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가 엇갈릴 때, ‘나’도 좋고 ‘우리’도 좋은 시간

by 박윤미
가족여행 떠나기 전 알아야 할 감정수업
- 가족여행을 통해 드러난
부모의 욕망과 회복의 심리학 -



나는 여행에서 더 많은 걸 보고 싶고, 역사적 현장에는 가이드 투어에 참여해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런데 남편과 아이가 쉬고 싶어 할 때마다 그런 나의 바람은 욕심처럼 느껴져, 자꾸 접어야 했다. ‘그래, 너는 커서 다음에 또 올 수 있겠지만, 나는 나이 들어 다시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쉬움이 쌓이곤 했다.

하지만 피렌체에서 혼자 미술관을 다녀온 뒤, 다시 가족과 마주했을 때는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내 바람이 조금 채워진 덕분에, 남편과 아이의 욕구도 더 자연스럽게 존중할 수 있었던 거다.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보다 인정하고 다룬 경험이, 오히려 가족과의 관계를 지켜 주는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가족여행은 소중한 아이와 배우자가 함께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그런데 늘 상대에게만 맞춰주기만 한다면, 그게 진짜 건강한 관계일까?

물론 부모가 어른이니까, 아이의 욕구를 더 챙겨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부모의 욕구가 계속 눌리고 채워지지 않으면, 아이한테 언제나 관대하게 대하기는 어렵다.



함께하지만, 따로 또 같이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함께하되, 따로 또 같이’다.

마치 패키지여행 안에 자유시간이 있는 것처럼. 예전에는 정해진 일정대로만 움직이는 게 패키지여행의 전부였다면, 요즘은 중간중간 각자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반(半) 패키지여행이 더 인기가 많다. 같이 다니다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서 함께 한다. 우리 가족도 여행 중에 이런 ‘함께하되, 따로 또 같이’의 시간을 종종 가졌다.

나는 문화 유적지를 두루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큰 편인데, 남편과 아이는 지루해했다. 그래서 피렌체에서는 혼자 미술관과 박물관을, 로마에서는 혼자 시내 근거리 투어를 하기도 했다. 남편과 아이는 숙소에서 편하게 쉬고, 나는 가고 싶은 곳을 더 둘러봤다. 덕분에 남은 일정에서도 내가 그날 보고 들은 것들을 남편과 아이에게 내 방식대로 이야기해 줄 수 있었고, 그러면서 우리는 함께하지 않은 시간조차도 함께 만들어가는 연결지점이 생겼다.

이집트 다합에서는 남편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스쿠버 교육을 일주일 동안 받았는데, 그동안 나랑 아이는 바닷가에서 수영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놀았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남편이 우리에게 합류해서 그날 경험을 얘기해 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직접 바닷속을 안내해 주기도 했다. 떨어져 있던 순간이 생기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연결될 수 있었다.

아이가 크면 부부끼리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에서 분리된 공간을 활용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하루 일정을 마친 뒤, 아이가 방에서 영상을 보거나 일기를 쓸 때 혹은 책을 볼 때, 우리는 옥상 테라스나 주방 식탁에서 와인을 마시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처럼 여행 와서 늘 붙어다니기만 하기보다는, 반 패키지여행처럼 ‘함께와 따로’를 섞어 보면 어떨까. 나처럼 욕심이 많은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돌아오면 너무 아쉬우니깐. 그럴 때는 따로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물론 따로가 더 커지면 안 된다. 가족이 함께한다는 의미도 소중하니까. 그래서 결국 필요한 건, ‘함께’와 ‘따로 또 같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마음이다.



