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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27. 2024

살아남을 수 있을까.#3

왜 삶이 행복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일할때는 나와 안맞는 사람이 하필 상사여서 근무하는 내내 마음이 안편했다.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직원들이 있어서 하하호호 하며 위로받곤 했었는데, 그것도 잠시 퇴근하면 아이들 픽업해서 놀이터에 죽치고 있는 시간이 너무 괴로웠다. 늘 보는 얼굴들, 알지만 친하지 않은 그들, 우리 아이들의 친구의 엄마들. 그 사이에 끼지도 못하고 끼고 싶지도 않은 나는 늘 멀찌감치 외딴 벤치에 앉아서 우리 아들만 주시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걸. 아이들은 항상 싸우고, 뭘 먹거나, 다치거나..등등 엄마들이 개입해야할 상황이 늘 생긴다. 그럴때마다 사과시키고 교육시키고, 상대방 엄마와 형식적으로나마 해야하는 대화들. 그 모든게 버겁고 불편했다. 


본청으로 발령받고나서 연일 초근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멍을 때리는데 이런생각이 들었다. 아..그래..애들한테서 잠시 벗어나서 나도 어떤 일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는것도 괜찮지. 버티고 버티다 안되겠다 싶으면 나는 결국 일에 열정도 없고, 편하게만 살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더라도 도망가면 되니까. 라는 합리화를 했지만 결국 통하지 않았다. 불편하지 않지만 편하지도 않은 사람들. 해결할 방법이 없진 않지만 해결할 방법을 찾는데 너무 오랜시간이 걸리는 일들. 능력도 없고 영양가도 없다고 매순간 전해지는 나의 전임자. 그리고 실제로도 뭘 물어보면 명확하게 답을 주지 않는 그녀. 인계인수를 그렇게 오래 받았지만 계속해서 수면위로 떠오르는 그녀가 남긴 오물과도 같은 흔적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고 가끔은 자괴감의 지옥인 나의 위치. 나의 자리. 


결국은 이도저도 행복하지 않다. 하나를 쥐려면 하나를 놔야한다는데, 나는 어쩌면 쥐어야할걸 놓아버리고 놓아야할걸 멍청스럽게 쥐고있는건 아닐까. 다수의 눈에서 피눈물 빼게 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나, 현생에서나 떵떵거리면서 잘만사는데 난 내 눈에서 눈물을 빼면 뺐지 그다지 타인에게 영향을 줄만큼의 사람도 아닌데 왜 삶이 하나의 형벌같을까.


벗어날 수 없는 쳇바귀 같은 육아와 일상과 일. 아니 일상이 품고 있는 육아와 일. 순서가 어쨌든 수용소에 갇힌 죄수처럼 나는 육아 일 일상 일상 일 육아 육아 일 일상 일상 일 육아를 맴돌며 그렇게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눈물이 난다. 누구하나 가리지 않는 장소에서 멀쩡한 몸뚱아리와 멀쩡한 직업과 가정,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표현이 제격인 아이들이라는 햇볕을 매일매일 원없이 받으면서도, 나라는 사람은 늘 습하고 더러운 냄새나고 음침한 지하로 한발짝 한발짝 빠져들고 있다. 이게 바로 우울증인가. 우울증은 원래 있었지. 그럼..우울증보다 더 심한건 뭐지..?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면 너무도 쉽게 자기 목숨을 버린다. 모든것이 무마되길 바라면서. 나는 죽을수도 없고, 죽을 생각도 없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나 하나 죽는다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고, 나 하나 없어진다고 그 누구도 빈자리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로인해 내가 일말의 허망함이나 서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이미 많은 이들이 간 길을 따라가는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거라고. 


하지만 세가지 조건중 그 어떤것도 충족될 수 없기에 나의 형은 지속된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한없이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 손을 꼭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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