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sienna May 11. 2016

전설이 되어버린 그, 히스 레저

Heathcliff Andrew Ledger (1979 ~ 2008)

2016년 8월이 되면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개봉할 것이다. 과연 자레드 레토가 선보이는 새로운 조커의 모습은 어떨지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2008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리게 했던 <다크 나이트>의 조커, 히스 레저가 생각난다. 그도 물론 그때 당시, 팬들의 의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짤막한 티저 예고편에 나왔던 그의 웃음소리 한 방으로 팬들의 의심을 기대와 설렘으로 전환시켰었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대 최고의 조커이자 최고의 악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뇌리에 박힐 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사망한 히스 레저. 그를 추모하고자 썼던 예전 개인 블로그의 글을 브런치로 옮기면서 다시 한번 재조명하려 한다.


2008년, 요즘 최고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는 바로 Heath Ledger 히스 레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아름다운 외모와 소리 없이 불꽃 튀는 카리스마, 점점 더 빛을 발휘하는 연기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여기 없다. 겨우 28이었던 그, 아직 완벽하진 않았지만 아름답게 꽃을 피고 있던 배우였다. 그의 죽음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기에 더더욱 충격이었고, 후에 개봉한 영화 <다크 나이트>의 팬으로서 그의 죽음은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여기 그의 인생에서 큰 영향을 끼쳤던 작품들을 거쳐가며 히스 레저는 어떤 인물이었나 살펴보려 한다. 2008년 봄, 할리우드는 엄청난 젊은 배우를 잃었다.

나의 모든 야망은 내 머릿속에 있다. 그 깊은 숲 속에서 여행 중이다.


어렸을 적부터 연극에 대한 열정을 품었던 히스 레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모든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호주 TV시리즈 <Sweat>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16살 시절의 그는 오디션 때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의 스크린 테스트를 보고 자연스럽게 내 눈동자가 그에게 돌아갔다.
이 소년은 정말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
- <Sweat> 프로듀서, 존 랩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의 아름다운 미소였다.
엄청난 포스가 느껴졌던 그는 그냥 바로 호감이 간 친구이자 배우였다."
- <Sweat> 동료 배우, 멜리사 토마스 덩클리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의 조커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은 그가 조커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조커가 된 것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순식간에 매료되는 그의 연기는 배우 인생 초창기 때부터 모락모락 피고 있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는 자신을 '캐릭터'라는 창에 가두어 놓고 꽁꽁 묶여있다가 '컷'을 듣는 순간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자기 자신을 튀어나오게 하는 배우였다.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내가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흥미를 잃는 그 날, 그냥 걸어나가겠다.


<Sweat>은 첫 번째 시즌 이후 취소되었지만 레저는 좌절하지 않고 시드니로 향했다. 그의 꿈과 열정을 위해. 어린 나이에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 청소년은 예나 지금이나 드물지만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것을. 그런 그는 시드니에 있는 동안 미국 TV시리즈 <Roar>의 오디션에 참가했다. 그의 오디션 테이프는 바로 미국으로 보내졌고, 미국에 있던 관계자들은 "당장 이 아이를 데리고 와라"라고 답했다.

"배우 세명 중 한 명이 히스였다. 떨고 있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바로 그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 <Roar> 감독, 제프리 레비

또 한 명의 감독 숀 캐시디는 "시리즈가 성공을 하던 안 하던 히스 레저는 분명히 성공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메라는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서는 언제나 빛이 났었다. 그 와중에 어두운 면 또한 있었고, 위협적인 아우라도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심을 단단히 사로잡는 매력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스타로 성장해갈 때 절대로 자만하지 않았던 배우였다. 오로지 일에 충실했고 함께 일하는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톱스타였건 청소하는 아저씨였건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태도로 대했다. 젊은 동료 배우들과 신인배우들은 항상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존재감을 느꼈고 그들은 물론 베테랑 선배 배우들도 그에 대한 무언의 존경심을 표했었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영원히 배우로 머물 것이다.


