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델리

홀리몰리 인도델리

by 초부정수

한국 IT 기업의 인도 현지 법인에서 법인장으로 일하며 보낸 시간이 대략 10년이고, 그 이전에는 종합상사에서 중동과 서남아 시장을 오가며 플랜트 수출을 담당한 것이 또 대략 10년이니 인도와 관계되어 무엇인가 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대략 20년 정도 되었다. 당시의 나는 늘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고, 일은 언제나 성과와 판단의 보고서로 정리되어야 했다.


그 시기의 기록은 다른 형식의 책으로 먼저 남게 되었다. <불계승 없는 인도에서 실패를 복기하다>에서는 무엇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는지를 정리해야 했고, <혁신의 평범성>이라는 책에서는 혁신의 목적이 행복이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혁신이라 불리는 것들이 현장에서는 얼마나 일상적인 얼굴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두 책 모두 ‘왜’와 ‘어떻게’를 묻는 자리에서 쓰인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 글은 그 질문들에서 한 발 물러난 곳에 있다. 회의실 밖에서 만난 사람들, 보고서에 담기지 않는 말투와 표정, 성과와 무관하게 흘러가던 하루하루가 모여 글이 되었다. 무언가를 바꾸려 할 때보다 그대로 두어야 할 순간이 더 많다는 사실, 이해하지 못한 채 머무는 시간이 때로는 가장 정확한 태도라는 점을 이해하기까지 - 사실 아직도 완전히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 시간이 꽤 걸린 것 같다.


돌이켜보면 "홀리몰리 인도델리"라는 글에 담긴 이야기들은 실패를 복기하던 시절과 혁신의 역학을 설명하던 시간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쌓여 온 기록이다. 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던 순간들, 역할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남았던 장면들이다. 나는 여전히 인도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모르는 채로 둘 수 있는 용기를 통해 타인의 삶 옆에 서는 방식을 배우려는 것이다.


이제 다시 인도인들과 엮여서 무엇을 도모할 만한 나이도 아니고, 어쩌면 인도 여행을 할 기회도 없을 것 같으나 젊은 시절을 함께 경험한 인도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들도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나 늘 가족과 같이 마음을 함께 해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오히려 그런 그들을 한국 사람들에게 잘 이해시키지 못한 미안함은 길게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