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색 계열의 바지를 즐겨 입는다. 완전 검지는 않고 검정에 가까운 검푸른색이 마음에 든다. 반면에 아내는 갖가지 구슬이 달린 붉은 색 계통의 옷을 좋아한다. 구슬이 반짝이면 마음도 즐거워지나 보다.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색깔이 있다. 하지만 파란색과 빨간색을 두고 고르라고 한다면, 어떤 색을 골라야 할까?
옛날에 심술이 고약한 형과 마음씨 착한 가난한 아우가 살았다. 아우는 먹을 것이 없자 형을 찾아간다. 하지만 형은 매몰차게 동생을 내쫓아 버린다. 돌아오는 길에 수수 이삭 몇 개를 주운 동생은 얼른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수수 이삭을 먹어버리면 사라지지만, 그걸로 수수떡을 만들어 팔면 돈도 벌고 남는 수수떡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수수떡을 만들어서 시장으로 가던 그때 눈앞에 아니나 다를까 노숙하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아우는 그 떡을 모두 할머니에게 주어버렸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산꼭대기에 가면 나무 아래 파란 구슬과 빨간 구슬이 있는데 파란 구슬을 가져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과연 구슬을 굴릴 때마다 황소가 나와서 아우는 부자가 되었다. 그 소문을 들은 형도 똑같이 했다. 그런데 욕심 많은 형은 구슬 두 개를 다 가져왔고, 빨간 구슬을 굴렸더니 그만 호랑이가 나와서 형을 잡아먹어 버렸다.
흥부 이야기와 그 구성이 비슷하다. 하지만 흥부전에서는 형 놀부가 동생 흥부 덕분에 잘 살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형이 그만 호랑이의 밥이 되고 말았다. 욕심을 부리면 망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동생을 잘 살펴보면 동생이 잘 살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그가 드디어 경제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옛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대부분 양반인 걸 고려하면, 이 동생도 틀림없이 양반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수수 이삭으로 수수떡을 만들어서 팔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이것은 양반 체면을 내려놓고 장사를 하겠다는 뜻이다. 거기다가 다 떨어진 갓을 쓰고 짚신을 신은 양반이 높은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먹고사는 문제 앞에 양반이라는 허울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가 수수떡을 만들어서 가난한 백성을 구했다는 데서 그의 심성을 알 수가 있지만, 시장 바닥에서 수수떡을 파는 양반이라니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파란 구슬과 빨간 구슬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욕심이 있다. 아무리 파란 구슬만 가지고 내려오라는 말을 들어도 빨간 구슬이 눈에 보이면 손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결국 형은 두 가지를 다 가지려다가 호랑이 밥이 되는 슬픈 운명을 맞는다. 우리는 모두 두 가지 다 가지고 올 것이 뻔하다. 나만 해도 그렇다. 아마도 빨간 구슬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궁금해서 안 가지고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욕심 많은 형이 우리의 전형과 너무 닮아있다.
자세히 보면, 가난한 가운데서도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도왔으므로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이 이야기를 적으면서도 오늘 주식이 어떻게 좀 올랐는지, 내렸는지 파란 숫자가 보이는지 빨간 숫자가 보이는지 가슴 졸인다. 두 가지 색을 다 가질 수는 없으니 그냥 빨간색이 우뚝 솟아준다면 좋겠는데, 어째 파란색이 더 자주 보이는 것 같다. 칼에 손을 베이면 빨간 피가 나는데, 손 등에 보이는 피는 파랗다. 그렇다면 파란색과 빨간색은 한 가지 색깔이 아닐까. 아우가 빨간색의 구슬을 가지고 내려왔더라도 그가 이미 잘살아 보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므로 부자가 되었지 싶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