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릇 Jul 03. 2022

민지야 보고싶어. 미안해.

스러져간 내 동년배 여성들에게

겨울 냄새가 나는 가을의 끝자락이었어. 이제 자리를 잡은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중이었거든. 웅웅- 핸드폰이 울리더라. 수화기 너머 나의 또 다른 고등학교 친구는 한참을 말을 않고 침묵했어. 늦은 시간에 연락이 뜸하던 친구에게 온 한 통의 전화. 나는 알고 있었어. 직감적으로 느꼈어. 아, 무슨 일이 생긴거구나. 나쁜 일이 생긴거구나.


사실 이게 처음이 아니야. 힘겨웠던 나의 데이트폭력 경험을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을 때 알았거든. 이 웅웅거림. 나도 그랬어 소정아, 나도 죽고 싶었어, 죽으려고 했어, 그런 이야기들이 내 DM창을 가득 채울 때 느꼈던 그 웅웅거림말야. 술기운이 싹 달아났어.


잠시의 침묵 뒤에 힘겹게 떨어진 친구의 입에선 네 소식이 전해졌어. 민지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대, 단어와 단어 사이에도 이렇게나 긴 숨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그 때 알았어. 목소리에서 들썩거리는 어깨에 내려앉은 울음이 섞여있더라. 나는 이런 상실의 경험이 있으니까 내가 무너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서울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바로 집에 돌아와 상복으로 갈아입었지.


성인이 되고나서 일곱번째쯤 입는 상복이었어. 이제 스물넷인데 벌써 일곱번째 상복을 입었던거야. 우리는 왜 살지를 못할까. 왜 세상은 우리에게 유독 가혹할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차서 무슨 정신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장례식장까지 또 갔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또렷이 기억나는게 있어. 입김이 서늘하게 피어오르는 추운 날씨에 작게 켜진 장례식장 조명이 보이고, 그 뒤로 선명한 화질을 가진 식장 안내 화면이 보였어. '김민지'라고 적힌 네 이름 옆엔 에버랜드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쓴 귀여운 옷과 모자가 보이고 행복한 듯 웃는 얼굴이 있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만나지 못했었잖아. 네가 이과로, 내가 문과로 와서 고등학교 2-3학년을 보냈으니까 같은 분야도 아니긴 했지. 스물하나엔 재수하는 친구들 대학 가고나서 만나자고, 스물둘엔 다들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스물셋엔 졸업준비하느라 바쁘다고, 스물넷엔 취업준비를 한다고 보지 못했어. 보지 못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미안하고 아팠어. 조금 더 들여다볼걸, 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와선 빠져나갈 줄을 몰랐어.


네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우리 만나진 못해도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생각했어. 민지야 난 네가 무엇을 힘들어했는지 몰라. 성인이 된 네가 뭘 좋아했는지도 잘 몰라. 나는 그게 제일 미안해. 그런데 민지야, 네가 있던 장례식장에 널 포함해 두명의 상이 치러지고 있었거든. 근데 나머지 한명도 우리랑 동갑이더라. 97년생이었어. 그 친구는 많이 아팠대. 우린 왜 살지 못할까. 왜 이렇게나 많은 동갑내기들이 세상에 치여 스러져가고 있는걸까. 그나마 살아남은 동갑내기들은 생채기가 잔뜩 난 몸에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죽음을 '20대 여성 자살률'이라는 이름으로 보도하는 세상이 현실이라는 게 화가 났어.


처음 몇 주간 내 감정은 널 잃었다는 상실감과 분노 뿐이었어. 발인장소까지 가는동안 함께 그 자리를 지킨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들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울었어. 참 긴 시간이었다. 발인은 참 긴 시간이었어. 너무 울다가 지쳐서 내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어. 울면 네가 편하게 가지 못할까봐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아낸 너의 친구도 있었어. 너와 며칠전까지 카톡으로 취업에 대한 얘기를 했다던 그 친구는 네 부고가 믿기지 않았대. 얼마전까지 인국공 지원할거라고 얘기했다며 한참이 지나고나서야 우리에게 얘기해줬거든. 네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찢어지게 가슴 아파했어.


납골당 상자에 갇힌 널 보는게 우리가 스물을 넘어 처음 마주한 만남이라니. 정말 웃기는 세상이지. 그런데 민지야, 너 혼자만 예린이의 죽음을 알고 있었단 걸 나중에야 알았어. 우리 8명이 함께 놀곤 했는데 2명이 벌써 세상을 떠나버렸더라. 나는 우리 여덟이 8개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남은 세계가 얼마 없다는 사실에 숨이 턱 막혀 한 숨도 쉽게 뱉을 수가 없었어. 예린이의 죽음까지 듣고 나니 난 겁이 났던 것 같아. 내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또 스러지고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겁이 났어.


그 겁은 내 가슴을 갉아먹어서 구멍을 냈어. 구멍이 점점 커지더니 내 모든 감정을 집어삼켰어. 그 땐 분노도, 기쁨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던거야. 감각이 없고 감정이 없다는 건 정말 무섭더라. 그 때 죽으려고 한강에 갔어. 한강까지 걸어가는 길이 쌀쌀했는데 어떤 생각으로 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기억하지 않고 싶은 나의 방어기제일수도 있지. 다만 길에서 본 강아지가 생각나. 강아지를 보면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귀여워서 잠시 웃음이 내뱉은 내 모습을 보고 엉엉 울었어.


나는 아직 감정을 느끼는구나. 아직 살아있구나. 귀여운 것이 있으니 혹시 세상은 살만한 공간일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어. 민지야. 나는 아직 더 살아보려고. 너를 보낸지 이제 1년이 넘어. 스물넷에 멈춰 더 이상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 네 모습을 나는 계속 기억할게. 

작가의 이전글 이젠 정말 다 괜찮아졌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