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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ienna May 12. 2016

친구 같은 그녀,
<오피스>의 민디 캘링

여배우, 개그우먼, 코미디 작가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할 그녀, Mindy Kaling 민디 캘링. 여배우, 개그우먼 겸 코미디 작가이다. 사실 미드나 미국 시트콤 팬이라면 그녀를 알 수도 있다. 동명 제목의 영국 모큐멘터리 시트콤을 리메이크한 미국 시트콤  <오피스>의 작가진 중 한 명이자 극 중 '켈리 커푸어' 역할을 맡았던 조연 배우이다. 다 큰 어른도 눈물을 질질 짜게 만든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까칠'역의 목소리를 맡았었다. 그리고 현재 다섯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는 로코 드라마 <민디 프로젝트>의 제작자 겸 여주인공이기도 하다.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인 그녀를 보면 또렷한 눈망울에 퉁퉁한 몸매 (본인 말로는 그냥 뚱뚱하다 할지도)와 갈색 피부가 단연 돋보인다. 흔히 말해 연예계에서 선호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아닌 게 분명하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캘링이 사랑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할리우드의 소수를 대표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젊은 감각과 뛰어난 재치와 유머로 본인의 자리를 굳건히 잡아갔다. 남자들이 득실거리고, 쭉쭉빵빵한 여자들이 날뛰고, 백인들이 지배하는 할리우드라는 이 곳에서 퉁퉁한 인도계 미국인 여성으로 과연 캘링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다들 나만 쏙 빼놓고 노는 거야? 그 외 고민들> (Is Everyone Hanging Out Without Me? And Other Concerns)이라는 그녀의 첫 번째 자서전을 보면 그녀가 데뷔 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떻게 해서 할리우드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맛깔나게 묘사되어 있다. 옆집 사는 베프가 끊임없이 수다 떠는 느낌의 이 책은 가볍고 친근한 톤으로 캘링이 이제 갓 사회인이 된 여느 젊은 20대 여자와 별 다를게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속속들이 드러나는 그녀의 비범함이 연예계에서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담아낸다. 지금은 30대 후반에 본인 이름을 건 어엿한 드라마 제작자이지만 한때 꿈을 이루고 싶어서 아무것도 없이 막무가내로 뉴욕으로 이사 갔던 그녀의 파란만장했던 20대를 잠시 소개해본다.

지난 2월, 인천 공항이 키 큰 주황 머리 외국인 아저씨 덕분에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한국 뉴스에서 '미국의 유재석'으로 소개했던 유명 토크쇼 호스트 코난 오브라이언이 내한했었기 때문이다. 그의 방송은 유튜브에서 한글 자막이 깔린 짤들이 많아서 오브라이언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팬들이 많아졌는데, 민디 캘링은 훨씬 오래전부터 오브라이언을 동경하고 존경해왔다. 1998년, 이민자 가족의 1남 1녀 중 둘째로 고작 19살이었던 그녀는 다트머스 대학교 학부 시절 때 <레이트 나이트> (Late Night with Conan O'brien)의 여름학기 인턴으로 첫 단추를 끼웠었다. 아니, 단추를 제대로 못 끼웠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코난 쇼 역사상 최악의 인턴 중 한 명으로 악명이 높다고 한다. 왜? 코난 오브라이언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자신의 영웅이 무대 위에서 리허설은 어떻게 하는지 콩트는 어떻게 생각해내는지 지켜보면서 공짜로 코난 쇼를 관람하는 팬질만 했었기 때문이다. (나라도 그랬겠다 -- 내 눈 앞에 코난이 있는데 누가 종이 몇 장 카피본 따위나 만들고 있었겠나?) <레이트 나이트>의 추억은 뒤로 한 채 그로부터 3년 뒤, 캘링은 룸메이트가 될 친구들 두 명과 함께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졸업은 했지만 직장도 없었고 구체적인 구직계획도 없었다.

우디 앨런이 말했다, 성공의 8할은 출석이라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진짜? 8할? 그래, 그럼 출석할게. 나 왔어 뉴욕! 일자리 좀 줘!

