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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Nov 18. 2022

택시 안의 말들

듣고 있지만 안들려요

 

 평소 택시를 타는 일이 드물다. 휴대폰엔 흔한 택시 호출앱도 없다. 내게 택시란, 익숙지 않은 지역을 방문하거나 여행 중 이동시간의 단축을 위해 혹은 가성비를 논하다 가심비만 더 휘청거릴 때 마지못해 택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운전을 시작한 후로는 택시와 더 멀어져 갔다. 그래서 간혹 카트 경주를 방불케 하는 거친 드라이버나 힐끗 보이는 미터기에 당당히 기록된 기본을 초과한 기본요금이 낯설기만 하다.

 특정 신호를 앞두고 유독 서행하는 것도 편치 않지만, 목숨을 담보로 걸 만큼의 과속운전은 더욱 견디기 힘들다. 운전을 한 뒤로 주행자의 마음이 훤히 보이는 것도 나의 불편지수를 높이는 데 한 몫했다.




 그중 가장 낯선 것은, 목적지로 향하는 뒷좌석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혹은 이를 깨기 위해 동승자의 비공개 댓글 같은 말을 나눌 때가 아닐까. 정적을 못 견디고 뭐라도 일단 던져볼까 고민하지만 침묵보다 난감한 건 일행의 느닷없는 토크다. 제3자가 없다면 거리낄 것 없는 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운전자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제한된 비좁은 공간에서 적정선의 스몰토크를, 설령 나는 의식한다 쳐도 상대가 그렇지 못하면 덩달아 난처해질 위험을 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뒷자리에서 어물쩡하게 할 수 있는 말들은 급기야 누에의 허물처럼 전락하고 만다. 마지못해 호응은 하는데 뱉고 나니 말은 아닌 것들.


 카페에서도 인접한 테이블을 신경 쓰며 토크에 주의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아랑곳하지 않는 부류도 있다. 나는 철저히 전자(인 것으로 세뇌하는)쪽이기에 후자와 택시라도 타게 되면 간담 깨나 서늘할 때가 있다. 일행과도 거리두기와 환기가 필요한 내향인은 물리적으로 근접한 낯선 이와의 적막을 가급적 피해가며 살았다.


 반면, 정적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버스의 경우는 택시와는 또 다르다. 무수한 승객여러분 중 n번째 탑승객은 한 배를 탄 누구와도 애초에 스몰토크 할 부담을 떠안지 않는다. 돈은 없는데 시간은 남아돌던 20대 시절은 버스가 단연 '홀로 서며 이동하기'를 부담없이 실현해 준, 접근성 좋은 이동수단이 되었다. 인생에서 아마 대중교통과 가장 막역한 시절 아니었을까.




 편리함을 택하면 감수해야 하는 것들, 하나를 취하면 결국 따라오는 것들이 있다.

공허한 세상을 향해 비공개 댓글 하나쯤은 남기고 싶은 절박한 마음과 경계를 미련없이 허물어 공개하려는 벅찬 마음이 수시로 충돌한다. 그러는 사이, 목소리를 내는 일의 주저함으로부터 나날이 의연해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때와 장소에 부합하는 공백의 말들을 가급적 거스르지 않기로 한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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