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뒤에 감도는 여운, 그것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미지이자 인간다움의 증거가 아닐까
나는 너와 분명히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지만, 순간의 현재를 증명할 수 없듯이 모든 것들이 과거의 추억에 흡수되어 버린다. 찰나를 잡으려는 욕심은 눈앞의 흘러넘치는 존재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난 모든 것들을 주워 담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하염없는 바라봄으로 인해, 나의 욕심을 내려놓을 순 있지만, 때론 마저 지각하지 못한 채 놓아주어야 했던 조각들에 대한 아쉬움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아련함이 두 눈동자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그래서 난 눈을 통해 영혼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좋았다. 어쩌면 영혼이란 우리의 세상에서 붙잡을 수 없는 현상이기에 존재의 끝자락에 감도는 여운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 여운이 느껴지는 순간에, 흘러가버린 조각들을 다시 불러내어 눈앞에 펼쳐놓곤 한다. 이것은 환상과도 같을 수 있지만, 그것의 현실성 따윈 이미 나에게 중요치 않다. 오히려 붙잡을 수 없었던 미지를 펼쳐내어, 예측할 수 없이 흘러넘친 긴장의 떨림들을 사랑하며, 사랑할 수 있다고 작은 목소리로 되뇐다.
이 정의 내릴 수 없는 진공과도 같은 공간, 나와 너 사이에 주워 담을 수 없는 미지를 사랑한다는 것이 결국에는 찰나의 순간을 끊임없이 지각하고, 놓아주고, 다시 또 바라보는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 진공과도 같은 無가 좋다. 정의 내려지지 않은,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無의 공간에서는 그 어떤 것도 쌓아 올리고, 펼치고, 피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상의 말이 닿지 않기에 우리의 말을 피워낼 수 있다.
이 공간에선 모든 것들이 힘을 잃고 모든 것들이 다시 태어난다. 어쩌면 시공간의 개념도 뒤틀려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흘러가버린 저 편의 여운을 불러와 다시금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또 두 눈동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너의 영혼을 떠올린다. 난 우주의 시간선 그 어디에서든 존재하고, 마주하며,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