브루클린에서 여자 셋이 살면서 나름 평탄한 뉴욕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꿈을 쫓아가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튀어보려고 예쁜 것만 골라가면서 입었던 옷들이 다 합쳐놓고 보니 촌스러워도 너무 촌스러운 옷차림으로 변해있었다. 그런 옷차림으로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갔다. 노래는 잘하는데 춤을 못 췄다. 다른 사람들은 1배속으로 멀쩡하게 움직이는데 본인만 헉헉거리면서 0.2배속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듯했다. 숨찬 게 쪽팔려서 미친 사람처럼 데헷 웃어가면서 물 좀 마시러 가야겠다고 하고 오디션장을 빠져나왔다. 코미디 각본도 써가면서 제작사에 넣어봤는데 보기 좋게 무시당했다. 아이비리그 대학 나오면 뭐하나.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데. 돈을 못 버는데. 건강보험도 없는데.


우연히 알게 된 부잣집 아이들 둘을 돌보는 일을 하고 지냈다. 물론 그것만으로 뉴욕 월세를 낸다는 건 택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그래도 애 돌보는 것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단다. 어느 날 밤, 큰 애 숙제를 도와주면서 <앵무새 죽이기>에서 제목의 앵무새란 사실 극 중 '부 래들리'라는 인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고 있었다. 큰 애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왜 우리 돌보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왜 대학교 같은데에서 교수하지 않고?" 둘째 애는 여자아이였으니 여자 마음은 여자가 안다고, 꼬마 숙녀랑 무엇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미국 보이그룹 '엔싱크'가 짱이었다. '엔싱크'에서 누구랑 결혼할까? 대답은 항상 JC 차세즈였다. 사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제일 멋있고 제일 잘생겼지만 너무 때깔 나니까 바람 필 위험이 있어서 만만한 게 JC 차세즈였다. 이게 뭐라고 엄청 진지하게 이런 류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진짜 즐거움은 애들이 잠들고 난 후였다. 혼자 TV 틀고 애들 간식을 먹곤 했다 -- 아니, 말 그대로 처먹었다. 애들 간식은 다른 말로 '쓰레기'라고 하지. 동물 모양의 치킨 너겟, 과일 모양의 과일 젤리, 지방 덩어리인 시럽에 듬뿍 담근 얼음 모양의 과일까지 -- 애들은 뭘 먹을 때 원래 그 모양대로 먹는 게 싫은가 보다. 어느 날 밤, 둘째가 목욕하고 나오면서 캘링을 슬쩍 따로 부르더니 울면서 얘기하더라: "엄마가 거북이 모양 동그랑땡 피자 누가 먹었냐고 묻길래 언니인 거 알면서 내가 거짓말로 그냥 내가 먹었다 그랬어요." 여자아이가 대성통곡을 했다. 캘링은 그녀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엄마한테 절대 얘기하지 마." 그러고 나선 좋아하는 청소년 드라마를 한 시간 더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뇌물과 아이돌 보이그룹. 애들 돌보려면 그것만 한 게 없었다.

