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불평을 성장으로 바꾸는 부모의 감정조절기술
가족여행 떠나기 전 알아야 할 감정수업
- 가족여행을 통해 드러난
부모의 욕망과 회복의 심리학 -
시칠리아 카타니아의 활화산, 에트나에 올랐던 날에도 어김없이 우리 집에는 불화의 신이 찾아왔다. 에트나에 온 김에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등반해보고 싶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 올라간 뒤, 다시 4륜 구동 버스로 갈아타고 10분간 더 높이 올랐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직접 걸어 올라가야 했다. 발이 흙 속에 푹푹 빠져 한 걸음 떼는 것도 힘들었다. 내복부터 두꺼운 옷에 바람막이 잠바까지 겹겹이 껴입었는데도 고도가 높아서인지 공기가 차가워 가만히 서 있으면 몸이 떨렸다. 바람은 몸을 날려버릴 듯 몰아쳤다. 예상보다 훨씬 가혹한 조건에 난감했다. 십여 개를 훑었던 SNS 후기에서는 보지 못했던 순간들이었다.
아이도 곧 힘들다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힘들어~ 못 가겠어.”
“왜 이런 곳을 가야 해?”
“안 가면 안 돼?”
나는 “조금만 힘내서 가보자. 얼마 안 남았어.”라며 달랬다. 하지만 불만이 멈추지 않자, “봐 봐, 저 앞에 너보다 어린 동생들도 올라가는데? 너도 할 수 있어.”라며 재촉했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아이의 불평이 이어지자, 내 안에서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려는 거야?’라는 못마땅함이 치밀었다. 아이를 보듬는 말 대신 “거금을 주고 왔는데 그냥 가자고? 고생을 안 해봐서 돈 아까운 줄을 모르네!”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10살 아들이 한없이 나약하게 보였다. 씩씩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묵묵히 걷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며 불평은 곧 ‘나약함’으로 치부됐다.
‘혹시 내가 너무 받아주기만 해서 아이가 이렇게 된 걸까?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나약함을 키운 건 아닐까?’ 하는 자책도 스쳤다. 불평은 계속되고, 나는 더 어린아이들과 비교하며 “왜 너만 못 하냐”라는 말을 쏟아내고 싶었다.
사실 아이가 감각에 민감한 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그 민감함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소화되지 못한 채 마음속을 굴러다니는 자극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길게 늘어진 무리를 따라 산길을 오르며, 내 마음속에 비친 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은, 아이가 감당하지 못한 경험을 내가 대신 소화해 되돌려줘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불평과 투정이 가득한 말들은 부모에게 짜증과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또 시작이네.”라는 생각에 한숨이 쉬어진다. 아이들은 의사소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해, 처리되지 못한 마음을 그대로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 장면을 늘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는, 불편한 감정을 아이가 좀 더 견뎌낼 수 있는 것으로 바꿔주는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비온이 말한 것처럼, 아이가 감당하지 못해 내뱉은 날것의 감정을 부모가 받아 이해 가능한 언어로 변형해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많이 힘들지? 엄마도 발이 푹푹 빠져서 걷는 게 쉽지 않아. 너는 더 힘들 거야. 이 길이 단단하지 않은 건 화산 땅이라서 그래. 풀이 자라지 않아 흙이 더 느슨하거든. 거길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거야. 나무가 하나도 없어서 바람이 그대로 불어오기 때문에 이렇게 앞으로 걷는 게 힘들 만큼 강한 것 같아. 엄마 아빠 뒤쪽에 바짝 붙어 볼래? 그럼 바람이 좀 막혀서 더 나을 수 있거든.”
<포착 → 변형 → 정서적 의미 부여>의 과정을 거쳐주는 이가 없다면, 아이는 불편한 감정을 스스로 견뎌낼 근력을 키우기 어렵다. 제때 소화되지 못한 감정은, 체한 음식이 토해지듯 거칠게 밖으로 터져 나온다. 부모가 보조자아가 되어 아이의 경험을 곱씹어주면, 아이는 단순한 감각적 불편을 넘어서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을 얻는다. 그 힘이 쌓일 때, 자기를 견디는 힘이 생긴다. 즉,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자란다.
