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구석에도 산타가 와

시골 산타도 엄청 큰 선물을 가져다주거든요

by 그릇

양육자가 넷이었다.


엄마는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도, 자식도, 그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디 혼자 크던가.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는 시댁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평일에는 천안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면 아이를 보러 시댁인 안동까지 먼 길을 오갔다. 고속도로도 제대로 뚫려있지 않아 왕복 6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지만, 단 10분밖에 볼 수 없더라도 주말마다 안동을 향해 운전대를 몰았다. 안동에 있는 작은 생명이 보고 싶어 그랬단다. 천안과 안동, 200km 사이를 오가는 사랑이었다.


안동의 노부부는 별안간 시끄럽게 우는 아이를 맡게 되었다. 시골에서 밭농사 지어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용실이며, 마트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머리가 길면 냅다 가위를 가져다가 뚝뚝 잘라버렸고, 날 더운 날은 구멍가게에서 살 수 있는 하드(바 아이스크림)가 줄 수 있는 간식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들에게 가장 귀한 간식들을 받곤 했다. 하드 대신 흙에서 막 캐낸 신선한 고구마의 달큰함을 건네받았다. 가시가 오소소 돋친 밤을 주워다가 쪄낸 포슬함을 전달받았다. 새빨갛게 익은 도마도(토마토) 슬러시와 김이 오르는 찰옥수수의 찰떡궁합을 선물 받았다. 노부부의 사랑은 온도로, 맛으로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해 주던 조부모와 부모가 충돌하던 날도 있었다. 바로 크리스마스.


노부부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도 방학마다 안동에서 방학을 보내곤 했다. 겨울방학이면 크리스마스를 끼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안동에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산타가 존재한다는 나의 믿음은 아주 굳건했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하나 생겼다. 산타가 길을 잃으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게다. 주소지 등록은 천안으로 되어있는데, 크리스마스이브는 안동에서 보내고 있으니 혹시 산타가 주소를 틀려 천안으로 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재빨리 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산타할아버지가 나 안동에 있는 거 알아? 천안으로 가면 어떡해?"

"산타할아버지는 다 알지~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걱정이 안 될 리가. 산타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안동에 있고, 헷갈리지 말라고. 두근두근, 걱정이 가득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새벽녘이 밝아올 무렵 잠에서 깨자 엄청나게 큰 선물이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정말 엄청나게 컸는데, 양팔을 다 벌려도 안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이즈의 비즈팔찌 만들기 키트였다. 큰 선물의 양에 놀라서 신나 겅중겅중 거실을 뛰어다녔다. 한참 재미있게 선물을 뜯어보고 팔찌를 만들다 보니 오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밥 먹을 때가 되어서야 걱정이 다시 올라왔다. 혹시 밤새 쓴 편지 때문에 산타가 천안에 간 건 아닐까? 하는 걱정.


전화기 앞으로 달려가 띠리리링 전화를 걸었다. 달칵.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혹시 천안에도 산타할아버지가 갔어? 나 선물 엄청 큰 거 받았어."

"그래? 천안에도 다녀가셨는데~ 소정이는 선물을 두 번 받겠네?"



얏호! 산타할아버지가 천안에도 선물을 두고 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도 개이득^^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별안간 양쪽에서 선물을 받았으니 의심할 법도 하지만, 의심의 씨앗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안동에 더 자주 와야겠단 생각만 했다. 천안에 있으면 선물을 한 번 받지만, 크리스마스이브를 안동에서 보내면 선물을 두 번이나 받을 수 있으니! 그 뒤로도 몇 번 더 안동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이브가 이어졌다. 열두 살이 되기 전까지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산타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조부모와 부모의 합작은 그때까지 이어졌다.


평소에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메모해 뒀다가 선물해 준 부모와 달리, 조부모는 선물처럼 보이는 것을 눈에 잡히는 대로 선물했다. 나중에 커서 듣자 하니, 누가 나에게 선물을 건네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꽤 여러 차례 의견이 오갔다고 한다. 어린이집을 다니며 부모에게 가지고 싶다고 한 물건들을, 조부모는 살 수가 없었다. 마트가 있는 시내까지 가려면 1시간을 넘게 나가야 하고, 버스는 하루에 6대뿐이었다. 그걸 들키지 않게 숨기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장난감을 구할 수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양육자들은 서로 다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 줬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노부부의 랜덤한(?) 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에 더 산타를 믿었다. 산타한테 빌면 뭐 하나. 산타가 그냥 아무거나 내려주고 가는데. 그리고 설명서도 다 영어로 쓰여있어서 정말 북극에서 산타가 날아온 줄 알았다. (미국이 북극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노부부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으니 일단 사이즈가 큰 장난감을 골랐던 것 같다. 설명서를 읽지 못하니 크리스마스마다 장난감을 어떻게 쓰는 건지 한참이나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잘 몰라도, 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건네주고 싶었던 마음을 생각하면 여전히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구멍가게 주인에게 무슨 장난감이 잘 나가냐고 물어보고, 그것을 사다가 창고에 요리조리 숨겨뒀을 노부부를 생각하면 그리움이 앞선다.


크리스마스는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날이다. 천안도, 안동도 잊지 않고 찾아오던 산타의 선물 바구니가 참 든든했다. 건네받은 것은 장난감뿐만이 아니었다. 안동이 안되면 천안에, 천안이 안되면 안동에 나의 편이 있다는 안정감을 선물 받았었다. 어딘가 잘못되어도 늘 되돌아갈 곳이 있다는 든든함이 오랜 기간 나를 지탱했다. 뒷받침해주는 사람들이 든든하게 많다는 건 삶의 엄청난 자산이었다.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돌진하는 성미도 아마 그 사랑 덕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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