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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Mar 09. 2023

마흔앓이, 누가 불혹이라 했는가

사십이불혹(四十而不). 마흔이 되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데, 

나의 마흔은 지진과 바람이 쉬지 않았다. 

누군가 쿡 찔러보는 손을 덥석 잡고,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귀가 쫑긋 했다. 

시행착오를 겪고 민 낯의 나를 마주하고 나서야 정신이 차려졌다. 

사탕발림 유혹에 눈을 돌리고 지갑을 닫을 수 있었다. 

호된 [마흔앓이] 신고식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어른되기 출발선에 섰다. 


이런 나를 보면 어쩌면 아빠와 이리도 비슷한 가 싶다. 


어릴 적 엄마는 집에 찾아온 스님께 집에 있는 쌀과 반찬을 나누어 드렸다. 

답례로 스님은 아빠의 사주를 봐주셨다. “가진 게 다 없어지고 홀로 맨 몸이 되고 나서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세상 풍파를 겪으시면서 비로소 그때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고 했다. 

저절로 주어지고 당연하게 있던 게 사라지고 나서야 아빠는 진짜 가장이 되셨다. 


그 아빠의 그 딸도 그렇게 어른이 되어갔다. 

몇 차례 유혹이 쓸고 나서야 아무것도 가지지 못 주제를 인정했다. 

겉 치장을 한다고 해서 어느 무리에 들어가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민 낯을 제대로 마주하고 주제 파악을 하고 난 뒤, 나에게 맞는 발버둥을 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지낸 시간이 어느 덧 900일이 흘러갔다. 

여전히 어렵고 서툴다. 

그럼에도 어제보다 더 좋은 생각을 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 나를 칭찬도 해주게 되었다. 

왜 이것밖에 못하냐며, 저 사람들처럼 해야 한다고 혼내지 않고, 너 주제에 맞게 잘하고 있다고 

다독이는 시간이 늘어갔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입이 떡 벌어질 자산, 감탄 나오는 멋진 복근, 

화려한 스펙을 장착하지는 못했다. 이걸 못 얻었으면 어떤가. 

내 모습을 되찾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인데 말이다. 

당신은 누구냐고 질문을 받을 때, 쭈볏거리지 않고 꿈에 대해 외칠 수 있게 되었다. 

그것 만으로도 꽤 잘 살고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여러 일을 벌리며 경험하는 동안, 모든 게 승승장구 되지는 않았다. 

모집 0명이 되는 상황, 밤새 이불 킥 하는 실수도 자주 일어났다. 

‘그거 해서 얼마나 버는 거냐’는 한숨 섞인 냉랭한 시선도 수 차례 받았다. 

처음에는 작은 꿈 씨앗 하나 찾은 정도였다. 발버둥 치다 보니 발 밑에 단단한 땅이 있음을 발견했다. 씨앗을 땅에 뿌리자 점점 싹이 돋아나 땅을 뚫고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굳혀진 생각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달라진 생각은 행동에 뿌리내리며 두번째 인생을 살게 해주었다. 

감히 이렇게 말할 만큼 이전의 나와는 작별했다. 주변 지인들이 블로그 속의 내 이야기를 읽고 나면 두 눈이 커진다. 사람이 너무 급변하면 죽는다는데, 저 세상 가지 않을 만큼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변화된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자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글도 포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토록 싫어하던 사탕발림이 글로 표현되고 있었다. 

200일 넘게 글쓰기를 하며 다시 날 것의 나를 마주 했다.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감히 가르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결국엔 ‘나 잘났어’ 글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나만 먼지 부스러기 인가’ 싶은 기분이 들 때 성공신화보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위안이 되는 것처럼, 내 이야기도 옆집 엄마의 경험담으로 다가가면 좋겠다. ‘저 엄마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야!’라며 만만한 이야기이길 바란다.


남 탓하고, 남이 해 주길 바라며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누워있던 나도 툭툭 털고 일어나 내 갈길 가게 되었다. 꿈 많은 미래를 그리며 긍정의 내일을 살고 있다. 

그러니 옆집, 뒷집, 아랫집 엄마들도 못할 이유가 없다. 스크롤만 하고 있지 말고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 내일이 달라진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로,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사는 일상이 시작된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진리를 나 혼자만 터득하고 즐기기엔 너무 아쉽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에도 전혀 늦지 않았다. 남들보다 천천히, 꾸준히 하면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마흔부터 체력을 단련하며 철인 3종 경기까지 나가게 된 마녀체력의 이영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저 블로그에 내 이야기를 하나 둘 기록해가면서 꿈을 찾은, 어렵지 않은 진리를 나만 알고 있기에는 심심하다. 더 많은 엄마들의 꿈을 읽게 되면 좋겠다. 

늘 똑같이 지내온 일상에 작은 씨앗 하나를 발견하고 싹 틔우게 되는 시작이 되길 바라본다. 


40년간 심드렁하게 지내던 내 삶에 경종이 울렸다. 그 날이 아니었다면 변화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멈춘, 20년 4월의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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