일은 내팽개치고 동경하는 연예인 뒤를 쫓던 그녀. 먹는 거 좋아하는데 돈 없어서 돌봐주는 애들 간식으로 군것질하던 그녀. 좀 웃기기도 하고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친근하다. 애들 돌보는 게 꿈은 아니었으니 다시 슬슬 진짜 직장을 구하려고 나섰다. 미국 NBC 페이지 프로그램이라고 지나치게 공부 잘하고 야망도 큰 젊은 20대들을 모아 똑같이 유니폼 입혀놓고 하수인 일이나 시키는 겉보기엔 번쩍번쩍하고 속은 별 다를 것 없는 인턴쉽에 지원했었다. 면접 단계까지 갔었던 캘링은 세 가지 실수를 해서 떨어졌다. 첫 번째, 면접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면접관이 우걱우걱 먹고 있던 점심 샌드위치를 다 못 먹게 했다. (면접관도 참, 그냥 다 먹으면 될 것을 왜 일찍 온 사람을 탓했을까.) 둘째, 25살인 페이지 면접관이 심히 노안이었던 덕에 그의 조카들 사진을 보고, "자녀분들이세요? 너무 귀엽네요"라고 해맑게 말했다. (좀 실수했다, 이건 인정.) 셋째, 페이지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캘링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릴 적 봐왔던 프로그램들을 만든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페이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별로 문제 되지 않는 솔직한 대답인 듯한데, 면접관은 이 대답을 비꼬면서 말했다, "그럼 여기서 일하고 싶은 이유가 오로지 당신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니까 라는 거네요?" 그럼 뭘 바라나? '정작 꿈은 코미디 작가지만 파릇파릇한 청년기 때 인턴으로 잡일이나 하면서 커피 타고 카피본 만들고 스튜디오 구경 온 사람 백스테이지 투어만 해주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원했던 것인가? 그녀는 보란 듯이 꿈을 이루었는데, 이 날 온갖 싫은 티는 다 냈던 이 면접관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가끔은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2000년 초반, 민디 캘링과 룸메이트이자 절친 브렌다 위더스 사이에선 맷 데이먼과 벤 애플랙이 최고봉이었다. 아니, 모든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랬다. 잘생겼지, 똑똑하지, 풋풋하지, 그 어린 나이에 <굿 윌 헌팅>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도 받았지 -- 연예계 입문을 꿈꾸는 그녀들에게 어떻게 우상이 아닐 수 있나. 캘링은 베이비시터 일을 그만두고 TV쇼 막내로 들어가 드디어 밥값이 좀 나오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도 꿈에 그리던 창의적이거나 예술적인 일들은 못 하고 있었다. 친구와 하루에 한 시간 짬을 내서 대본을 쓰려고 컴퓨터에 앉으면 고작 한 줄 쓰고 수다 떨다가 또 한 줄 쓰고 코미디 쇼프로를 보러 갔다. 그런 식으로 한참 브렌다와 농담 따먹던 시절에 어느 순간부터 브렌다는 맷 데이먼, 캘링 본인은 벤 애플렉이라는 설정 안에서 콩트를 하고 있었다.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실제로 어떤 성격인지 어떤 절친인지 이 소녀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들만의 재치로 새로운 맷과 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상천외한 이야기까지 만들었다 -- 예를 들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을 각색한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와중, 스물한 살 벤 애플랙의 아파트 천장에서 <굿 윌 헌팅>의 대본이 떡하니 떨어진다면? 그렇게 해서 민디 캘링과 브렌다 위더스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콩트 코미디쇼 <맷 & 벤>이 탄생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이건 감옥에서 형무소 연극무대에 꼭 한번 서보고 싶은 수감자이건 내가 그들에게 딱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본인 역할은 본인이 알아서 쓰라는 것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지만 가끔은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당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억지로라도 생각하게 만들고,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되면 마음껏 뽐낼 수 있다. 그 누구도 당신을 멈출 수 없다. - 민디 캘링

"뉴욕 인터내셔널 프린지 페스티벌"은 2주 동안 세계 각국의 200여 팀이 뉴욕으로 모여 20개 극장에서 1,300편이 넘는 공연을 펼치는 북미의 가장 큰 멀티 아트 축제로 유명한 연례행사다. 댄스, 인형극, 가면극, 무언극 등등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축제라고 볼 수 있다. 2002년, 캘링과 그녀의 코미디 파트너 브렌다 위더스는 <맷 & 벤>으로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당시 500여 편 정도 되는 모든 공연들 중에서 우수상도, 최우수상도 아닌 대상을 거머쥐며 코미디 천재 신예의 탄생을 알렸다. 90여 년 전통의 미국 잡지 <뉴요커>"익살스럽고 웃긴데 희한하게도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다. 캘링과 위더스는 그리스 신화의 데이먼과 피티아스, <오드 커플>의 오스카와 펠릭스 이후로 가장 매력적인 남성듀오 이야기를 창조해냈다"라고 쓸 정도였다. 그녀들의 콩트는 너무 유명해져서 하루에 밤 공연을 두 번이나 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심지어 더 유명해져서 밤 공연을 세 번씩 하게 되었다. 배우 니콜 키드먼과 스티브 마틴이 우연히 같은 날 이들의 공연을 보러 왔다는 말도 입소문으로 퍼졌다. 극 중 벤 (민디 캘링 분)이 맷 (브렌다 위더스 분) 앞에서 0.4리터짜리 사과주스를 한 모금에 다 마시면서 친구 앞에서 좀 있어 보이려고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공연을 하룻밤에 세 번이나 했으니 캘링은 무대 위에서 제발 구토나 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중에는 인생을 송두리째 휩쓰는 듯한 인기에 취했었는지 매일 밤 1.2리터씩 마시는 사과주스에 취했었는지 벤과 맷이 싸우는 장면에서 실수로 브렌다의 얼굴을 진짜 때렸었다. 뺨을 찰싹도 아닌 주먹으로 퍽. 그 결과, 브렌다의 코가 부러지는 지경까지 갔었다. 브렌다가 캘링을 용서해줄 때까지 한 일주일은 걸렸을 거다. 다사다난했던 뉴욕 데뷔 이후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이 서막의 끝으로 캘링은 로스앤젤레스에 와있었고 영국 시트콤 <오피스>의 리메이크작 작가진에 합류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맷 & 벤>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나의 인생에 대한 적당한 기대치를 잡아놓고 내가 그 선을 넘길 바라는 것보다 차라리 모든 희망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목표를 높게 잡는 것이 좋다.  

