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인간의 내면과 불온한 욕망을 강렬한 표현주의 화풍으로 담아낸 오스트리아의 화가이다. 그의 회화 작품 《죽음과 소녀》(1915)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모델이기도 했던 발리와의 이별 후 상실감을 담아내고 있다. 발리와 에곤 실레 자신의 관계를 죽음-소녀로, 그림 속 남성 인물은 본인을, 붉은 머리 여인은 발리를 표상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실레는 어린 시절인 1905년에 아버지가 매독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험을 했다. 1900년대 말 빈(Vienna)의 보수적 사회와 급진적 예술세계를 추구했으며, 1911년에 발리(Walburga Wally Neuzil)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징집을 앞둔 그는 발리가 아닌 부유한 집안의 딸 에디트 함스(Edith Harms)와 결혼을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사랑했던 발리와의 관계를 이어 가길 바랐던 그의 소망은 실패하였고, 발리는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화면 중앙에는 서로를 꽉 끌어안는 남성과 여성이 있다. 두 인물은 구겨진 흰 시트 위에 무릎을 꿇은 채 서로를 붙잡고 있다. 흰 시트는 연인의 마지막 침상을 연상시키면서 동시의 수의처럼 죽음을 암시하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화면 배경은 뚜렷한 지형지물 없이 갈색과 녹슨 붉은색의 거친 질감으로 채워져 있어 황량하고 불확실한 공간감을 준다.
구도의 독특한 점은 조감 시점보다 비스듬한 시점에 가까운,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울어진 각도와 높은 시점에서의 투시법이다.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두 인물을 위에서 조망하게 만든다. 이는 관습적이지 않은 시선 처리로, 두 인물을 박제된 인형처럼 주변 환경으로부터 다소 소외시킨다. 이러한 시점은 실레가 ⟪앉아 있는 남성 자화상⟫(1910), ⟪녹색 스타킹을 신고 기대누운 여자⟫(1917) 등 다른 작품에서도 즐겨 사용한 기법으로서 화면에 비현실적 긴장감을 부여한다. 작품에 결여된 현실감으로 인해 관객은 장면에 몰입하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 전체를 조망하게 되는데, 이는 작품의 주제-자기 자신을 투영한 죽음과 연인의 포옹-를 객관화하여 성찰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실레는 이러한 구도를 통해 자기 삶의 비극을 예술로 승화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 자체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통해 죽음, 사랑 같은 추상적인 가치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관객으로 하여 촉발된다.
두 인물의 자세와 형태는 실레 특유의 뒤틀린 인체 표현을 보여준다. 남성의 등은 활처럼 길게 굽어져 하나의 커다란 곡선을 이루는데, 이는 뒤 배경의 구릉진 언덕 형태와도 닮아있다. 여성의 둔부 역시 등 뒤의 언덕 모양과 유사한 둥근 곡선을 그리며 화면 요소들이 서로 형태적 유사를 이루고 있다. 동시에 남성의 등은 거대한 지각 변동처럼 보이는데, 비평가 마이클 글로버는 이를 “남성의 굽은 등이 원초적 대지의 융기처럼 보인다. 마치 그의 등이 세계 그 자체인 양.”이라고 묘사했다.1 신체가 자연과 갖는 경계를 무화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나타내며, 더 나아가, 주체와 세계의 합일과 분열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실레가 자연을 대상으로 그린 작품들엔 자연이 인간의 형태를 닮았다는 특징이 있다. ⟪시들은 해바라기⟫, ⟪사나운 대기 속의 가을나무⟫에서 드러나듯 나무, 꽃 등을 자연 속 대상, 자연으로서의 대상이 아닌 그의 정신적 상태를 투사하여 상징화된 표현으로서 대상을 나타냈다.2 이런 맥락에서, 작품의 배경은 자연을 나타내기 보다는, 주체의 존재가 형성된 장으로서 해석된다. 즉, 자연이 아닌 두 인물 사이의 상호작용만을 강조하되, 뒤틀린 인체 표현을 통해 자연과의 합일을 강조함으로서 세계 속 ‘너와 나’라는 무대장치를 연출한 것으로 해석한다.