<Roar>도 두 번째 시즌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레저는 이 것을 자신의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로스 앤젤레스로 가기로 결심했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바라는 것 하나 없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잃을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 그는 18살이었다. 그러나 호주 출신이라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고 미국에서의 시간은 그저 잠시, 다시 호주로 돌아와 <Two Hands>라는 영화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선보인 금발머리의 잘생긴 소년 이미지를 떨구고, 위험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짙은 머리의 남자 캐릭터에 마음이 설레었다. <Two Hands>는 결국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고 관객들은 '히스 레저가 예상치 못했던 연기력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깨우치는 작품이 되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유명해지기 전에도 어느 방 안에 들어오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며 '저 사람, 누구야?'라고 할 정도로 특별했다."
- <Two Hands> 감독, 그레고르 조던

결국 <Two Hands>는 미국에서 개봉하지 못했지만 그 후 히스 레저는 미국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의 주연을 맡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청소년 버전으로 바꾸어 놓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호주는 그의 능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은 규모의 영화나 드라마를 하던 배우가 미국에 가서 생애 첫 주연을 맡다니 그저 대단해 보였다. 지금까지도 그가 여주인공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은 이 작품의 명장면으로 추억되고 있고 1999년 당시 영화 흥행을 성공한 이후 할리우드의 모든 스튜디오들은 '히스 레저'라는 이름을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러브콜이 잇따른 가운데 그는 자기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배우였다. 본인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만들 대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었다.

"청소년 캐릭터나 멋진 소년 캐릭터들은 흥미롭지 않았다. 물론 언제까지나 내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대본을 고를 때] 나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고, 내 선택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고, 내가 궁극적으로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를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할 수 있어야 했다." - 히스 레저
촬영하는 넉 달 동안 '액션'과 '컷' 사이에서 내 집중력과 시간, 스트레스와 긴장감, 그리고 내 사랑과 열정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일을 안 할 땐 영화계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리고 그는 깊이 파고들 대본을 찾았다.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에서 같은 호주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멜 깁슨의 아들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의아하게도 오디션 당시 그는 자신의 연기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 감독과 그 외 관계자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영화 관계자들은 그를 놓지 않았고, 촬영을 시작했다.

"그는 아주 능력 있는 배우다. 사람들이 이른바 말하는 정체불명의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화면 속 그는 엄청나게 빛나고 자연스럽게 호감을 사는 사람이다." - 멜 깁슨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의 성공을 넘어 히스 레저는 <기사 윌리엄>에서 주연을 맡았다.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 훗날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재밌고 특이한 스타일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매력에 이끌려서 이 영화를 택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진실돼 보였다. 영화 관계자들은 누가 봐도 매력 있는 히스 레저가 주연인데 별다르게 홍보할 필요가 있겠냐는 듯이 그의 원맨포스터로 밀고 나갔다. 친구들은 운전하면서 그의 포스터를 보고 자랑스러워했지만 정작 본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마치 이제 자신에 대한 모든 것들이 물건화 되는 것이 심히 불편하다는 것처럼.

기자들은 배우인 나에 대해서 꽤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사적으론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다.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 호주에 가끔 놀러 오곤 했다. 친구들이랑 나가서 저녁이나 먹자고 초대하면 히스는 가고 싶지 않다고, 또 누가 자기와 친구들을 불편하게 할 것 같다고 집 안에 박혀만 있었다. 파파라치가 또 그의 사진을 찍을까 봐 걱정했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를 밝히던 불빛이 서서히 꺼져가는 걸 보고 있었다."
- <Sweat> 출신 절친한 동료 배우, 멜리사 토마스 덩클리

프로모션 인터뷰 당시

기자: 누가 당신에게 사적인 질문을 하면 속으로 '이거 대답하기 싫다' 하시나요 아니면...?

히스 레저: 그렇죠. (웃음) 기자님께서 저한테 사적인걸 더 물어보시면 그냥 저 쪽으로 걸어나가겠죠 (웃음). 그래도 몇 마디는 하겠죠. 그렇지만 그건 제 인생, 제 삶이고... 저는 오늘 제 작품에 대해서 말하러 왔어요.


<기사 윌리엄>은 호평과 혹평사이로 지나갔고 레저는 사람들의 예상을 꺾으며 <몬스터 볼>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돌아왔다. 이를 통해서 전 세계 관객들은 히스 레저의 폭넓은 연기에 반하게 됐다. 영화가 끝난 이후 그는 호주로 돌아가 전에 인연을 맺었던 그레고르 조던 감독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며 <Ned Kelly>라는 작품을 시작했다. 이제 정말 톱배우로 등극한 히스 레저의 주변에는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 파파라치가 수도 없이 따라다녔다.

"나는 당연히 일만 할 것이다. 만약 누가 일 외에 다른 것을 원하고 이 바닥에 들어섰다면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에 대해서 어느 대담한 말을 남길 수는 없지만... 아름다움과 공포스러움을 동시에 갖춘 곳이다. 물론 이 곳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와 내가 얻고 있는 수많은 기회들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소름 끼칠 듯이 무서운 곳이다." - 히스 레저
스포트라이트 밖에 서있는 것이 훨씬 편하다. 아니, 사실은 그게 더 기쁘다. 차라리 밖에 있고 싶다.


