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숨

명명되지 않은 관계

by 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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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관계로 인해 살아가며, 관계로 인해 죽어간다고 느낀다. 삶과 죽음 사이의 이 관계는 정의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관계를 정의 내리는 것은 아닐까 느낀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그것이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며, 개념화하기 위해 대상을 분석하고 비교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을 나의 살아냄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마치 도구와 같아진다. 그것이 비단 존재가 아닌 개념과 같더라도 정의가 내려지는 순간, 나의 관념의 세상 안에서 점차 굳어간다.



관계란 정의될 수 있을까, 관계를 죽음이 아닌 나의 살아감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관계의 특징을 분석하고, 분류하며, 수단화했다. 대표적으로 애착 이론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정의를 통해 관념으로 굳어진 관계는 나와 타자 사이의 책임 또한 앗아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그와 소통할 수 없는 이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 맞지 않는 이유는 대표적으로 ‘애착 유형’이라는 강력한 위로의 언어를 통해, 나뿐 아니라 그에게서도 책임을 잠시 면제해 주는 것 같다.



반대로 이러한 정의 내림을 통해 더 나은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의 내림은 곧 나의 관념의 세계에 나와 너를 가두는 일처럼 느껴졌다. 너는 나와 다른 세상에 거주하기 때문에, 관계를 나의 관념에 가두어버리는 것은 곧 너를 가두는 것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런 갑갑함은 들판에 찬란하게 피어 있던 꽃을 꺾는 일처럼 느껴져, 늘 경계하고 경계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늘 완벽할 수 없다. 불가능한 영원과 고립의 현실에도 늘 함께 거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관계를 통해 살아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냉혹한 사실 앞에서 진실의 폭력에 굴복하는 것은 죽을 날을 기다리지만, 죽는 것 또한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함과도 같이 느꼈다. 그 어떤 노력에도 불가능하리라 보이는 행위를 몸소 실천하려는 발버둥의 과정이 더욱 숭고하게 느껴진다. 그것이 관계의 미약한 향기가 아닐까.



자신이 거주하는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없는 고립감 위에서 우린 관계의 환상을 부여잡으며, 타자와의 접촉을 간절히 소망한다. 만약 이 소망의 형태가 오직 나의 관념의 세계에 한한다면, 그 관계는 산소통과도 같을 것이다. 관계라는 숨을 들이마시지만 나의 관념의 세계에서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가 관계의 농도를 희석시킨다. 그것은 오직 나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만남이기 때문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세상 속에서 그려진 그의 환상을 끊임없이 갈구하게 만든다. 어쩌면 환상의 영원함을 바라기에 옅어져 가는 산소를 통해 환상을 유지하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너의 만남을 위해, 정의 또한 필요하다. 온전히 일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세계의 뒤틀림 속에서 희미하게 흩어져 나온 서로의 관념을 부여잡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의 호흡을 위해 희미한 관념을 나의 관념 속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너의 숨통은 위태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와 너의 화합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서로의 들숨과 날숨을 민감하게 느끼며, 운명과도 같이 연결된 희미한 관념을 유지하려 애쓰는 우리의 발버둥이.



우리들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존재이기에, 서로의 세상의 차원은 이해될 수 없기에 살아냄을 위해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 각자의 살아냄을 위해 끊임없이 피워내는 박동의 파동이 모두 다르다. 때문에 아무리 내가 조절하고 싶더라도 서로의 온전한 숨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만약 운명이란 것을 정의 내린다면 나의 숨과 너의 숨이, 나의 박동과 너의 박동이 각자의 여백의 순간 피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국 난 관계를 정의 내리는 것이 조심스럽다. 뒤틀림의 균열 위에서 희미하게 이어진 관념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도로 정의를 내리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세월 수없이 내려진 정의를 차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너의 만남은 지금도 여전히 흘러가는 과정에 있기에, 굳어진 관념을 우리의 관계 위에 띄운다 하더라도 금세 흘러내리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의 영혼이 마주하는 찰나의 순간은 영원과도 같기에, 그 영원 속에서 희미한 관념들을 마음껏 사용하곤 한다. 마음껏, 나의 욕심일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흐름의 영원 위에 함께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욕심을 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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