두 사람의 포옹은 언뜻 강하게 밀착한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기괴한 경직성과 틈을 지니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있지만 완전히 밀착되어 있지 않고 손과 팔동작은 끌어안음과 밀어냄의 양가적 감정을 담고 있다. 또한, 그의 동공은 확장되고 초점 없는 시선으로, 마치 이미 삶을 떠난 자 혹은 미래의 죽음을 바라보는 자처럼 묘사된다. 여성 역시 눈을 감고 남성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지만,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통스럽고 체념적인 표정을 띤다. 이처럼 두 사람의 시선과 표정이 서로 교차하지 않고 분리됨으로써, 그들의 육체적 밀착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교류는 단절된 모습이 연출된다.
색채와 붓질 면에서도 실레의 표현주의적 기법이 돋보인다. 남성은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갈색의 옷을 입고 있어 마치 죽음의 그림자 같은 실루엣을 이루고, 여성은 칙칙한 벽돌색 드레스를 걸쳤으나 치마 자락이 흰 시트와 뒤섞여 하반신은 하나의 벌거벗은 살결처럼 보인다. 흰 천, 검은 옷의 대비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즉 삶과 죽음의 대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붓질은 거칠고 질감이 강조되어 있는데, 특히 배경의 흙빛은 두텁고 불규칙한 터치로 뒤틀려 있어 심리적 불안과 격정을 반영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실레의 성적 욕망과 불안이 ‘왜곡’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표현된 것이다. 주이상스(Jouissance)를 수용해야 하는 주체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양자를 수용해야 한다. 상징계에서 작동하는 대상-a를 향해 미끄러지는 욕망은 에로스, 실재와의 불가능한 만남을 추구할 때 느끼는 고통과 희열은 타나토스라 유비할 수 있다. 실레의 색채와 붓질은 주이상스에 대해 주체가 느끼는 감정, 더 나아가 주이상스 자체를 표현했다고 해석한다.
라캉의 상징계 개념을 적용하면, 이 그림은 단순한 개인적 이야기 이상의 보편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제목 자체가 중세 이후 이어져 온 죽음과 소녀라는 상징 코드를 차용하고 있다. 죽음과 소녀 모티프는 16세기 르네상스 미술(예: 한스 발둥의 《죽음과 소녀》(1517)) 에서부터 시작되어 문학, 음악(예: 슈베르트의 가곡 《죽음과 소녀》(1824) 등에 반복되어 온 전승이다. 이 모티프의 기본 의미는 죽음의 불가피성과 젊음의 덧없음이며, 아름다운 처녀가 의인화된 죽음(남성의 형상, 해골 등)에게 붙잡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실레는 이 전통적 상징을 자신의 개인적 서사에 대입함으로써, 개인사를 보편적 알레고리로 승화시켰다. 실레는 자신의 이야기에 보편성과 운명성을 부여했고, 관객들은 이 작품을 단지 작가의 사생활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The Other)’다. 실레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결혼을 선택하고 사랑했던 애인, 발리와 결별한 사건 자체가 상징계의 법칙(당대의 부르주아 결혼 제도) - 대타자의 억압 - 을 따른 행위였다. 그는 예술에서는 반항적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사회의 시선과 경제적 안정에 굴복했다. 따라서《죽음과 소녀》는 한편으로 실레 자신이 순응했던 사회 질서(대타자)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볼 수도 있다. 실레의 개인사를 토대로, 두 연인이 부둥켜안고 있지만 결국 갈라서게 될 운명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사회적 규범 앞에 희생되는 비극적 연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오스트리아 당대 사회의 위선적 도덕관과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운명이 겹쳐 빚어낸 비극이다. 즉, 실레는 상징계의 주체가 실재계의 대타자에 의해 억압되는 과정을 드러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작품 속 남성은 에로스, 여성은 타나토스의 이분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대비가 바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대립 구조로 기능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두 가지 근본적인 충동, 곧 생명과 결합을 향한 충동인 에로스와,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는 죽음 충동인 타나토스사이의 긴장 속에서 작동한다. 에로스는 생명 유지와 종족 보존을 위한 성적 충동, 사랑, 창조, 연대의 본능으로 나타나며, 타나토스는 자신 혹은 타인을 해체하려는 파괴적 본능, 자살적 성향, 죽음에 대한 회귀 충동으로 드러난다.