기념품·간식 갈등, 현명하게 조율하는 법

여행하다 보면 새로운 체험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쏟아진다. 근데 아이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줄 수는 없을 때가 많다. 부모 눈에는 괜히 쓸데없어 보이는 장난감이나 기념품을 계속 사달라고 할 때도 자주 생긴다. 사실 별생각 없이 기프트숍에 들어갔다가 나부터도 뭔가를 사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때가 더러 있다. 이 장소에서의 감동을 기념품에 고스란히 담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이미 집에는 예쁜 쓰레기가 많다는 걸 기억하며 애써 참아보지만, 아이에게는 그게 아직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한 번은 아이가 혼자 다 먹기 힘들 만큼 크고, 한 눈에도 너무 달아 보이는 14,000원이나 하는 와플을 사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다 먹을 수 있다는 확답을 받고 사주었지만, 역시나 달아서 반도 먹지 못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지만, 너무 단 와플을 억지로 끝까지 먹게 하는 건 벌처럼 느껴질 수 있어서 망설여졌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책임을 피하는 습관이 생길까 걱정됐고, 무엇보다 건강에도 좋지 않았기에 끝까지 다 먹으라고도 선뜻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매번 먹지도 못할 간식을 사주는 건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럽고, 무조건 허용하는 게 답은 아니니, 부모로서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찾은 방법은 규칙을 세워서 스스로 배우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미리 정해둔 용돈 안에서 아이가 뭘 살지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거다. 그러면 선택에 따른 책임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으니깐. 우리 가족은 숙식비 포함 하루 경비를 50만 원을 넘기지 않는 큰 틀을 정해 두고, 그 안에서 부수적인 비용을 조율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면 늘 들르게 되는 기프트숍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싸거나 들고 다니기 힘든 건 그냥 함께 감탄하며 보는 걸로 만족하고, 정해진 금액 안에서 살 수 있는 작은 기념품을 고르는 걸로 정했다. 이렇게 하니까 아이도 자연스럽게 기준을 배우게 됐다.

“이거 사면 오늘 다른 기념품이나 간식은 더 못 사는데 괜찮아?” 이 한마디만 던져도, 아이가 한 번 더 고민해 보곤 했다. 그 과정이 쌓이면서 다음번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어떤 날은 아쉬움이 커서 다음날 다시 찾아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스스로 선택을 되새겨 보는 경험이 됐다.

그런데 규칙을 지켜야 하는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부모인 나도 욕망 앞에서는 쉽게 흔들렸다. 특히 아이가 고른 물건이 내 마음에도 쏙 들 때 그랬다. 거실 한켠에 두면 멋질 것 같았다.

아이에게 선택과 책임을 가르치려던 순간은, 사실 나 스스로 내 욕망을 마주하고 다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어김없이 예쁜 쓰레기가 되어 먼지 쌓일 걸 알면서도, 그때는 그게 참 좋아 보인다. 그러니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는 게 얼마나 더 어려울까.


가족여행은 결국 아이만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부모인 나도 내 안의 욕망을 돌아보고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결국 아이가 안전한 환경에서 선택과 책임을 배울 수 있으려면, 부모인 나부터 욕망을 다스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때때로 솟구치는 내 안의 충동성을 느끼며,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아이를 “또 그런다”며 다그치기보다는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와 따로’를 오가며 내 바람을 느끼고 채워본 시간이 다른 사람의 하고 싶은 마음을 존중해 줄 수 있는 균형감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심리코칭 한 마디]

가족 간 욕구가 엇갈릴 때 기억해야 할 감정 수업

1. 부모의 욕망도 인정해야 한다.

아이의 욕구만 챙기다 보면 부모 마음속 욕망은 눌리고, 결국 지치거나 억울함으로 드러날 수 있어요. 부모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시간을 가질 때, 오히려 아이의 욕구도 더 자연스럽게 존중할 수 있습니다.

2. 함께와 따로, 균형이 필요하다.

무조건 함께만 하려 하면 지치고, 무조건 따로만 있으면 의미가 줄어요. ‘함께와 따로’를 오가며 균형을 맞출 때, 가족은 훨씬 더 돈독해집니다.

3. 작은 규칙이 갈등을 줄인다.

단순한 규칙이 아이의 선택을 돕고, 스스로 욕구를 가늠해 보는 기회가 됩니다. 실랑이 대신 균형을 배우는 순간이 될 수 있어요.



덧. 거실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기념품 중 일부



※ 이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의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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