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위한 배려가, 왜 때로는 불화를 만들까?

배려했는데도 왜 자꾸 갈등이 생길까요?

by 박윤미
가족여행 떠나기 전 알아야 할 감정수업
- 가족여행을 통해 드러난
부모의 욕망과 회복의 심리학-




우리 집에 불화의 신이 온 날

“엄마, 오늘도 우리 집에 불화의 신이 다녀갔어.”

어느 날 남편과 제가 식탁에서 의견 차이 때문에 언성을 높이자, 아이가 옆에서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준아, 우리 집에 불화의 신이 자주 오는 것 같아?”

“응, 요즘에는 매일 오는 것 같은데?”

이탈리아 여행 중, 로마ㆍ그리스 신화 속 신들을 자주 접했던 아이가 내뱉은 말에 나는 뜨끔했다.

불화의 신은 언제 찾아오는가?

바로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짐작만 하고, 확인하지 않을 때였다.

시칠리아 시라쿠사에서의 넷째 날 아침도 그랬다.



서로 다른 해석, 작은 차이가 불화를 만든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카타니아로 향하기 전, 우리는 좋아하던 그라니타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차를 몰고 가던 중 내비게이션 도착 시간이 11시를 넘어가는 걸 보고서야 대화가 어긋났음을 깨달았다.

“유료주차장?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그라니타 먹으러 가는 거 아니야?”

“응.”

나는 당연히 ‘그라니타 가게 근처 주차장’을 떠올렸지만, 남편은 ‘빌라 로마드 유적지 주차장’을 찍어두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젯밤에 아침에 들르자고 했는데, 왜 잊었지? 내가 잘못 기억한 건가? 아니야, 남편이 깜빡한 거야.’

짜증과 원망이 동시에 올라왔다. 짜증은 ‘왜 혼자 딴소리를 하지?’라는 생각에서, 원망은 합의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배신감에서 비롯됐다. 뒷자리에 앉아 나와 남편의 대화를 듣던 아이도 “그라니타 못 먹는 거야?”라며 울먹이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나는 ‘이건 남편 잘못이야, 왜 함께 의논한 걸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거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웃하는 날이라 서로 예민한데, 이렇게 자꾸 어긋나면 안 되는데…’라는 불안도 교차했다. 억눌린 말과 속마음이 뒤엉킨 채, 우리는 점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미안함이 불러오는 보상적 행동

남편과의 투닥거림은 주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남편은 이동 거리를 오가는 시간과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나와 아이는 즐겁고 맛있는 경험을 더 우선했다. 정해진 시간을 못 맞추더라도 무리하지 말고 쉬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남편 입장에서 이런 선택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며칠 전, 아그리젠토에서 시라쿠사로 이동할 때 나는 ‘로마의 별장(빌라 로마드)’이라는 장소에 호기심이 생겨 가보자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옛날 집이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굳이 또 볼 필요 있겠냐”며 동선상 비효율적이라고 반대했고, 결국 가지 않았다. 나 역시 즉흥적으로 알게 된 장소였기에 그를 더 설득할 이유가 없어서 굳이 고집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라쿠사에서 머무른 뒤 체크아웃하던 날, 남편은 생각보다 시간이 여유롭자 ‘빌라 로마드’를 들르려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미안함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이다. 즉, “아내가 원했던 걸 못 해줬다”는 찜찜함을 만회하고 싶었던 것. 남편의 행동은 결국 ‘예전에 거절했던 것을 보상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겉으로는 나를 위한 배려였지만, 속에는 자기 욕구를 조금 희생하더라도 ‘좋은 남편,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무의식

이는 부부관계에서나 부모-자녀관계에서 흔히 나타난다. 우리는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다. 그것은 미안함을 만회하려는 마음이자, 내 안의 죄책감을 덮으려는 욕구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마음을 말로 꺼내지 않고,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행동으로 대신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상대가 기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억울함과 분노가 올라온다.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데, 넌 왜 그래?” 하며 원망하게 되고, 자신은 오히려 무구한 희생자로 느껴진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행위에는 사실 상대와의 갈등을 보상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나 자신의 욕구가 숨어 있다. 여기까지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의 욕구가 언제나 변한다는 것이다. 나의 욕구와 상대의 욕구는 늘 어긋날 수 있다. 나는 이미 ‘로마 빌라드’에 대한 흥미를 잊은 지 오래였고, 대신 맛있는 그라니타를 먹으며 여유로운 오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 있었다. 결국 남편의 ‘배려’는 나의 현재 욕구와 맞지 않아, 오히려 내 기대를 다시 좌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말하지 않은 미안함이 부른 오해

가족은 종종 “미안하다”는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가 좋아할 행동을 하며 마음을 표현하려 한다. 아이를 혼내고 나서 갖고 싶어 하던 물건을 슬쩍 사주며 기분을 풀어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상대의 욕구와 어긋날 때 오히려 오해를 만든다.

부모는 ‘내 마음이 전해졌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화난 마음을 드러내며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라고 하면 당황한다. “내가 저 해달라는 건, 다 해줬는데 왜 이러는 걸까?”라는 억울함에 빠지게 된다. 반대로 아이는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내 마음은 여전히 이해받지 못했다’는 서운함을 품는다. 적절히 표현되지 않은 미안함은 결국 부모의 억울함만이 아니라, 아이에게도 ‘내 마음은 여전히 알아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으로 각인된다. 아이는 그 순간 부모의 선의보다 자기 마음이 존중받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아직 상대방의 의도를 충분히 헤아릴 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의 한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차를 돌려 다시 그라니타를 먹으러 갔지만, 토요일이라 그런지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다시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2번째 메뉴, 해산물 튀김을 시장에서 샀다. 해안가에 앉아 해산물 튀김을 먹으며 파도만 바라봐도 좋았다. 짐을 챙기고 옮기느라 긴장했던 마음도 풀리고, 불화의 신은 이미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심리코칭 한 마디]

미안함이 생길 때, 부모가 기억해야 할 감정 수업

1. 미안함은 감추기보다 말로 꺼내라.

“내가 그때 네 마음을 충분히 살펴주지 못했구나, 미안해.”

2. 상대의 욕구를 직접 확인하라.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라는 추측은 종종 오해를 낳습니다.

3. 내 욕구와 의도를 분명히 하라.

상대를 위한 행동 같아도, 사실은 내 불안·죄책감을 달래려는 것일 수 있음을 자각하세요.




덧.

시칠리아 특산물 아몬드 그라니타. 더운 날 더위를 싹 날려주었다.

한 번 더 먹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 이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의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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