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나다울 때 탄생하는 무언가

심장이 춤을 추는

by 결 디자이너

열정유랑단, 심장이 먼저 반응한 자리

심장이 춤을 추는 날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누군가 해야 한다기에
"그럼 한번 해보자"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그 시작이 이렇게 나를 설레게 할 줄은 몰랐다.
다시 심장이 뛰게 될 줄도 몰랐다.

고등학생 딸의 학교에서 학부모 축제를 준비하던 어느 날,
고1 팀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굳이 해야 해?"
"이건 초등학생 발표회도 아니고…"
그런 말들이 공기처럼 흘러 다녔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했다.
“우리, 그냥 재미있게 놀아보자.”

그 말 하나에, 나는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었다.


춤을 잘 추지도 않고, 무대가 익숙한 것도 아니지만
함께 웃고 싶었던 사람들.
우리의 이름은, 열정유랑단.


반짝이 의상을 입고 레트로 선글라스를 쓴 채
운동장 한복판에서 엄마, 아빠들이 춤을 췄다.
조금 엉성하고,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우리는 그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살아 있음을 느꼈다.

우린 더 잘해보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응원단 출신 학부모가 합류했고
우리는 본격적인 치어리딩 팀이 되었다.


두 번째 해, 더 빠른 리듬과 복잡한 동작이 늘어났다.
심장은 더 빨리 뛰었고 몸은 더 분주해졌지만
신기하게도, 그 모든 것이 즐거움이었다.


세 번째 해, 고3이 된 딸과 함께 그 친구들까지 무대에 올라서자
세상 어떤 무대보다도 따뜻한 조명이 내 가슴을 비췄다.


"나는 아직 나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직 나를 그리는 중이다."

자기다움이란 게 무언가 대단한 정체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기다움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내가 나로서 몰입하고 있다는 것.
감정보다 먼저 반응하는 심장의 박동.
그것이 자기다움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이끈다.


열정유랑단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했던
가장 나다운 선택.


치어리딩의 묘미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박자를 맞춰가는 리듬에 있었다.
대형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며
나는 내 안에 있던 에너지의 결을 느꼈다.


사실, 나는

이 ‘설렘’과 ‘심장 뛰는 느낌’을 좋아한다.

대학교 때 치어리더를 했던 기억이 났다.

20대 후반에 스윙댄스를 배워 공연을 했던 과거의 조각들을 이어보니

몸이 먼저 반응하고 기분이 따라 웃고
감정이 배를 타고 손끝까지 전해지는 그런 순간을 내가 즐겼다는 것이다.


자기다움이란, 그런 게 아닐까.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감각.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오는 리듬.

나는 열정유랑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자기다움은
"내가 제일 나다울 때, 내 심장이 먼저 안다"는 것을.

무대 위의 나는, 내 삶 전체를 응원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의 가치인 쓰임이 작동한 열정유랑단의 선택,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에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기다움은 무엇을 탄생시키는가

자기다움은 기억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는 순간을 탄생시킨다.
심장이 먼저 뛰고, 미소가 자연스럽게 번지는 그 찰나.
나는 나에게 가장 가까워진다.

자기다움은 노력하지 않아도 흐르는 결에서 피어난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움직임은
결국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 문장은 춤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웃게 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자기다움은 함께 있을 때 더 선명해진다.
다른 사람과 발을 맞추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나의 보폭을 발견하고, 나의 색을 더 선명히 본다.

자기다움은 나를 중심으로 한 세계를 탄생시킨다.
그 세계 안에서 나는 역할이 아니라 존재로 살아간다.


결국, 자기다움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조용하지만 확실한 방식이다.


함께 있는 자리가 나를 더 편안하게 할 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에서
자기다움은 조용히 탄생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괜찮다고 느껴질 때,

나는 조금씩, 더 말랑한 내가 되어간다.


말랑하다는 건,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연약함이 아니라
내 감정에 정직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유연함이다.


누군가에게 맞추기 위해 나를 조이고 다듬는 삶이 아니라,
나를 느슨하게 풀어 진짜 나로 호흡할 수 있는 상태.

나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

단단한 척하지 않아도 괜찮고, 흔들릴 수 있는 사람.
감정의 결을 따라 말랑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 말랑함 속에서, 나는 더 나다워지고
더 살아 있음을 느꼈다.



열정유랑단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자기다움의 실험실

그냥 참여하는 게 아니라, 내 감각을 시험하는 실험장이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나다움이 어떻게 빛나는지를 실감했다.


공동체 안에서의 창의적 쓰임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아는 사람으로서 쓰임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즐거움

감정보다 앞서 반응하는 신체의 리듬.
자기다움은 때론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안다.


딸과 함께한 상징적 통과의례

엄마의 역할을 넘어, 나도 '나로서' 무대에 오른 순간.
이는 딸에게도 자기다움의 본을 보여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기다움은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에 깃든다.

열정유랑단은 그 시작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쓸데없는 일을 하고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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