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의 태도
헤라클레이토스였나, 만물은 변화하며 흐른다고 말한 고대의 철학자.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이 내겐 늘 강렬하다. 그의 울림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품게 했다.
한때 관심을 가졌던 강신주 철학자의 강연 또한 떠오른다. 바쁘다는 이유로,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올해 피어난 벚꽃을 마주하지 않는 자들에게 했던 말.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피어날 벚꽃은 지금 피어난 벚꽃과는 다른 벚꽃이라는 말. 그 말 또한 나의 세계에서 여전히 잔잔하게 울린다.
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마치 내가 손 델 수 없는 숭고한 그 무엇과도 같이 느낀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이로운 순간, 숭고한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성과도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그 대상을 나의 소유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정말로 아름다운 것을 만난 순간에는 그런 충동마저 무색해진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경이로움과 거대한 숭고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의 세상 앞에 끊임없이 흐르는 순간을 부여잡는 것은 부질없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스위스에 머물던 시절, 운이 좋게도 내가 머무는 집의 테라스에선 융프라우가 보였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테라스로 향해 오늘의 융프라우를 만났다. 여행객들은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구름이 끼지 않는, 비가 오지 않는 청량한 융프라우를 바랐지만, 나에겐 비 오는 날의 융프라우도, 폭풍이 치는 융프라우도, 흐린 융프라우도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늘 이곳에 서서 널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의 아름다움을 안심하고 온전히 드러낼 수 있듯.
“나는 항상 여기 있을 테니, 넌 끊임없이 흘러도 돼.” 융프라우가 내게 알려준 것이다. 다채로운 만년설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은, 사진을 찍어 나의 입맛대로 보정을 하는 작업에 흥미를 잃게 만든다.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난 새롭게 펼쳐진 눈앞의 광경을 나의 세계에 담을 뿐이다. 그저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영원히 고정된 것은 없다는 말이 나의 세계에 울림이 된 이유는 내가 아름다움을 좇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에 대한 존경이 지금 이 순간에 머물게 한다. 그 어떠한 통제도, 조작도, 판단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한 욕구는 아름다움을 훼손시킨다고 느껴 경계할 뿐이다. 그저 난 지금 내 눈앞에 피어난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