2004년, 히스 레저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널리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완벽한 대본과 완벽한 감독님에게서 걸어나갔다면 내가 바보였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큰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에 있어서 색다른 길들을 걸어가는 것이 나의 의무였고 항상 내 캐릭터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물론 나의 의무였다. 만약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반응할지를 머릿속에 두고 작품을 선택한다면 정말 흥미 없는 선택들만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 히스 레저

관객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 수도 있는 '게이 영화'라는 위험한 라벨을 달고 히스 레저는 여리고 보호본능 일으키는 '에니스 델 마'를 마음껏 선보였다.

"나는 사랑의 느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마음속 깊이 꽁꽁 묶여있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건, 끝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이건... 그 소중한 상대방을 키스할 줄도 사랑할 줄도 안다. 그저 이 영화에선 그 사람이 남자일 뿐이다." - 히스 레저

히스 레저에게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때였다. 동료 배우 제이크 질렌할과의 우정도 쌓았지만 동료 배우 미셸 윌리엄스와의 사랑도 찾았기 때문이다.

<오프라> 인터뷰 당시

오프라: 두 분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나요?
제이크 질렌할: 그건 제가 대답할 수 있어요.
히스랑 나랑 키스했는데 미셸이 히스 아기를 임신했어요.

제이크 질렌할의 19금 발언(?) 대로 영화 촬영 뒤 히스 레저와 미셸 윌리엄스는 함께 살면서 새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5년 10월 28일, 그들의 사랑스러운 딸 마틸다 로즈 레저가 태어났다. 그로부터 그의 지극한 딸 사랑은 아주 유명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버지가 되는 것을 항상 꿈꿔왔던 히스 레저는 마틸다를 통해 인생의 최고점을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를 통해서 나 자신에 대해 더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죽음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 그녀 마음속에 내가 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이제 죽어도 좋다 라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딸의 인생 평생 동안 함께 있어주고 싶어서... 절대로 죽기 싫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향한 호평은 폭포처럼 끊이질 않았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히스 레저의 남우주연상 후보를 포함하여 8개 부문의 후보로 올랐다. 수상은 못 했지만 가정적인 그의 성격 탓인지 오스카 후보에 오른 기쁨은 딸을 얻은 기쁨에 비하면 작은 선물뿐이었다.

"히스 레저(Heath Ledger)는 성을 전설(Legend)로 바꿔야 될 것 같다 (웃음). 그는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 <브로크백 마운틴> 원작자, 애니 프룰스
나는 인생을 계획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지금.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중, 히스 레저의 고향 호주에서는 그다지 좋지 않은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주 출신의 인물이 잘 나가면 반드시 깎아내려야 한다는 이상한 신드롬 때문에 호주 파파라치들은 자발적으로 앞장섰다. 히스 레저는 대스타치고 파파라치와 상대하지 않는 배우였다. 하지만 이 때문에 '거만하다', '재수없다', '성격 더럽다'라는 말들이 떠돌아다녔다. 소문에 인하면 히스 레저가 파파라치에게 침을 뱉었다고 하는데, 이 일로 히스 레저는 파파라치의 '공공의 적 1순위'가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드니에서 영화 시사회를 하는 날, 기자들과 사진작가들은 히스 레저와 미셸 윌리엄스 부부에게 어린아이들처럼 물총을 쏘아댔다. 어이없는 장난에 속수무책하게 마음의 상처를 입은 레저는 호주가 자신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느낀 채 당장 짐을 싸고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파라치 물총 사건을 뒤로 하고 2007년 4월 5일, 그의 28번째 생일 다음 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를 맡기로 했다. 슬슬 원작과 전작 팬들의 부담감과 기대감을 안고 조커로 숨쉬기 시작했다. 일기장에 매일 조커의 입장에서 글을 써가며 수면 부족까지 더해지면서 레저는 점점 새로운 인물로, 조커로 진화하고 있었다.

"메이크업팀을 만나러 가야 하는 날이었다. 근데 히스 레저가 그 트레일러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오 저, 저 사람 히스 레저잖아. 나 대화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던 도중 그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안녕하세요, 저는 히스라고 해요'라고 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네, 알아요. 함께 일하는 거 기대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그는 너무너무 착한 남자였다."
- <다크 나이트> 동료 배우 (경찰 역), 키스 사라바카

키스 사라바카는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히스 레저의 조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었다. 온전히 조커였다. 마치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았고, 색달랐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공포스러웠다. 심지어 NG 한 번 없다는 대배우 마이클 케인이 대사를 까먹을 정도로 히스 레저의 조커는 너무나도 위협스러운 포스의 소유자였다. 극장에서 영화를 세 번이나 봐도 그가 나오는 장면 하나하나는 심장을 더욱더 빨리 뛰게 만들었고 언제 또 나오나 하면서 기다리게 만들었다.

