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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Apr 24. 2019

오키나와 무스비야 게스트하우스

외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오키나와 북쪽 끝의 게스트 하우스

외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게스트 하우스     


 나키진이라고 하는 오키나와 북쪽 지방에 무스비야 게스트 하우스란 곳이 있다. 주변에 나키진 성터도 있지만, 이 게스트 하우스 자체가 인기가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저녁 8시마다 파티를 한다고 했다.

 이 게스트 하우스는 오키나와 가이드북 '디스 이즈 오키나와'의 저자를 몰랐다면 오지 못했을 곳이다. 그녀는 오키나와 가이드북을 쓰기 전부터 이곳을 매우 좋아했고 추천해주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한 후, 그곳으로 향했다. 나고시에서 버스를 탔고 40분 정도 지났을 때 나카오시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편의점 코코(coco)가 있었다. 무스비야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는 식당도 편의점도 없기에 여기서 저녁 재료를 사야 했다. 요리를 전혀 못하는 나는 조카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조카는 집에서도 종종 요리를 하며, 잘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전화를 거니 스태프가 금방 나오겠다고 했다. 처마 밑에 우두커니 서서 잠시 기다리자 조그만 승용차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젊은 여인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쾌활하게 자기 이름을 영어로 얘기하며 타라고 했다.

 “반가워요, 내 이름은 리, 여기는 내 동생의 아들, 리틀 리입니다.”

 나는 여행 중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쾌활하게 대하는 편이다. 그녀는 예전에 1개월 동안 여기 묵었었고 지금은 1주일째 헬퍼(helper, 스태프를 여기서는 헬퍼라고 부르고 있었다)로 일한다고 했다. 길 건너 언덕길로 올라가 달리는데 벌판에 비닐하우스들이 나왔다. 비가 오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벌판에서 인적 드문 텅 빈 비닐하우스들을 보니 을씨년스러웠다.

 “여기 밤에는 찾아오기 힘들겠어요.”

 “네, 밤이 되면 불빛이 없어서 걷기에 무서워요. 호호호.”      

 약 3, 4킬로미터 정도 가다 보니 멀리 바다가 보이고 한쪽에 단층짜리 외딴집이 보였다. 그곳이 무스비야 게스트 하우스였다.



 거실 창밖의 넓은 마당에는 목조 테이블과 해먹이 있었고 얼마 안 가 바다였다. 그녀는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이층짜리 침대가 있는 방인데 창밖으로 넓은 바다가 보였다. 오키나와 최북단은 아니지만 북쪽 바다가 보이는 외진 곳이었다. 여인은 저녁 8시에 파티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집 앞에는 들판이라고 하기에는 좁고 마당으로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거길 지나 바다 쪽으로 내려가니 조그만 해안이 나왔다. 산호 때문에 녹색 빛을 띠고 있는 바다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솟아 있었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조용히 누워서 선탠을 즐길 수도 있는 조그맣고 아늑한 해안이었다. 


 7시 30분쯤 부엌에 가니 사람들이 요리를 하느라 북적거리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한국어도 들려왔다. 물어보니 일본에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마치고 나서 곧 한국에 돌아간다는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소시지 볶음을 만들었고, 한국 여자와 결혼한 서양인은 서양 음식을 만들었다. 그 외에는 다 일본인이었다.



 드디어 8시쯤 각자 만든 음식이 거실에 차려 놓은 상위에 펼쳐졌다. 주인 여자와 스태프 여자 두 명 그리고 열서너 명의 투숙객이 음식을 덜어가며 먹는데 주인 여자가 자기소개를 먼저 했다. 오사카 예술 학교를 나와서 서커스단에서 아크로바틱도 했고, 티셔츠도 만들어서 팔다가 오키나와에 와서 게스트 하우스를 열었다고 했다. 그 후 각자 소개를 하는데 직업이 다양했다. 탈골 치료를 하는 물리 치료사, 마사지사, 이시가키 섬에서 스쿠버 다이빙, 스노클링 가르치는 사람, 중화 요리사 등 다양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무스비야에 쉬고 싶어서 왔다는 것. 그리고 이런 자리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이런 자리는 의무가 아니어서 조용히 방에서 자기 혼자 저녁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나키진 성터에 갔다 왔다. 숙소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슈리성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높은 산 위에 성이 있었다. 위로 올라가는 길 쪽에는 돌들이 쌓여 있었고 화로 터, 부엌 터들이 보였다. 성위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는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연분홍 꽃들이 피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우메(매화)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쿠라(벚꽃)의 일종이라고 했다. 한국과 달리 따스한 이곳은 1, 2월에 사쿠라가 핀다는데 운이 좋았다. 관광객은 일본인들도 있었지만 중국인들, 특히 광둥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홍콩에서 온 관광객들 같았다.

 성안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성스러운 장소, 즉 우타키가 있었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밑으로 시원한 바다가 펼쳐졌다. 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성에서 가장 높은 터로 성스러운 장소였으며 궁녀들의 방이 있던 곳이라 한다.



 나키진 성은 류큐왕국에 의해 통일되기 전인 산잔(三山) 시대, 즉 호쿠잔(北山), 츄잔(中山), 난잔(南山) 등의 세 지역 중에서 호쿠잔의 중심지였다. 호쿠잔 왕이 통치하던 이 성은 우리의 고려 시대와 비슷한 13세기 세워졌다.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 살았을 것이다.



 


오후 2시쯤 귀가하고 나니 피곤했다. 빨래를 세탁기에 돌린 후 조카는 침대에 누워 쉬고 나는 거실 밖의 테이블에 앉아 한국어 번역판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읽었다. 한국 여행자가 이곳 서재에 남기고 간 것 같았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스하고 바닷바람은 시원했다.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하얀 색깔이니 더 마음이 한가해진다. 이 테이블의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멍청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영화 ‘메가네(안경)’에서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구경이고 말고 한 달 정도 여기 묵으며 빈둥거리고 술 마시고 책이나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와서 여행을 멈춘 채 세 달을 머문 한국 젊은이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하루, 이틀 정도 묵으려고 왔다가 계속 묵는 일본인들도 있었다.


 그날 저녁도 늘 그렇듯이 파티가 있었다.

 새로 온 한국 청년 셋이 떡국을 끓였다. 중학교 동창이라는 부산에서 온 청년들은 소주도 내놓았다. 그러고 보니 설 전날이었다. 그 외에 나온 음식들도 푸짐했다. 우동, 소바, 튀김, 벨기에 음식, 조금 늦게 참가한 일본 여인이 갖고 온 피자를 다 함께 먹었다.


 그런데 結家(결가, 무스비야)란 무슨 뜻일까? 가족을 만든다는 뜻인가? 인연을 맺어준다는 뜻일까? 

 어쨌든 이곳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러 오는 곳이었다. 현대인들은 사람들을 피곤해하면서도 사람을 그리워한다. 외톨이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이 잠시, 자유롭게 비슷한 성향의 여행자들을 만나 정을 나누고 헤어지는 곳이었다.

 오키나와에는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좋은 인연을 맺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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