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색 크롭탑을 입고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공항에 등장한 제니의 사진이 포탈 1면을 가득 채웠던 적 있다. 상큼한 민트색이 제니의 체형에 딱 맞아 시선을 끈 것도 있겠지만, 이 크롭탑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사실도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였다. 누리꾼들은 "어머님도 패션 센스가 대단하다"라거나 "90년대에 이런 크롭탑을 구매했다니 대단하다" 등 다양한 반응을 남겼다. '엄마의 패션'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몸매를 드러내는 크롭탑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눈을 돌려 나를 한 번 봤다. 나는 뭘 물려받았으려나 살펴봤다. 펑퍼짐하게 끝이 퍼진 흰 반팔, 자주 입어서 무릎과 엉덩이 부근만 부드러워져서 앞으로 툭 튀어나온 청바지, 엄지발가락 부근 발바닥에 구멍이 뚫린 양말. 그래, 내가 물려받은 것은 구멍이다.
엄마는 저렴한 옷을 오래 입었다. 티 한 장에 오천 원부터 비싸게는 만원을 주고 샀고, 이런 옷은 10년 넘게 옷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비싼 옷도 10년 넘게 입으면 형태 유지가 어려운데, 싸구려 옷들의 품질이 오래도록 유지될 리가 없었다. 여기저기 구멍 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구멍이 나서 기워입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기울 정도의 시간은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냥 입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건 지금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멍 뚫린 양말을 신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산 양말인데, 10개입 1만 원짜리를 세일해서 5천 원대에 샀던 것 같다. 싸구려 양말은 목이 늘어나고, 바닥에 난 구멍이 점점 커졌다. 뻥 뚫린 곳으로 발가락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때까지도 계속 신었다. 오늘도 신고 있다.
아빠는 엄마와 나를 번갈아보며 "왜 이렇게까지 궁상떨며 사냐"는 말을 자주 했다. 우리도 구멍 난 양말이 민망스럽긴 해서 괜히 방어를 해보기도 했다. 너무 빨리 옷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면 지구 생태계에 안 좋다부터 시작해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관용속담도 끌어와서 핑계를 대봤다. 아무리 멋져 보이는 핑계도 궁상을 숨기진 못했다. 궁상은 궁상이었다. 옷 사는 돈은 너무너무너무 아까운 걸. 구멍 난 부분은 전체 양말의 5%도 되지 않는데, 멀쩡히 기능할 수 있는 양말을 도대체 왜 버린단 말인가! (물론 목이 늘어나서 자꾸만 발 뒤꿈치가 벌거벗은 적이 여러 번 있긴 했다..) 유독 옷은 버리기 망설여진다. 옷 하나 버린다고 내일 입을 옷이 없는 것도 아닌데, 헌옷수거함 앞에서 몇 번이나 고민을 한다.
옷은 꼭 신포도 같다. 멋진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와! 감탄을 내뱉지만, 저런 옷을 내가 입어야 한다고 하면 머릿속에 '그 옷은 얼마일까?'가 먼저 떠오른다. 그 옷이면 국밥이... 같은 비교가 된다. '내가 입으면 별로일 거야~'라고 애써 스스로 위로하고, 눈을 돌려버린다. 사실 멋진 옷을 원하면서. 멋진 옷을 입은 나를 원하면서. 하지만 애써 쇼핑몰을 켜서 주문을 하려고 봐도, 싸구려 옷만 사던 버릇 때문에 최저가 버튼만 자꾸 누르게 된다. 스크롤을 내려가며 살펴봐도, 옷태가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으니 선택은 못 하고 계속 페이지에서만 맴돈다. 이내 피곤해져 버려 선택을 포기한다. 다음날 그냥 구멍 난 양말을 버리지 않고 또 신는다. 궁상의 악순환이다.
엄마로부터 궁상을 물려받은 만큼, 우리의 궁상 게이지는 상당히 비슷하다. 둘이서 쇼핑을 가면 '이렇게나 싸게 샀다!' 자랑 타임을 가진다. 우리는 누가 누가 더 궁상을 잘 떠는지 경쟁한다. 내가 구멍 난 양말을 들어 올려 보여주면 '나도!' 하며 엄마도 다리를 쭉 뻗어 양말구멍을 보여줬다. 가성비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우리는 마트에 들어가면 '원래 가격보다 싼 것'을 누가 더 잘 고르는지 시합도 했다. 1+1이 붙어있는, 100g 당 가격이 가장 저렴한 우유, 반팔이 돌돌 말려 들어가 있는 세일팩 같은 것들은 우리의 흥분도를 맥스로 끌어올렸다. 누가 더 잘 골랐나, 누가 더 궁상을 잘 떠나 경쟁하면서 카트 안의 상품들을 두고 자랑했다. 서로 너무 잘 골라왔다고 자화자찬하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제니처럼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민트색 샤넬 크롭티는 없지만, 나는 킥킥 소리가 나는 궁상을 물려받았다. 같이 궁상떠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남들이 뭐라고 할 때는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질 때가 많지만, 집에서만큼은 서로의 구멍 난 양말을 가리키며 자꾸만 키득거린다. 어쩌면 엄마는 나에게 궁상이 아니라 웃음을 물려준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