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온 흔적

자아의 죽음

by 청명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난 끊임없이 나를 찾아 헤맸다.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모습에 혼란을 느꼈다. 대표적으로 내가 몰입했던 행위들이 그 흔적들이다. 운동하는 나, 사진을 찍는 나, 책을 읽는 나, 철학을 공부하는 나, 상담을 수련하는 나와 같이 수많은 나의 모습들이 있었다. 그 행위들에 몰입하다 보면, 그 행위 자체가 나의 자부심이 되고, 그것들을 통해 내가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듯이, 몰입했던 대상과 내가 분리되는 순간도 찾아왔다. 대표적으로 부상으로 운동을 하지 못하는 시기에는 운동하는 내가 죽는다. 올해는 비교적 부상이 잦은 편이었던지라, 운동의 공백기 시기 동안 혼란에 빠져 또 다른 나를 찾기에 바빴다. 내가 운동 대신 몰입했던 것은 책과 글이 아닐까 싶다. 또한 타인의 영향으로 철학하는 내가 죽기도 했다. 더 이상 사진을 업으로 하지 않기에 사진을 찍는 나 또한 죽었다. 이처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끊임없이 다른 내가 되어왔다.



또한 느끼는 것, 관계를 통해 내가 정의되고, 죽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는 타인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의 심연으로 깊이 빠질수록 기대한 나와는 만날 수 없다고 느꼈다. 심연 속에 존재하는 나는 정의될 수 없었다. 찰나의 나와 잠시 마주한 후 놓아줄 뿐이었다. 그래서 타인을 통해 안정을 바라기도 했다. 특히나 몰입한 수단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데 요긴하게 사용된다. "운동을 취미로 가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 이러한 수단을 통해 타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충돌한다. 모든 관계와 충돌할 순 없다. 아니, 존재가 떨리는 충돌은 그리 많지 않다. 하루에도 수십 번 부딪히는 충돌 속에서, 유난히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충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이 그랬다. 나의 세계를 온전히 보여주고 싶고, 그의 세계를 최대한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 서로의 신뢰가 쌓이며 섞여가는 세계들, 더 이상 세계는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공동세계에서 서로의 자아를 쌓아간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붕괴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공동세계에서 창조되었던 나 또한 죽는다.



난 작년에 두 가지 죽음을 동시에 경험했다. 4년이란 세월을 몸 담가 왔던 회사를 나와 백수가 되었고,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공동세계가 무너졌다. 고정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순간의 자아만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부여잡았지만, 그 시기에 내가 감당하기엔 버거웠던 것 같다. 끊임없이 흐르는 세계를 유영하겠다 다짐하면서도, 발을 디딜 수 없는 대지는 진흙으로 변모해 나를 빨아들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몰입할 수 있는 행위를 찾아 나섰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죽어있던 운동하는 자아를 살려내, 운동과 나를 동일시했다. 마음의 안식이라고 붙잡고 있던 책 읽는 나를 더욱 강하게 잡아 흔들었다. 그나마 고정되어 있던 논문을 쓰는 나에게 매달렸다. 그렇게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수단을 통해 견고히 쌓아 올린 나만의 세계에 비해, 두 존재가 같이 쌓아 올렸던 공동세계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 공동세계는 오직 나만의 것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복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떠난 이와 함께 복구하는 것은 더욱이 불가능했다. 그저 난 떨어져 간 자리를 바라보며, 수단과 행위를 통해 간신히 발을 디디고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거대하게 죽어버린 나는, 또다시 공동세계를 창조하는데 주저하게 되었다. 이는 꼭 미련이나 슬픔만이 아니다. 말 그대로 나의 존재 일부가 사라져 버렸기에 느껴지는 거대한 구멍일 뿐이었다. 매워지지 않을 것 같은 구멍은 또 다른 나를 살려내는 것에 회의감이 들게 만들었다. “어차피 또다시 무너져버릴 텐데”라는 허망함으로, 더 이상 살려낼 것들이 없다면 죽어가는 것이 더욱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행위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져 갔다. 무너짐에 대한 담담함이 자리 잡았다. 살아 있음에 대한 집착이 희미해지는 순간들 속에 가장 마지막에 죽는 나는 누구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끊임없는 자기 물음에 빠졌었나 보다.



가장 큰 물음은 나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토록 수많은 것들로 이루어진 나 사이에, 나의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그 물음이 커질수록 난 더욱더 나를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살펴보고 뒤져보아도, 항상 무엇과 연결된, 무엇을 향한, 무엇으로부터 향해진 나만이 존재했다. 거대하고 깊은 심연 또한 심연 속 존재하는 ‘나’였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죽지 않는 나를 찾았다. 그렇게 1년이란 세월을 보낸 것 같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역시나 수많은 내가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들 사이에서도 붙잡고 있는 나 또한 존재한다. 표현 그대로 붙잡고 있었다. 이것은 나의 바람이자 소망의 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소망 역시 무언가와 얽혀 있었다. 무언가를 위한 나. 이 끊임없는 연결은 고독을 무색하게 만든다. 제아무리 홀로를 지향하며 순수한 나를 발견하려 할수록, 난 무언가와 함께했다. 이러한 혼란들 속에서 날 위로한 것들은 무한히 펼쳐진 것들이었다. 대표적으로 하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감히 예상할 수 없는, 닿을 수 없는, 탐낼 수 없는 하늘을 볼 때면,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혼란마저 겸손해졌다. 펼쳐진 경이로움에 감싸여 잠시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살아왔다.



떨어져 나간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그저 떨어져 나간 내가 살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 구멍을 누군가로 메운다면, 그것은 순전히 나의 욕심일 것이다. 그저 구멍이 뚫린 나를 보고도, 서로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을 바라왔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며 나의 구멍은 늘어만 왔다. 구멍은 마치 내가 공동세계를 창조해서는 안 될 존재처럼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반쪽자리 나를 던지고 싶은 존재들 또한 존재한다. 아마 하늘과 같은, 무한과 같은 존재를 만날 때면 그러한 떨림을 느낀다. 그 또한 구멍을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공동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리 잡는다. 나의 존재로 그의 구멍을 메울 수 없으며, 또 감히 그러한 욕심을 부려선 안되지만, 무한과 같은 눈동자 속에 비친 나를 보며 느낄 뿐이다. “아 지금 나는 두 발로 서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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