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윤리
자기수용을 위해서는 지독한 자기혐오와 자기비판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한없이 나의 나약함 속으로 추락하다 보면, 어느샌가 내가 나를 품고 있다. 인간의 위대한 생명력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나를 끊임없이 상처 내고, 넘어뜨리려 해도, 결국엔 내가 나를 살려낸다. 강인함은 나약함 위에 피어나는 것은 아닐까.
백수 생활이 길어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난 끊임없이 나를 비난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승진한 친구,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 뒤늦게 원하는 직장에 들어간 친구, 전문직 시험에 통과한 친구 등. 나와는 점점 더 동떨어지는 잔인한 소식들이 세상에 들어온다. 제아무리 나의 세상을 닫고, 귀를 막으려 하더라도,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틈으로, 세상의 소식들이 나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둘러싼 벽들은, 나를 지키기 위해 쌓고 또 쌓으며 견고함을 추구하던 나의 성벽들은 사소한 세상의 입김에 수많은 균열들이 생겨났다.
그 균열은 곧 나에 대한 균열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열등감과 비교는 어느새 자기혐오로 돌변한다. 혐오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는 점차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언제쯤 일지는 모르지만 난 더 이상 나를 지키는 것을 포기했다. 아마도 그 후로 끊임없이 무너진 것은 아닐까 싶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자. 무너짐은 너무나도 쉬웠다. 난 더 이상 무언가를 쌓으려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시기에 난 모든 것들이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았다. 수많은 비판과 혐오들이 숨 쉬는 것조차 아깝다고 속삭여도, 난 운동을 하며,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쓰며 끊임없이 숨을 쉬었다. 생명의 무너짐을 막기 위한 선택들, 돌아보니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준 여백들이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기에, 내가 나를 살리기 위한 생명의 몸부림은 아닐까 한다.
내가 나의 바닥을 보았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아마도 보진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또 어떠한 일로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끝없는 추락 속에서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발로 서 있는 느낌. 그것은 곧 나에게 다시 힘이 느껴지는 것이었으며, 무언가를 향하고 싶은 열망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관계를 맺고 싶었다. 그렇게 한동안 지속된 혐오를 멈추고,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자기혐오는 이상하게도 달콤했다. 더 이상 지킬 것이 없다는 느낌은, 나를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 시험하게 만들었다. 내가 나를 죽이면서도 나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흐르지 않는 눈물을 만들어낸다. 그 눈물들은 어느새 나의 몸을 감싸 앉아, 메말랐던 나의 몸을 적신다. 내가 그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를 죽일 수 없다는 확신을 갖는 것은 그동안 절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쳐다도 보기 싫었던 나의 치부를 응시하게 만든다. 살면서 처음 만나는 것 같은 '나', '연약한 나', '혐오스러운 나'. 그간 이들을 봐주지 않았기에 치부가 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낀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자. 그들 또한 내가 된다. 나의 존재가 한 차원 더 확장되듯이.
재미있는 점은, 나의 관심사가 세상 밖으로 향하며, 이들 또한 나와 함께 세상 밖으로 향했다는 점이다. 우린 흔히 타인과 관계할 때,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내가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추악한 모습을 감추고, 위대한 모습을 비추고 싶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끝없는 추락의 경험 후 맞이하는 외부 세계는 어쩌면 조금은 달랐다. 내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경험은, 타인 또한 나를 죽일 수 없다는 어이없는 용기를 갖게 한다. 그럼에도 한없이 타인에게 휘둘리고, 상처 입고, 돌아서겠지만 조금은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에 익숙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의 추악함을 마주하는 것은 추악한 내가 되는 경험일 수 있기에, 더 이상 추악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모습을 같이 느껴줄 존재를 한없이 바라고 바랄 뿐이지.
또한 눈앞에 마주 선 존재의 추악함 또한 마주하고 싶어진다. 너무나도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지만, 존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너의 모든 모습을 궁금하게 만들 뿐이다. 내가 지독하게 바라온 추악함에 위로를 받았듯이, 함께 마주함으로써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싶은 이기심이다. 우린 서로 한없이 얽혀있기 때문에, 서로를 끌어당기면서도 밀어내기 때문에, 우리의 균형은 한없이 변화한다. 정말로 보잘것없이 느껴졌던 내가 한없이 위대한 존재로 거듭나기도 하고, 보잘것없이 느끼는 너를 경이로운 존재로 경험하기도 한다. 난 서로의 간극을 함께 느끼고 싶다. 그것이 내가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