"몇몇 사람들이 [히스가 죽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개봉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의견을 묻는다면 그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행여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그의 신념과 그에 대한 모욕이다. 그 어느 장면도 짤리면 안 된다. 이 영화야말로 그가 만들고 싶어했던 작품이다. 히스 레저는 훌륭했다. 이 역할에 말 그대로 혼신을 다한 환상적인 배우였다. 그는 분명히 모든 이들이 이 영화를 봐주길 바랄 것이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 나한테 묻더라. 영화 보는데 느낌이 이상하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히스를 볼 수 있다는게 즐겁다. 히스의 가장 큰 능력은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었고, 이 작품은 그에 대한 축제이다. 그 어느 배우가 사랑받고 싶어하지 않겠나? 그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진가를 못 알아본다면 관객으로서 우리는 무례한 것이다. 배우였던 그를 존중해주자. 그가 평생 했던 일이다. 그가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이다."
- <다크 나이트> 동료 배우 (브루스 웨인/배트맨 역), 크리스찬 베일

반면에 그의 사생활은 더 엉켜가기만 했다. <다크 나이트>의 촬영이 끝나고 한 달 뒤, 미셸 윌리엄스와 결별했다. 이별의 상처도 깊었지만 매일같이 딸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픔이었다. 부인과의 이별을 감당하는 시간도 잠시, 레저는 마치 마음의 상처를 일에 묻히려듯이 런던으로 가서 새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 합류했다.

과거에서 무엇 하나라도 빼면 모든 것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성탄절 휴식 후, 레저의 몸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기운이 없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곤한 기색이 없어 보이지도 않았다. 잠자는 것이 좀 힘들다고 동료 배우한테 살짝 하소연을 한 적도 있다. 날씨가 안 좋은 날들이 많았고, 촬영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레저의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2008년 1월 20일, 그는 뉴욕으로 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이틀 뒤, 그는 모두의 곁을 떠났다. 전부인 미셸 윌리엄스는 소식을 들었던 당시 스웨덴에 있었고, 바로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 <다크 나이트> 동료 배우, 키스 사라바카
"고통스러웠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동료 배우, 번 트로여
"나중에는 그의 딸 마틸다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 어린 소녀가 크면 곁에 아버지가 없을 거라는 것...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모를 거라는 것... 막막할 뿐이었다. 얼마나 우울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마틸다를 두고 히스는 절대 스스로 인생을 끊었을 리가 없다."
- <Sweat> 동료 배우, 멜리사 토마스 덩클리

경찰은 히스 레저의 아파트에서 6가지의 약물을 발견했고 단 한 개도 마약 같은 불법 부류의 약은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모든 약들은 처방된 약물이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자살에 더불어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은 빛의 속도로 퍼졌고 파파라치들은 오로지 기사거리를 찾아 헤매며 이야기를 꾸며댔다.

"마약이 있을 거라고 들었을 때 나는 전혀 믿지 않았다. 자살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인생을 쉽게 포기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 <Roar> 감독, 릭 로센탈

2월 초, 한 뉴욕 병원에서 히스 레저의 죽음의 원인을 알렸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고. 히스 레저의 아버지는 조용히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고, 힘든 시간 동안 위안의 메시지를 보내온 전 세계인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표했다. 슬픈 장례식은 고인의 아버지의 바람대로 조용하게 마무리되었고,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조니 뎁, 주드 로, 그리고 콜린 페럴이 히스 레저의 연기를 뒤이으며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촬영을 계속했다.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그는 안타깝게도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이제 히스 레저는 팬들의 기억 속에서 전설적인 아이콘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만으로도 관객들을 적지 않은 충격에 빠트렸던 그. 팬들은 그를 결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악당 조커를 재탄생시킨 장본인이자 배우로 영원히 추모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그가 말한 대로 그의 딸 마틸다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히스 레저. 하늘에서는 부디 자유롭길 바란다.

그 누구도 너한테 네가 원하는 걸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없어.
-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Heathcliff Andrew Ledger

(1979~2008)   

매거진의 이전글 알면 알수록 진국인 배우, 마크 러팔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