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 amo, 죽이는 사랑에서 살리는 사랑으로

by 이준서


https://www.youtube.com/watch?v=RLBxbNTIaeg


hqdefault.jpg Slavoj Zizek on love in relationships





Ti amo는 이탈리어로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다. 이 때의 사랑은 에로스적이기에 애인, 부인, 남편등에게 사용된다. 에로스적인 사랑이란 무얼까?



*


영상 속 슬라보예 지젝은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이것이 우리 처지의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 사람을 실제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의 환상의 좌표에 들어맞는 한에서만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그를 잘못 동일시하고, 오인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틀렸다는 걸 발견했을 때, 사랑은 순식간에 폭력으로 뒤집힐 수 있는 겁니다. 사랑받는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어떤 이상에 들어맞는다는 이유로 사랑받는 것만큼 위험하고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런 사랑은 언제나 — 죽이는 사랑입니다."



사랑에 빠진 이는 대상을 이상화(idealization) 하게 된다.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구와 합일에 대한 갈망은 상대의 결점을 시야에서 지워버린다. 사랑은 당신을 당신 그 자체로 보지 못하게 한다. 지젝의 표현대로, 우리는 당신을 잘못 동일시하고 오인한다. 내 머릿속의 이상화된 '표상'과 실제 '당신' 사이의 간극이 드러나는 순간, 찬란했던 사랑은 순식간에 폭력으로 뒤집힌다. 이상화는 죽이는 사랑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 자체를 볼 수 있는 사랑을 지속해야 한다. 이상화라는 이름의 폭력을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이상화의 폭력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의 고유성(Uniqueness)을 대면하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처럼, 사랑은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다. 이 때 이름을 부른다는 건 단순히 호칭을 붙이는 게 아닌, 상대만이 가진 고유한 빛깔과 향기를 온전히 승인하는 작업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당신의 빛깔, 향기, 분위기, 느낌, 이 모든 고유한 것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준다는 것. 당신의 고유성을 알아봐줌으로써 당신이라는 꽃을 알게되는 것. 이것이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당신의 눈 밑에 자리잡은 작은 점, 당신의 평소 걸음걸이, 당신이 겨울마다 즐겨 매는 머플러의 촉감. 이 사소한 부분들이 모여 당신이라는 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결점이라 여겨졌던 부분조차 당신의 고유함을 이루는 조각임을 깨달을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당신은 고유한 존재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사랑을 지속해나간다. 우리는 때로, 남을 자신의 잣대로 단정짓고 판단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고유성을 해치는 폭력을 없애기 위해, 동시에 건강한 사랑을 이루고자 당신의 사밀한 마음을 알아봐줘야 한다. 최갑수 작가의 고백처럼, 당신이 생각에 잠길 때 기우는 고개의 각도와 좋아하는 음악에 까딱거리는 발끝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이 지독하리만큼 세심한 관찰과 노력이 곧 '너와 나'의 사랑의 지속을 표현한다. 사랑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 당신을 실존적 존재로서 매일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사랑이다. 그러한 건강한 사랑에 대한 기술을 최갑수 작가의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당신을 몰라요.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당신이 좋아하는 그림과 당신이 좋아하는 날씨를 알지만 나는 당신을 몰라요. 아직 몰라요. 당신을 알기 위해 당신이 좋아하는 꽃과 나무와 강의 이름을 알려고 하지만 나는 아직 당신을 몰라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죠. 어쩌면 당신을 오해해서, 당신을 오역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죠.
나는 당신을 몰라요. 하지만 오늘도 나는 당신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당신이 바라보는 방향을 보고 당신의 속도에 맞춰 걷죠. 나는 당신의 젓가락질 습관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뭔가를 생각할 때 고개가 얼마나 기우는지도 알고 있구요.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 발끝을 까딱거리는 것도, 모두가 잠든 밤 흑백 영화를 혼자 보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 수 있을까요.
최갑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98쪽








SERIES-006_The_Flowers.jpg?type=w1 alphonse mucha, The Flowers (series)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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