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미스코리아 출신의 하버드 학생, 금나나가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적 있다. 동네서점, 백화점 문고사 어디든지 금나나의 공부법 책이 가판대 위를 채우고 있었다. 빨간펜을 손에 쥐고 또렷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얼굴 옆에는 '하버드, MIT 동시 합격한 미스코리아 금나나의 공부일기'라는 제목이 쓰여있었다. 시선을 확 잡아끌만한 문구였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예쁘면서 공부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책 모서리가 까맣게 변하도록 그 책을 여러 차례 읽었다. 가장 자주 들락거렸던 챕터는 '글쓰기' 부분이었다. 전 세계에서 공부 좀 한다고 모여든 하버드 학생들도 글쓰기만큼은 어려워한다고 쓰여있었다. 지독한 공부벌레 금나나조차도 글쓰기를 생각하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는 소회도 적혀있었다. 도대체 글쓰기가 뭐길래 저렇게 어렵다고 하는 것인지. 하버드생도 하기 어렵다고 하는 걸 잘 해내고 싶었다. 허영으로 똘똘 뭉쳐서, 남들을 이겨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자만심에 가득 차서 시작했으니 글이 솔직할 리가 없었다. 잘 몰라도 어려워 보이는 단어를 문장 속에 때려 박았다. 비문이 넘실대도, 문장을 끊을 줄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고 쓰는 게 아니라 분량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글 안에 내용이 없었다. 청소년기의 글쓰기 습관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나쁜 버릇이 치명타가 되어 돌아온 것은 석사 입학 뒤였다. 학문적 글쓰기는 논증이 기본 골자다. 사고를 탄탄하게 이어가는 힘도 약한데, Copy와 Paste로 점철된 글쓰기로 분량만 채워왔으니 '사유를 담은 긴 글'이 써질 리가 없었다. 학기 중 쓰는 발제문도, 연구프로젝트로 제출한 보고서도 모두 이해불가 판정을 받았다. 큰일이었다. 졸업 필수 요건이 학위논문인데,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글이 심사를 통과할 리 만무했다. 하필이면 학석사 통합과정이라 석사 졸업을 못하면 학사 졸업장까지 날아갈 수도 있었다.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그리고 졸업장을 지키기 위해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남들한테 자랑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떠벌리고 싶었다. 내가 이만큼 대단한 위인이라고 세상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면전에 대고 말하려면 낯부끄럽고, 일일이 자랑하려면 시간적, 물리적 한계가 있으니 글로 써서 내 자랑을 '효과적으로' 하고 싶었다. 유명해지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 나를 글쓰기로 이끌었다. (유명해지려면 글보다는 다른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잘 썼다는 칭찬이 듣고 싶어 시작했으나, 잘 읽히는 글을 쓰는 건 어려웠다. 술술 읽혀야 사람들이 나의 업적을 잘 알아볼 텐데, 싶어서 글쓰기 훈련을 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조금씩 일기를 썼다. 그런데 이게 웬걸! 글을 쓰다 보니 숨기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대학원을 다닐 때 어려운 책을 다루는 세미나에 자주 갔다. 모임에 갔던 어느 날, 허세에 가득 차서 모르는 용어가 나와도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곤, 귀가한 뒤 복습은커녕 웹툰만 보다가 늦게 잔 날이 있었다. 새벽 4시가 넘자 아무것도 한 게 없단 죄책감에 발가락 끝부터 허리까지 배배 꼬인 기분이 들었다. 뭐라도 쓰면 낫겠지 싶어 하루를 회고하는 일기를 썼다. 세미나 책을 읽고 준비하지도 않은 채 가서 입만 털고 와서는, 이해할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세미나 구성원들에게는 잘 아는 것처럼 뻐드럭대곤,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다니. 쪽팔렸다. 모르는 것에 입 다물고 있었거나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했다면 이렇게까지 자괴감이 크진 않았을 테다. 다 아는 것처럼 말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될 것을 상상하니 너무 창피했다. 일기 속에서는 어떻게든 부끄러운 나를 감춰보려고 획을 덧대봤다. 그러면 그럴수록 궁상떨거나 자의식 과잉 상태 거나 허세를 부리는 나의 모습은 더 돋보일 뿐이었다. 글은 잘 닦여서 반짝거리는 거울 같았다. 어우,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보여줄 필요는 없는데. 뾰루지, 기미, 잡티처럼 숨기고 싶은 내 마음의 먼지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봐야 하는 문제 이긴 했다. 지덕체를 갖춘 인간이 나의 추구미인데, '덕'을 갖추려면 먼지도 좀 봐야 하는 듯싶다. 자만하면 '덕'과 사이가 좋아질 수가 없다. 창피한 모습을 글 쓰다가 나에게만 들켜서 다행이다. 다른 사람은 아직 내 일기장을 펼쳐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다. (물론 말하다가 티가 났을 수 있다.) 쪽팔림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면, 그건 더 심각했을 것이다. 유명인들 중 폭력 문제가 불거져 은퇴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유명해져도 인성 문제로 나락 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일기를 쓰면서 본 나는.. 안타깝게도 나락 가기 좋은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날카롭게 톡 쏘는 말투, 상대방을 깔보는 마음가짐, 자신에게 한껏 취해있는 자만심까지. 까딱 잘못해서 찰랑거리는 마음이 넘치면 남들에게 상처주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평소에 성질을 다듬어둬야 한다. 이름 세 글자를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파묘당해서 은퇴당하고 싶지는 않다. 성깔을 정비하기 위해 글 쓰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
다시 금나나의 공부일기 책으로 돌아가보자. 좋은 글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끝머리에 중심문장을 다시 써야 한다는 것. 배웠다면 활용을 해보자. 이 글의 중심 주제는 글을 쓰는 이유였다. 물음에 대한 답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는 유명인이 될 운명이므로, 나락가지 않고 롱런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는 장치로서 글쓰기를 사용한다. 아.. 너무 속물적인가. 글은 작고 여린 것을 품어낼 때 더 빛이 나던데, 이 글은 꿈틀거리는 욕망의 항아리를 담고 있다. 이글거리는 욕심을 글이 간신히 막아서고 있는 형국이다. 욕심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써야 한다. 나락가지 않으려면..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