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값 한 냥

by 홍생

아들과 나는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책상 위를 어지럽히기는 나를 따라 올 사람이 없는데 아들은 정리 정돈에는 일가견을 보인다. 제 방에 들어가 보면 모든 물건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서 한 눈에도 정갈하게 보인다.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앉을 때 다리를 꼬고 앉거나 비염이 있어서 코를 훌쩍거리는 것들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데 똑 닮았다. 아내로부터 “헛소리 좀 하지 마세요.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핀잔을 자주 듣는데, 녀석도 그런 것 같다. 보고 배우는 게 좋은 것만 배우는 건 아니다.


『교수잡사』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색한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가 억수같이 와서 냇물이 불었다. 아버지가 먼저 건너가다가 물살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이때 아들의 근처에 사람을 업어서 내를 건네주는 월천꾼(越川軍)이 있어서 아버지를 구해주면 사례를 해 주겠다고 했다. 월천꾼이 석 냥을 주면 구해주겠다고 하자, 아들은 석 냥은 너무 비싸니 한 냥으로 흥정했다. 이때 떠내려가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석 냥은 너무 비싸니 절대로 그런 거래는 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아버지는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이야기는 욕심에 관한 이야기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죽고 나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런데도 이 아버지는 재물에 관한 욕심으로 결국 목숨을 잃었으니 안타깝다. 결국 욕심은 화를 부르고 화는 건강을 해치게 된다. 살아가는 동안 물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마지막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깊은 뜻이 숨어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음이 틀림없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버지가 물에 빠지면 보통의 아들이라면 당장 물에 뛰어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비록 수영을 못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그런데 평상시 보고 배운 게 있으니, 아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를 한 것이다. 비단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흥정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또한 월천꾼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지만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않았으니, 그는 직업적인 부분에서뿐만 아니라 인륜을 따르는 측면에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요즘 나의 글 쓰는 모습을 보더니 큰아이는 “저도 글을 써 볼까요?”, 하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부전자전이 달리 생긴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것만 본받길 바라지만(물론, 좋은 점도 별로 없지만) 안 그런 것이 인생 아닌가? 그것도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