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살림(脎林)을 이루는 일이다.

살림 안에서 한 존재가 성장하기에

by 결 디자이너

집안일은 살림(脎오사존 살:유기화합물 살 林수풀림)을 이루는 일이다.


집안일은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다. 인간은 숲을 이루듯이 살아가라고 ‘집안 살림 (脎林)’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집안은 가족을 구성원으로 하여 어떤 모양을 가진 존재를 키우는 곳이다. 가족은 살림을 꾸려 나가는 공동체로서 모두 제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살림은 오장 같다’는 속담이 있다. 배 속의 오장이 모두 제 기능을 다해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많은 살림살이도 빠짐없이 모두 소용되기 마련이며, 또한 그 많은 살림살이가 모두 제 기능을 다하여 서로 손이 맞아떨어져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집은 윗집은 형님네가 살고 아랫집은 우리, 앞집은 시부모님이 함께 모여 산다. 타지에서 온 가족 중에서는 대가족이지만 이곳은 역사가 있는 동네라 그런지 가게 주인 분들은 한 다리 건너 사촌이고 친척이다. 그래서인지 동네가 더 친근하다. 우리 대가족이 모여 살게 된 이유가 있다. 형님네의 지인이 지금 살게 된 집을 아주 싼 값에 내놓았다. 숲 속의 한옥으로 지은 집에 매력을 느낀 형님네는 근처에 좋은 초등학교도 있고 공기도 좋고 아토피 있는 큰 아들을 위해서도 이사를 결심했다. 어머니는 암 진단을 받으시고 요양차 고모네로 들어오셨다.


우리는 아버님을 모시고 살다가 사춘기였던 큰아이의 “엄마 나 산에 가서 살고 싶어.”의 한마디와 나도 숲에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 어머니가 형님네로 가시고 아이들을 다른 사람의 손에 키우는 것이 계속 삐거덕거리고 불편함이 공존하고 있던 차였다. 마침 우리 집과 어머니가 분가할 수 있는 두 집이 비었다는 우연 같은 필연으로 일사천리로 3개월 만에 집을 정리하고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왔다.


‘이건 숲으로 가라는 계시다!!!’라고 나는 우연의 동시성이라 생각했다. 숲의 벌레들에, 시월드에. 어떤 결정을 할 때 불편한 감정이 왜 들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 이유로 억지로 밀어붙이거나 보류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나를 위해 계획된 것처럼 조화롭게 돌아가는 것 같은 우연의 동시성을 좋아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편안하다. 함께 잘살아보자는 공동의 존재 이유가 생긴 우리 대가족은 그렇게 새롭게 살림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문장에 인생은 세 가지 조건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하는 것, 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하지 않는 것. 집안 살림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가족은 닮은꼴이 있지만 서로 해야 할 일이 나눠진다. 가장 기본적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하여야 하는 여러 가지 일에는 빨래, 청소 , 벌레잡기 등의 물리적인 것과 아이들의 진로지도부터 가족의 계획, 밥하기 등 마음이 많이 쓰이는 심리적인 집안일이 있다. 밥하기를 심리적인 집안일이라고 한 이유는 재료부터 무엇을 먹을지 신경이 꽤 쓰이기 때문이다.


마음 쓰는 일은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잘하려고 애쓰는 영역이다. 신랑은 나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쓰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대체로 신랑이 물리적인 집안일을 담당하고 섬세함이 필요한 심리적인 집안일은 내가 맡게 됐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정해진 것은 아니고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12년의 내공이 쌓인 것이다. 하지 못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을 나누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문명의 발전에 빨리 따라가는 편이 아닌 우리 부부는 얼마 전 건조기를 샀다. 신랑의 강력한 의사였다. 그동안은 세탁기 돌리는 건 내 몫, 세탁물을 집 밖의 볕 좋은 곳에 건조대를 설치하고 빨래를 너는 것은 신랑 몫, 빨래를 개는 것은 아이들의 용돈 벌이용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렇게 정해 놓지 않으면 서로 눈치 보고 미루고 하는 그 과정에서 별거 아닌 걸로 마음이 상해 있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건조기가 내심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써보니 이건 살림의 신세계다. 베란다가 없는 숲 속의 우리 집에서는 볕 좋은 곳에 널어도 언제 마르나 기웃거려야 하고, 겨울에는 햇빛 없는 집안에 널어야 하고, 행여나 비 오는 날은 빨래를 쟁여 두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뜨거운 건조에 옷이 가끔 줄어서 나올지언정, 햇빛에 바싹 마른 수건의 기분 좋음을 느끼지 못할지언정, 괜찮다. 대신에 다 같이 빨래를 후딱 개고 마음을 쓰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는 내가 적극적으로 탐내는 살림살이가 있다.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물걸레 청소기이다. 로봇 청소기가 돌아갈 때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 이건 꼭 사야 한다. “그거 네 일이잖아.”라는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살림이 평안해진다는 이 깨달음!


그래도 위임할 껀 위임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가족이 먹는 주말 밥상이다. 나는 절대 한가하지 않은 주말 저녁이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최소 일주일에 한 번 밥은 같이 먹어야지 하는 마음이 진심(眞心)으로 든다. 가족 간의 정, 마음을 전하는 일에 푸짐한 밥상만큼 좋은 것이 없다.


“어머니. 주말 저녁은 저희 집에서 드세요. 형님네도 같이 와서 드시죠.”


내가 늦을 때 아이들 간식과 저녁을 차려주고 도움을 받고 있기에 주말 저녁이라도 대접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주말 밥상은 푸짐하게 먹어야 주중에 대충 챙겨 먹던 것이 보상되는 것 같다. 밥을 같이 먹으며 사촌지간끼리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살림 안에서 한 존재가 성장하기에 나중에 커서 아이들이 외롭지 말고 따뜻한 가족을 더 이루고 살라고 밥상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진심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참 진(眞)을 쓰면 거짓이 없고 참된 마음이 되고, 성낼 진(嗔)을 쓰면 왈칵 성내는 마음이 된다. 티끌 진(塵)을 쓰면 속세의 일에 더럽혀진 마음도 된다. ‘진심’의 단어에 이렇게 다른 뜻이 쓰일 수 있다니. 물론 나도 신랑이 먼저 “저녁 엄마네랑 누나네 같이 먹을까?” 얘기하면 시켜서 하는 일 같은 애매한 기분이 들어서 성날 때도 있고 언니들이 시월드에서 괜찮냐고 말할 때마다 속세에 물들어가는 이상한 기분도 든다. 이러면 나만 피곤한가?


집이던 더 큰 공동체의 살림이던 네 거 내 것 경계 짓지 말고 각각의 모양으로 조화로웠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것처럼 진심(眞心)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먼지야 맘먹고 치우면 되지만 진심의 마음은 표현하지 않으면 영 알기 어렵다. 진심이 잘못 표현되어 한번 틀어지면 문짝 고치듯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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