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에서 남성은 그러한 의미에서 삶을 지향하는 에로스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나토스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어두운 색채와 응시 없는 눈, 기묘하게 굽은 등은 그를 살아있는 육체라기보다는, 죽음의 의인화 혹은 죽음 그 자체로 해석하게 한다. 반대로 여성은 사랑을 붙들고 있는 존재, 즉 떠나는 자를 끌어안으려는 마지막 생명의 욕망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프로이트는 죽음 충동이 단순히 파괴적 충동이 아니라, 어떤 ‘원초적 평형 상태’-즉 무(無)로의 회귀-를 추구한다고 보았다. 이 개념은 실레의 그림에서 남성 인물에게 투사된 냉담함, 삶과 감정에서 유리된 표정, 그리고 여성의 고통 어린 집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여성은 아직 생의 욕망을 붙들고 있으나, 그 욕망의 대상인 남성은 이미 상실된 대상으로 존재한다. 결국 두 인물의 관계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즉 결합하고자 하는 충동과 해체되려는 충동 간의 긴장을 예술적으로 구현한 장면이다. 이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고정된 성적 상징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근원적 욕동(慾動)과 그 실패를 감각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실레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예술로써 인간 존재의 무의식적 역동성을 보여주었고, 사랑과 죽음의 양면적 작용을 구현해 냈다.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에서 등장하는 두 인물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기표로서 더욱 심도 있게 탐구될 수 있다. 라캉에 따르면 상징계에서 주체는 언어적 구조, 즉 기표의 연쇄 속에서만 의미를 얻는다. 이 작품에서 남성과 여성 역시 단지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실체가 아니라, 상징적이고 언어적인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기표로 기능한다.
남성 인물은 작품의 중심에서 죽음이라는 기표로 명백하게 작동한다. 그의 어두운 옷차림과 각진 손가락의 묘사는 전통적인 '죽음'의 형상, 즉 생명력을 박탈당한 존재의 전형적인 상징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남성은 살아있는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상징적 죽음과 실제적 존재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이는 라캉이 말하는 상징계와 실재계 간의 경계에서 작동하는 죽음 충동과 연결될 수 있다. 남성은 삶에서 죽음으로의 전이를 나타내는 기표이자, 죽음이라는 상징을 통해 실재계의 접근 불가능성을 환기하게 시킨다.
반면 여성은 '버림받은 연인'의 기표로 작동한다. 그녀는 눈을 감고 남성에게 기댄 채 절망과 체념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다. 여성의 이러한 표정과 자세는 상징계 안에서 욕망하는 대상과 결합하지 못한 채 소외당한 주체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라캉의 이론에서 모든 욕망은 근본적으로 결핍된 상태에서 시작하며, 대상은 언제나 주체로부터 미끄러지고 상실된다. 여성은 욕망의 실패를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욕망이 상징계 내에서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는 본질적 진실을 드러낸다.
이 두 기표 간의 관계는 단순한 상징적 대비를 넘어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기표의 연쇄를 구성한다. 남성-죽음과 버림받은 여성 사이의 관계는 사랑과 죽음, 결합과 분리, 욕망과 상실이라는 대립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기표의 연쇄를 형성하면서 의미를 발생시킨다. 실레의 작품에서 두 인물이 이루는 신체적 접촉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분리 상태에 있다는 것은, 욕망과 대상 사이의 근본적 분열과 결핍이 상징계를 지배한다는 라캉의 이론과 완벽히 부합한다.
결국, 《죽음과 소녀》에서의 '남성-죽음'과 '버림받은 연인'은 단지 실레 개인의 서사를 넘어 욕망과 죽음, 상징과 실재의 관계를 묻는 보편적 기표로 확장된다. 이는 라캉이 말하는 '상징계 내 주체의 근본적 결핍과 욕망의 영원한 미끄러짐'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기호학적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1 : Egon-Schiele.com. “Death and the Maiden.” Egon-Schiele.com. 2025.06.16. https://www.egon-schiele.com/death-and-the-maiden.jsp#:~:text=After%20his%20marriage%2C%20his%20portraiture,outlive%20the%20claims%20of%20death
2 : 박윤미, 전수경. (2010). 방어기제 관점에서 본 에곤 실레의 작품에 내재된 미술의 치료적 요인에 관한 탐색적 고찰. 한국과학예술포럼, 7(0), p.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