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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밤이 있다

by 장순혁

문득 그런 밤이 있다

창밖으로 하얗게
초승달이 뜬 밤

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창문에 하얗게 김이 서린다

당신의 이름을 검지 손가락으로 써본다
마지막 글자를 그린 후
손바닥으로 서린 김을 닦는다
그럼에도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

방안을 둘러보면
책상 위에 널브러진 당신을 그린 그림들과
당신에게 보내려던 편지 더미들

몇 장을 집어 북북 찢는다
온전한 당신을 담아내지 못해서

오롯이 당신을 향해 그려야만 하는,
오롯이 당신을 향해 적어야만 하는
그림과 편지일진대
당신의 마음을 담지 못해서

그때에도, 지금도
나는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기다리던 당신에게

나는 한 선 그림도 그려주지 못했다
나는 한 줄 문장도 적어주지 못했다

후회로 가득한 밤,
어둠의 눈가인 초승달에
서글프게 눈물로 젖은 구름들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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