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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Mar 05. 2024

우렁이 각시

  집에 있는 딸아이가 탈출을 꿈꾼다. 제 말에 따르면 지금 사는 지방이 활력이 떨어진단다. 한 달에도 여러 번 서울 출장을 가는 모양인데, 출장을 가보면 번잡하기는 하지만 왁자지껄하고 웅성웅성하면서 사람 사는 맛이 난다고 한다. 월급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서울 살림살이에 그 월급으로 되겠냐고 물어도 막무가내다.


  우리가 잘 아는 우렁각시 이야기가 있다. 시골 총각이 모를 심으면서 “농사를 지어서 누구랑 먹고살지?” 하고 운을 떼자, 우렁이가 “나랑 먹고살지.” 하면서 답을 한다. 혹시나 지나가는 이가 밟을 수도 있고, 그 모양이 신기하기도 해서 집 항아리에 우렁이를 넣어두었다. 다음날 농사일을 마치고 온 총각은 풍성하게 차려진 밥상과 깔끔해진 집을 보고 놀랐다. 누가 그러나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우렁이 각시가 그런 것이었다. 그길로 총각이 청혼하자 우렁각시는 자신이 용왕의 딸이며 인간 세상으로 구경을 나왔다가 아버지의 벌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결혼해서 잘 살았으나 사또가 예쁜 각시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신랑은 사또와의 내기에서 용왕의 도움으로 사또를 이기고 잘 살았다.


  신기한 이류혼인담(異類婚姻談)이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에 우렁이가 밟힐 것을 걱정한 농부가 그 덕에 예쁜 아내를 얻고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를 곰곰이 읽어 보면 놀랄 일이 있다. 먼저 우렁각시가 된 사연이다. 우렁각시는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 나왔다가 벌을 받았다. 이야기 속에서 용왕이 사는 곳이 작은 연못이어서 우렁각시는 더 큰 세상이 궁금했던가 보다. 하지만 경계를 넘어서면 각오해야 할 일이 있다. 고생길이다. 연못이라는 아늑한 곳에 살다가 밖으로 나와 농부의 아내가 된 우렁각시는 온갖 궂은일을 다 한다.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딸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딸 바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젊음을 한껏 뽐내며 길을 나서는 딸을 보면 예쁘기도 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용왕이 세상 구경을 나서는 딸에게 벌을 내린 이유는 인간 세상이 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래 사는 곳을 벗어난다면, 온갖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용왕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딸이 그만 경계를 넘어서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딸은 제가 원하는 세상으로 가버렸다.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되어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사악한 사또와 힘든 일을 겪는다. 그때 용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초능력을 발휘해서 사위를 도와준다. 사위를 도와주는 일은 결국 딸이 행복하게 살도록 해 주는 것 아닌가?


  나는 딸이 연못이나 항아리 속처럼 갑갑한 곳에 살기를 원치 않는다. 제 꿈을 펼칠 수 있다면 세상 밖으로 경계를 넘어 날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버지니까, 주변의 모든 사물이 다 염려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돌아가신 장인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지 싶다. 나를 가난한 농부로 보시지는 않았는지. 나야 우렁각시를 얻어 평안한 삶을 살지만, 우렁각시는 또 무슨 고생인지, 심히 두렵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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