫었던 그는 담담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저도 모르게 갑자기 제 종교가 생각나긴 하죠. [수술 들어가기 전에] 하느님한테 기도했습니다, '제발 제 얼굴을 앗아가지 마시고 제 목숨을 앗아가지 말아주세요. 얼굴이 없으면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목숨이 없으면 정말로 가족을 부양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에 청력은 가져가셔도 됩니다.' 근데 거래할 때 조심하세요-- 그 조건들이 진짜로 꽂힐 수도 있거든요. [수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왼쪽 귀 청력을 잃었더라고요. 둘째 날, 의료진이 들어와 제 얼굴을 보더니, 서서히 안면신경마비가 오고 있었어요. 넷째 날, 눈을 못 감았어요. 그리고 얼굴 왼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래도 계속 움직여라.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러팔로는 매일 아침 한 시간 동안 얼굴을 움직이려 했다. 찡그리고 찌푸리고 웃어보고 끝도 없이 어떻게든 움직였다. 그리고 걸었다. 정말. 많이. 걸었다. 이 외에 침도 맞고, 마사지도 받고, 수많은 치료를 받아봤지만 이 두 가지는 매일매일 꼬박꼬박 지켰다. 정신없는 와중에 아내와의 관계 또한 엄청난 관건이었다 (아니, 가장 큰 관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이었고, 이제 갓 태어난 아들까지... 한참 깨 볶고 있어야 할 부부생활 초창기 때, 뇌종양은 너무나 많은 것을 시험에 들였다. 그들의 사랑, 우정, 믿음, 의리 -- 그 모든 것. 그러나 러팔로의 아내 선라이즈 코이그니는 지치지 않고 남편을 간호하고 내조하였다. 이 부부의 사랑은 흔들리기는커녕 불에 던져지면 더 단단해지는 쇳덩어리처럼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고 깊어졌다.


안면신경마비가 온 지 10개월째 -- [많은 이들은 6개월 넘짓으로 알고 있다] 의료진은 러팔로에게 아마 신경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별 다를 것 없었던 어느 날 아침, 별 다른 일이 일어났다.

바로 눈 밑에 근육이 살짝 -- 정말 살짝-- 움직인 것이다. 곧바로 아내에게 소리쳤다. 얼굴이 움직인다고. 러팔로와 아내는 그 자리에서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서서히 그의 얼굴은 돌아오기 시작했고, 끝난다고만 생각했던 그의 배우 생활이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제 감정적 회복은 제가 어떤 인간인지 이해하게 되는 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되면, 내 안에 있는지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게 되죠. 그래서 그런지 정말 희한하게도 제게 그 뇌종양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전화위복 같았습니다."

어쩌면 뇌종양이 있었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러팔로는 연기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애정을 더더욱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말한 대로 정말 전화위복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이터널 선샤인>, <콜래트럴>, <조디악>, 그리고 <셔터 아일랜드> 등등, 수많은 작품에서 조연이던 주연이던 굵직한 존재감을 지닌 카멜레온 같은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뇌종양 수술 뒤 7년 후, 러팔로에게 또 다른 시련이 -- 아니, 뇌종양보다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헤어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그의 남동생 스캇 러팔로가 2008년 12월 1일, 머리 뒤편에 총상을 입고 발견된 것이다. 남동생은 병원으로 곧바로 후송되었지만 결국 사망했다. 타살로 추정되었던 이 사건은 해결되지 못하고 미제 살인사건으로 마감되었다.

"제 인생 평생의 풀리지 않는 의혹이 될 겁니다.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겠어요? 그냥 안고 살아가는 거죠."

충격에 휩싸였던 러팔로는 진지하게 진로 변화를 고민하고 있었다. 또 한번 배우 생활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고비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런 그를 잡아준 이는 바로 부인 선라이즈 코이그니. 2010년 <에브리바디 올라잇>이라는 작품에 참여하길 추천했다. 하지만 러팔로는 이 영화로 배우 생활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 그러나 마지막일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이 작품은 촬영 내내 그에게 연기에 대한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고, 그 결과로 그는 생애 첫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극 중 맡았던 배역 은 죽은 남동생을 염두에 두고 연기한 역할이기도 하다.

"[동생은] 인생을 삼켜먹을 듯했고, 아름답고, 섹시하고,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는 멋진 남자였습니다. 이 작품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그에게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앞서 말했던 마크 러팔로의 연기 스승 스텔라 애들러의 가르침을 기억하려 한다. 예술가로서 그의 문화에게서 받은 것을 되돌려 주라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말하지 못 하는 자들을 위하여 말하라 하였다.


러팔로는 이제 <에브리바디 올라잇>, <폭스 캐처>,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로 세 번 씩이나 아카데미 시상식 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던 A-list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이다. 이러한 그는 여기서 공인으로서의 행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러팔로는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널리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지도 있는 배우로서의 자신의 이름을 빌려 인도주의자 그리고 사회/환경 운동가로서도 열렬히 일하고 있다. Water Defense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여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깨끗한 물을 위해 뛰고 있고, 최근에는 수압파쇄에 의한 환경 영향과 위험성을 강조한 다큐멘터리 <Dear President Obama: The Clean Energy Revolution is Now>

[오바마 대통령께: 청정에너지 혁명은 지금입니다]의 제작 겸 내레이션을 맡았었다. 정치적으로도 완고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로 선언한 지 오래다.

"우리는 지금 우리 환경과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나갈 수 있는 수단과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를 위한 이 혁명에 한 발자국 다가서려면 그저 어느 정도의 의지와 조예와 교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시작하세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지식을 쌓고 우리 모두 같이 가꾸어나갈 이 아름다운 세상과 함께 하세요."

그가 이리 열정적으로 환경보호 운동에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자손들의 아이들을 위해."

왠지 모르게 그가 연기하는 슈퍼히어로 헐크보다 더 영웅 같아 보이는 실상의 마크 러팔로이다. 배우라는 타이틀이나 사회/환경 운동가라는 타이틀을 떠나 강인하고 헌신적인 한 여인의 남편이자 이제는 세 아이들의 아버지이다. 그런 그는 아직까지도 연기에 있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그의 한계는 끝도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러팔로. 본인도 깜짝깜짝 놀라는 와중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단 한 번도 그 누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지날수록 그 맛이 더 깊어지는 와인처럼 마크 러팔로는 나이가 들면서 그의 매력이 더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사람으로서도 본받을 만한 배우인 것 같다. 그의 차분하지만 유쾌한 성격, 꾸준히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려는 의지와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끈기, 배우로서 그리고 그저 공인으로서 개념찬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 눈여겨보고 기대해 볼만 하다.




알면 알수록 진국인 배우, 마크 러팔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