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부부싸움, 배우자가 밉게만 보이는 순간 다루는 법
가족여행 떠나기 전 알아야 할 감정수업
- 가족여행을 통해 드러난
부모의 욕망과 회복의 심리학 -
부모도 로맨틱한 여행지에서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 내게는 이탈리아 남부의 카프리가 그랬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흥분된 기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 마음은 자연스레 남편과의 연애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고, 우리는 어느새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들떴다. 옆에서 듣던 아이도 처음 듣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에 즐거워했다. 그 순간 배우자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하지만 여행에서 늘 이런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관계에서는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 정서적으로 매우 가깝게 의지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기대하는 것도 그만큼 많고, 그것이 좌절될 때 미운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부부는 사회적 규범이나 자녀 앞에 모범을 보이려는 압박 때문에 미움을 억압하기 쉽다. 그러나 미움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힘을 약화시킨다. 갈등이 있을 때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기보다,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건강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행은 이런 갈등을 더 자주 불러낸다. 하루 종일 붙어 다녀야 하니 사소한 불편도 쉽게 커진다. 아이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싸울 수도 없고, 여행지에서 감정이 상하면 즐거운 추억을 허비하게 되니 억누르려 하지만, 결국 터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한번 오면 쉽게 떠나기 어렵다는 홍해 연안의 이집트 해변 마을, 다합. 그곳에서 우리는 보름을 머물렀다.
당시 남편은 매일 반나절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과정에 참여했다. 나는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이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근처 바닷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 카페에서 쉬기를 반복했고, 점심쯤 되면 남편이 합류했다.
그런데 마음 한켠에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여행 전부터 알아본 요르단 고대 유적지 ‘페트라’ 투어. 다합에서 무박으로 다녀올 수 있다 했지만,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기에는 부담스러워 현지에서 알아보려 했다. 문제는 준비 부족이었다. 현지에서는 투어비가 ‘달러’로만 결제되는데, 우리 손에는 유로밖에 없었다. 게다가 인터넷 후기에는 “차가 오지 않았다”, “서비스가 엉망이었다”는 불만이 많아, 믿을 만한 업체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무턱대고 가격만 보고 결정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뚜렷이 믿을 만한 선택지도 없어, 모든 게 운에 달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후에 남편과 함께 업체를 다니며 알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남편은 “당신이 오전에 잠깐 가서 가격만 먼저 알아봐”라고 말했다. 내가 영어가 서툴러 자신 없다고 하자, 그는 “이집트 사람들도 다 잘만 하는데, 왜 못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영어 좀 한다고 생색내는 거야? 치사하다, 정말.”라고 쏘아붙였다.
사실 그 이면에는 영어에 대한 나의 열등감과 불안이 있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남편의 태도에 투사해(덧씌워) 비난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영어로 가격을 묻고 흥정해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긴장됐다. 이집트에서는 달러가 유로보다 훨씬 강세라, 유로로 내면 손해가 극심했다. ‘세 명 비용이 적은 돈도 아닌데, 잘못 말해 손해라도 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불안했다. 그 순간, 영어에 대한 열등감은 곧바로 ‘상대에게 허술해 보여 사기당하기 쉬운 나’라는 왜곡된 자기표상으로 변했다. 두려움은 더 커졌다. 그래서 “같이 가보자”라고 했지만, 남편이 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자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억울함과 서운함이 함께 폭발했다. “내가 오전 내내 아이를 보며 당신을 배려했는데, 왜 나를 배려해 주지 않는 거야?” 하는 원망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그 순간, 그동안 함께 쌓아온 시간이 단숨에 지워진 듯, 남편이 마치 단 한 번도 나를 배려한 적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불안은 곧 남편에 대한 강한 의존욕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남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고, 그는 “당신도 스스로 해보라”는 메시지를 담아 거절로 응수했다. 그 거절 속에는 “왜 늘 내가 짐을 져야 하지?”라는 불만이 있었다.
그렇게 내 의존과 그의 거절이 맞부딪히며, 사랑과 미움이 얽힌 부부 갈등의 전형적인 그리고 유치한 장면이 연출됐다.
부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건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우리 부부도 늘 쉽지 않았다. 미리 조율하면 좋겠지만, 서운함과 미움이 쌓이면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고여 있다가 감당 못할 만큼 커져버리곤 했다. 그래서 늘 사건은 터지고, 그 뒤에야 수습하며 문제를 해결해 갔다. 그렇게 뒷북치듯 부딪히고 풀어가면서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다.
다만 욱하는 감정폭발 대신 문제해결에 집중하려면, 무엇보다도 ‘상대의 다른 마음’을 함께 떠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내가 그때 화낸 건 피곤해서였어”처럼 보이지 않는 내적 의도를 스스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눈에 보이는 행동만을 근거로 판단한다. 그래서 오해가 생긴다.
다합에서 남편이 “당신이 먼저 가서 가격 알아봐”라고 했을 때가 그랬다. 나는 그 말을 ‘내 불안과 두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 무심한 태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실 남편의 속마음에는 “쉬고 싶다”는 바람이 숨어 있었을지 모른다. 물을 두려워하면서도 도전했던 스킨스쿠버 과정이 남편에게는 이미 큰 긴장이었으니, 그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의도를 먼저 떠올렸다면, 억울함과 분노로 맞서기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내가 서툴러서 잘못된 정보를 가져올까 봐 자신이 없어서 그래. 같이 가주면 안 될까?” 그랬다면 우리의 대화는 ‘유치한 말싸움’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대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에서야 조금 더 편하게,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이면의 다른 면도 함께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금세 다른 면이 보이지만, 때로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한 번은 냉장고에서 오래된 야채를 꺼내며 남편이 “왜 신경을 안 썼냐”라고 한마디 했다. 순간 마음이 상했지만, 곧 장을 보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제대로 살림을 못한다고 나를 비난한다”는 생각보다, 버려지는 재료가 아까워 속상해하는 그의 마음에 주목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아닌 상대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일 때, 관계에서 불필요한 상처를 덜 입게 된다. 그 시작은 행동 이면의 마음을 아는 것. 알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면 존중이 가능하다. 존중이 쌓일수록, 나와 다른 상대를 견뎌내는 마음의 여유도 커진다.
1. 보이는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떠올려라.
“왜 나만 시켜?”라는 억울함보다, “혹시 쉬고 싶었나?”라는 마음을 먼저 짚어보세요.
2. 내 불안이 투사되지 않았는지 살펴라.
상대의 말이 ‘비난’으로만 들린다면, 내 속의 열등감과 두려움이 투사된 건 아닌지 점검하세요.
3. 감정 대신 욕구를 말로 꺼내라.
“같이 가주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아.”
솔직하게 표현하는 순간, 싸움은 줄고 대화가 시작됩니다.
※ 이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의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