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것이 자유일까, 머무는 것이 자유일까?

영화 <인디에어>를 보고

by 결 디자이너

<자기다움 수업>에서 권민대표님이 세편의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인디에어

어바웃타임

사랑의 블랙홀


제목보다도 포스터의 부제가 나의 눈을 더 사로잡았다.

"목적지 없이 떠도는 당신의 인생 괜찮나요?"



KakaoTalk_20250315_222812163.jpg
KakaoTalk_20250315_222812381.jpg


누군가는 오늘도 비행기를 타고 떠나고 있을 것이다.
어디론가 가는 길,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삶.
그것은 자유일까? 아니면 도망일까?

영화 <인디에어(Up in the Air)>는 늘 떠나는 삶을 살아온 남자, 라이언 빙엄의 이야기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어디에도 깊이 얽히지 않는다.
그에게 하늘은 고향이고, 공항은 일상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라이언은 다시 하늘을 난다.
하지만 처음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는 여전히 떠나고 있지만, 이번에는 떠남이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떠나는 것과 정착하는 것, 무엇이 더 자유로운가?

우리는 떠남을 자유라고 생각한다.
속박되지 않는 것,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것.
그런데 라이언 빙엄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떠나는 것만이 자유라면, 머물 수 없는 삶은 과연 자유로운 걸까?"


그는 스스로를 속박에서 해방된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와 깊이 연결될 수도, 한 곳에 뿌리내릴 수도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선택한 자유였을까?
아니면, 떠나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자유는 떠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도 있고 머물 수도 있는 것, 그 선택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닐까?


라이언 빙엄이 원했던 자유는 무엇이었고, 그가 끝내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라이언은 관계의 짐을 벗고 가벼워지고 싶었다.
그는 가방을 비우라고 말하고,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떠남 속에서도 고독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한때,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을 꿈꿨다.

하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이 그를 그곳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에 얻은 것은 ‘하늘’뿐이었다.

떠나기 위한 떠남, 어디에도 닿지 않는 삶.
그것이 자유였을까?


떠남이 목적이 되어버린 삶은 정말 자유로운가?

떠남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순간,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떠나는 것이 버릇이 되고,
떠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삶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도망일지도 모른다.

라이언은 처음에는 가벼웠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떠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떠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는 정말 자유로웠을까?


우리는 각자의 ‘고향’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라이언은 ‘하늘이 내 고향’이라 말했다.
하지만 진짜 고향은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있는 곳,
떠나더라도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곳.

그에게는 그런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하늘을 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고향을 ‘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흔적,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감각,

그것이 나에게는 떠날 수 없는 공간이 된다.

그렇기에 나는 라이언처럼 살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예술을 남기고,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올 곳을 찾고 싶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도 있고 머물 수도 있는 것.
떠나도 괜찮고, 머물러도 괜찮은 것.

라이언 빙엄이 원했던 것은 자유였지만,
그가 얻은 것은 고립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떠나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고향’이 아닐까?




Q1. 만약 내가 라이언 빙엄의 삶을 산다면, 하늘을 고향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라이언 빙엄처럼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을 산다면, 하늘을 고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마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머물고 싶은 공간’을 찾으며 살아왔다. 내 안에서 예술과 색채, 자연과 공간을 엮으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이언은 속박을 거부하며 떠돌지만, 나는 관계와 공간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에게는 떠도는 것이 자유이지만, 나는 정착하면서도 여전히 자유롭고 싶다.

그러니 내 고향은 하늘이 아니라, 내가 의미를 발견하는 곳일 것이다. 그것이 숲이든, 캔버스든, 혹은 누군가와 나누는 따뜻한 순간이든.

Q2. ‘목적지가 없는 삶’은 방황일까, 아니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일까?

목적지가 없는 삶이 꼭 방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삶이 어떤 감각으로 채워져 있는지가 중요하다. 라이언의 삶은 겉으로 보면 자유롭다. 하지만 그 자유가 스스로 선택한 자유인지, 도망쳐서 얻은 자유인지가 중요하다. 만약 떠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방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떠남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일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자기 발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어떤 삶이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만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면, 목적지가 없어도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라이언은 정말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목적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그의 삶이 방황으로 변했을까?

Q3. 영화의 마지막에서 라이언이 다시 하늘을 날 때, 그는 정말 자유로웠을까?

아니, 그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유였을지 몰라도, 마지막에는 떠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선택지가 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하늘을 날지만, 이번에는 떠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떠난다. 그가 원했던 ‘자유’는 결국 그를 완전히 고립시켰다. 만약 그가 정말 자유롭다면, 선택지가 있었어야 한다. 머물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는 삶. 하지만 그는 떠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그는 자유롭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마침내 깨달았을 것이다. 그가 ‘떠나온 것들’이 사실은 그가 진짜 원했던 것들이었다는 것을.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나는 떠도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우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그 안에서 나만의 예술을 만들고 싶다. 그게 나에게는 ‘고향’이 될 것이다.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숲을 가꾸며, 그곳에서 자유롭게 숨 쉬는 삶을 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두 자기만의 숲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