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이 돋아나지
누군가 그랬다. 세상을 살면서 숨길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고. 사랑과 감기라나, 사랑과 기침이라나. 하지만 이는 세상을 굉장히 만만하게 살아간 사람이 그냥 내뱉은 말이 아닐까 싶다. 세상이 참 무섭고 버거운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을 살다 보면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사랑과 감기 그리고 정신병이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정신병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위화감이 굉장히 커서 언뜻 읽으면 내가 아주 큰 병에 걸린듯한(예를 들어 당장이라도 투신하거나, 누군가를 해할 정도의)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약간의 우울감, 조금 깊은 우울감, 만성 우울감, 그리고 공황장애정도랄까. 사실 우울감은 그렇다 치고 공황장애는 나만의 추측이다. 흔히 말하는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난 지는 벌써 1년이 다되어가지만 이것을 가지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은 없으니까.
공황장애 증상이 처음 발생한 건 작년이었다. 심리적으로 나를 짓누르는 여러 사람과 상황들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밥을 잘 못 먹게 되었고,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심하게 뛰고, 자판을 치는데 손이 지속적으로 떨린다거나, 숨이 막혀오는 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가뜩이나 예민한 성격은 거의 송곳에 가까워졌고 누군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엄청난 분노 혹은 슬픔이 터져 나왔다. 정말 흔히 말하는 미친년처럼.
몇 달 만에 몸무게가 5kg 이상 빠지고 나서야, 우리 애들이 내가 가만히 있으면 "엄마 또 울어?"라고 할 정도가 되어서야 상담사를 찾아가게 되었고 탈출을 위한 불편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탈출을 위한 보고, 보고, 그리고 계속해서 퍼져나가는 유언비어, 소문, 헛소리들을 견딘 결과 지금 이 학교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내 정신과 몸을 수습하지 못한 채 새로운 환경에 또 던져져서일까. 서서히 말라갈 거라 기대했던 눈물은 지독한 후회와 함께 끝없이 차올랐다. 마치 끝을 모르고 흐르는 저 지중해 바다처럼, 사람들이 가끔은 주먹만 하다고 놀라는 내 얼굴 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감정은 금요일에는 조금 사그라들었다가 월요일 아침이 되면 조금씩 조금씩 나를 갉아먹다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 순간 내 숨통을 조여왔다.
말 그대로 누군가 나를 죽이겠다는 살의를 두 손에 가득 담은 채 내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다. 점점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살아야겠다는 본능으로 사무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일개 직원이 사무실을 나온 들 갈 곳이 어디가 있을까. 화장실에 들어간들 울음소리가 감춰질 것이며, 운동장으로 나간 들 해맑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눈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시체가 되어가듯 차가워지는 손으로 겨우 주먹을 꼭 쥔 채 들어간 곳은 문서고였다.
문서고. 하루에 방문객이 한 명은 될까 말까 한 죽은 문서들이 가득 차있는 그곳.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지만 "역사"라는 이름 하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종이들이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그곳에 나는 숨어 들어갔다. 이곳만큼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 때문일까, 문서들 사이에 몸을 숨기니 그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 없는 울음. 바람에 벚꽃나무 흔들리듯 파르르 떠는 나의 몸.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 이러다 기절이라도 하면 정말 아무도 날 못 찾을까 봐 꼭 움켜쥔 핸드폰. 머리를 울리는 신호음. 들리는 목소리. 해결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의미 없는 대화.
얼마나 흘렀을까. 우는 건 마음을 청소하는 거라던 어떤 이의 말처럼 한참을 울고 나니 나를 짓누르던 심리적 압박감이 조금은 쓸려내려 간 듯 자연스럽게 숨이 돌아왔다. 시뻘게진 두 눈과 루돌프가 따로 없는 코는 어찌할 수 없었지만 진정된 마음으로 자리에 앉으니 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힘겹게 또 한 번의 공황장애 같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쓰나미가 날 덮친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벗어나고 싶지만 한없이 익숙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지만 끝없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이곳에서. 이 불편한 학교에서. 정신병이 돋아나는 이 터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