물론, 이 과정이 당장 아이의 기분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다음을 위한 중요한 사전 작업이 된다. 이렇게 조금씩 쌓이는 경험이 모여, 아이는 불편함 너머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연결해 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물론 이런 과정이 늘 순조롭지는 않다. 아이와 함께하다 보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아이가 기대에 부응할 때는 즐겁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세 짜증이 밀려오고, 때로는 서운함이 깊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내 마음부터 알아야 상대방의 마음도 보인다.
부모는 흔히 합리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자녀를 위한 듯한 선택 안에도 부모 자신의 욕구가 자리할 때가 많다. 나 역시 에트나 화산에서 다른 액티비티를 포기하고 아이를 위한 코스를 선택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이가 불평을 늘어놓자, 나의 배려가 무시된 것 같아 억울함이 몰려왔다. 사실은 ‘아이를 위해’라는 이름 속에 내 욕심이 숨어 있었고, 그것이 좌절되자 더 견디기 힘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마음은 때로 아이의 감정과 필요를 무시한 채 부모의 기대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내가 너를 위해 희생했는데, 네가 불평하다니.’ 결국, 희생처럼 보이는 육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의 욕구가 개입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의 불평 앞에서 더 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게다가 아이는 아직 미숙해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모는 갓난아기의 의존은 사랑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조금 더 큰 아이가 기대어 올 때는 버겁게 느낀다. 내가 원하는 방식의 의존은 반기지만, 그렇지 않은 방식의 의존은 견디기 어렵다. 특히 아이가 감당하지 못한 불편한 감정을 부모에게 쏟아낼 때 그 무게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런 역동이 강할수록 부모의 고통도 커진다. 나 또한 아이가 스스로 감당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순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나약한 아이, 예민하고 문제 있는 아이’로 아들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내 마음 안에 차올랐던 감정들의 실체를 이해하자, 아이로 인해 불편했던 내 감정을 더 잘 견딜 수 있었다. 감정적으로 폭발해 비난을 쏟아내는 대신 담아둘 수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눈앞의 아이가 보였다.
내가 마음 안에 그려놓은 이상적 기대 속의 아이가 아니라, 케이블카를 타기 전 산 아래쪽 분화구를 신나게 살피던 아이였다. 그렇게 떠올리니, 아이가 내뱉은 감정들이 내 안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아이가 내뱉은 불평은 ‘가기 싫다’는 말이 아니었다. 발이 푹푹 꺼지고, 신발에 흙이 들어가 불편한 상황이 싫다는 표현이었다.
아이가 쏟아낸 날것의 감정이 의미 있는 말로 다듬어지는 과정이 그 순간에 이뤄지면 좋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돌아본 뒤, 아이와 다시 나눠도 충분하다. 중요한 건 ‘천천히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부모가 먼저 경험하는 것이다. 부모가 이 과정을 먼저 할 때, 아이도 감정을 소화하는 힘을 배울 수 있다. 이 기능을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다.
1. 아이의 불평은 미숙한 감정 표현이다
아이는 불평으로 힘듦을 드러낼 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에요.
“또 시작이네”라고 짜증내기보다, ‘내가 힘들다’는 감정 신호구나 하고 해석해 주세요.
2. 부모의 기대 속 욕구를 들여다보라
“내가 너를 위해 희생했는데, 네가 불평하다니”라는 억울함 뒤에는 부모 자신의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내 안의 기대와 실망을 먼저 성찰해 보세요.
3. 불편을 견딜 만한 감정으로 돌려주라
아이가 쏟아낸 날것의 감정을 부모가 곱씹어 돌려줄 때, 아이는 감정을 견디는 힘을 배웁니다.
“많이 힘들지? 엄마도 발이 빠져서 걷기 어렵네. 화산 흙이 느슨해서 더 힘든 거야.”
이렇게 감정에 의미를 부여해 되돌려줄 때, 아이는 불평을 넘어 성장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덧. 시칠리아 활화산 에트나.
※ 이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의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