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 <아무도 없는 곳> 리뷰 / 해석
관점이 곧 지어낸 이야기가 되기도 하거든요.
잘 지어낸 이야기는 믿게 되어있어요.
지어낸 이야기가 더 솔직할 때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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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 몰입해서 본 나머지 두번째 보는 오늘 그 다음 대사가 다 생각나버려서 놀랐다. 이토록 대사가 무의식에 남는 영화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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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석이 쓴 소설이 언급된 유진과의 대화 이후는 우리가 실재라고 믿게 된 잘 만들어진 이야기이며, 창석의 이야기에 관점이 더해진 소설이자, 창석의 실재보다 더 솔직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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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죽는데 선배님은 잘 살아있잖아요./지어낸 이야기가 더 솔직할 때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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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창석은 죽지 않고 잘 살아있다. 하지만 이야기 속 솔직한 창석은 청산가리를 먹고 죽을 정도로 복잡한 내면을 갖고 있다. 실재의 창석은 쉽사리 그러지 못해 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살겠지. 유진과의 대화 이후 나오는 짧막한 컷들을 통해 실재의 창석은 성하에게서 청산가리를 가져오지도, 주은에게 꿈을 팔지도, 공중전화에서 혜정에게 전화를 해 애원하지도 않았다는걸 알 수 있다. 대신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 자신이 더 솔직해질 수 있게, 더 명확하고 깔끔한 판단의 연속 상에 설 수 있게 말이다. 잘 지어낸 이야기 속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우린 상상보다 더 솔직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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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잘 지어낸 이야기다.
처음의 내레이션부터 끝의 뒷모습까지, 모두다.
실재와 환상의 차이는 한끝차이.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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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뒷모습만 보였어
이상하게도 나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어
우리는 어디론가 걸어갔고 달팽이처럼 미끌어지고 있었지
난 텅빈 골목들을 걸었고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