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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재

by JA

길고 길었던 연휴 끝, 나에게 남은 건 가족과의 좋은 추억, 행복한 사진 그리고 망가진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이 막을 틈도 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급하게 들어 확인한 핸드폰은 액정이 정말 검게 변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다행이었던 건 평소 접어 쓰는 기종이었던 만큼 메인 액정을 깨졌지만 접었을 때 보이는 보조액정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핸드폰이 망가져 불편했지만 또 한편으론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던 평소와 다름없던 출근길. 매달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업무가 마무리되는 날이었기에 마음은 무거웠지만 그래도 핸드폰이 없어서였을까 집중도 잘 되어 이대로 마무리만 하면 마음 가볍게 주말을 보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무려 사무실에서 살짝 들떠있기도 했다.



그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많은 카톡과 알림을 받고도 정작 주인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무용지물의 핸드폰 보조액정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평소 전화를 잘 받지도 않을뿐더러 모르는 번호는 거의 100% 안 받는 나였기에 쿨하게 끊어버릴까 하다가 문득 내가 어떤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전화기를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하루, 이틀사이 벌어진 일이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기억이 안 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떤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보세요"


이 네 글자에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안도의 한숨과 주저함을 가득 담아 나에게 알 수 없는 말을 급하게 쏟아냈다.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의 이름이 내 귀를 메웠고, 나는 주저앉았고, 그는 자신을 경찰이라고 밝혔다. 한동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나에게 도가 넘은 친절함을 베푼 그가 다시 한번 반복해서 이야기해 주는 바람에 나는 범죄수사 프로그램에서 흔히 표현하듯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한 대 , 마음을 한 대 두드려 맞은 듯 모든 게 산산조각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일반적인 부녀사이도 아니었기에 부녀간의 사랑은커녕 정도 없을뿐더러 조금의 시간을 더 보태면 가물가물 기억나는 얼굴조차 지워졌을 텐데, 그럼에도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는 아버지가 있다고 하기에도, 없다고 하기에도 애매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돌아가셨어"라는 말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깔끔히 정리하면 끝인 것을 뭐가 남아있었기에 그렇게 눈물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타버린 아버지의 유골을 넘겨받고 나니 그 어떤 생각도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경찰, 검안의, 장례지도사, 그리고 생전 안부조차 묻고 살지 않았던 수많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나를 거쳐간 모든 절차들이 다 꿈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오직 딱 한 가지, 이 순간이 너무 이르게 찾아왔다는 생각만이 무섭도록 선명하게 나를 서럽게 만들었다.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는 차츰차츰 식어 내가 만져볼 수 있을 만큼 따뜻해졌다. 그리고 백옥처럼 흴 줄 알았던 유골은 아버지가 살아온 생을 나타내듯 얼룩덜룩했다. 문득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흘러가버린 세월이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이제는 진짜 마지막이기에, 장갑이 아닌 나의 맨 손으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의 우려와 조금도 솟아오르지 못한 나의 의지는 장갑으로 덮였고, 그렇게 아버지는 나에게서 완전히 떠나가버렸다.


남보다도 못하게 지낸 세월이 무색하게 흘렀던 나의 눈물과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을 지켜준 아버지의 형제들, 그 외의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의 통곡을 발판 삼아 바람에 흘러간 나의 아버지.


왜 우리를 버렸냐고 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냐고 왜 끝까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냐고 그리고 마지막 모습조차 왜 이렇게 초라하냐는 모든 원망을 이제는 편안히 잘 가시라는 말로 모두 덮으려 한다. 가슴 한 구석 저 어딘가에 묻어뒀던 나의 남편, 나의 아이들을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은 보여드리고 싶었던 해묵은 바람도 수의 입은 그 모습에 얹은 내 손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이제는 편안하시기만을 마음으로 빌어드리려고 한다.


잘 가요 아빠.

가끔은 생각날 거예요.

그곳에서는 편안하세요.

모든 걸 잊고. 우리도 잊고. 그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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