캘링에게 <오피스>라는 작품은 인생에 있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이다. 배우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뉴욕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의미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질문들을 한단다: 스티브 카렐은 보이는 것처럼 정말 좋은 사람 인가요? 존 크래신스키는 극 중 '짐'처럼 멋있나요? 레인 윌슨은 극 중 '드와이트'처럼 성격이 더럽나요? 그녀의 대답: 네, 네, 그리고 더 심해요. (이렇게 대놓고 얘기하는 거 보면 실제로 정말 친한가 보다 -- 애증관계이건 아니건.) 가족 같은 배우들과 스텝들 사이에서 캘링은 자신이 <오피스>의 작가가 되었어도 사람이 180도 변하는 건 아니라고 알려준다. 수다도 원 없이 떨 수 있어서 작가 하는 것이 좋고, 사무실도 좋고 넓지만 지저분한 옷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이고, 그놈의 인터넷 때문에 하루에 여덟 시간 동안 일하는데 정작 제대로 일한 건 한 시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스티브 카렐은 정말 성격도 좋고 똑똑한데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그렇게 성격 좋고 똑똑한 사람이 오히려 주변 사람들 파악을 훨씬 더 잘하니까 어떻게든 잘 보여서 스티브가 집에 가서 부인한테 '오늘 민디 진짜 짱이었어. 너무 웃기더라, 센스 있어"라고 말해줬으면 했다. 또 고집 센 건 여전해서 특정 인물과 매일 싸우는 걸로 유명했는데 그 사람이 하필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미국판 <오피스>의 제작자이자 캘링의 보스, 그렉 다니엘스였다. 희극에 대한 심각하고 철학적인 토론을 하는 거였으면 몰라도 유치하게 '이 에피소드 오프닝에서 케빈한테 칠리소스 끼얹으면 나 그만둘 거예요'하는 식으로 싸웠다. (결국 그한테 칠리소스를 끼얹었었고 시청자 반응도 좋았다.) 본인 말로도 자신은 오버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오피스> 시리즈로 일했던 9년 동안 그녀가 변한 게 있다면 진짜 프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즌까지 보스와 다투었는지는 몰라도 프로답지 않게 정말 심하게 다투었다면 그 전에 이미 해고되지 않았을까.

대부분 내게 관심을 보이는 여자들은 '못생겼다' 혹은 '비정상'이라는 상처되는 말을 들었던 유색인종의 소녀들이라는 게 너무 슬프다. 나 같은 여자들이 부디 그들도 아름답고 사랑과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한다.

캘링의 할리우드 정착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입성하기 전 그녀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던 이 글은 여기서 마친다. 누구나 햇병아리 시절이 있듯이 캘링도 그랬다. 물론 엄청난 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에 그녀가 이 길을 걷게 된 것이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오로지 운으로만 돌린다면 그녀의 노력과 열정이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여태껏 할리우드에서 밀려나지 않고 본인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그녀의 프로의식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캘링은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A급 스타는 아니더라도 이 두 가지는 분명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자질이다: 첫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본인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나가겠다고 하는 독립심; 그리고 둘째, "그래, 나는 남자도 아니고 백인도 아니고 날씬하지도 않은 거 맞는데 그래서 뭐? 뚱뚱한 인도계 여자인 나는 왜 안되는데?"라고 되물으며 본인이 갈 길로 가는 뚝심. 이는 바로 지극히 평범하고 친근했던 그녀가 원더우먼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이유다.

자랑할게 있으면 자랑하라. 없으면 그것도 자랑하라.




친구 같은 그녀, 민디 캘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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