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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단 정선옥 Apr 05. 2024

유기견 돌보기 1

시루이야기


시루는 오늘도 자기가 마음에 드는 길로 가겠다고 버틴다.


요즘 산책 중에 종종 있는 일이다.


그렇게 시루가 버티면 웬만하면 그냥 시루가 가자는 대로 간다.


(가끔 길이 아닌 길로 가거나 급한 일이 있으면 번쩍 앉아 옮겨놓지만...)


녀석은 이제 집으로 오는 길도 잘 파악하고 있다.


하긴 시루가 온 지 만 2년의 세월이 흘렀고 함께 산책을 한지도 꽤 오래됐다.


2년 전 처음 집에 데리고 왔을 때가 기억이 난다.


캔넬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나오지 않다가 거실 한쪽에 마련해 놓은 방석으로 나와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늘이때와는 사뭇 다르다.


하늘이는 처음 왔을 때가 3살로 추정하는 나이였고 집에 들어서자 좋아하며 여기저기 둘러보았었다.


그러나 시루는 7살로 추정되는 나이였다. 3살과 7살의 차이는 엄청난 것 같다.


시루는 철이 들어있었다. 누군가를 계속 찾는 것 같고 사람을 경계하고 간식도 거부했다.


적응하려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다행히 유기견 센터에 직접 데리러 간 딸아이에게는 경계심을 풀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흘러 캔넬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간식도 받아먹고 가끔 손도 주었다.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산책을 나갈 때마다 자기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건 아닌지 불안해했고 길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곤 했다.


마치 전 주인을 찾는 듯이!


그럴 때마다 녀석이 안쓰러웠지만 해줄 게 없었다.



하늘이가 14년 동안 우리 곁에 있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는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이별이 쉽지 않았고 또 다른 이별을 치르기 싫었다.


그러나 2년도 못돼서 난 유기견센터의 강아지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중에 유난히 하늘이를 닮은 녀석이 눈에 띄었고 급기야 가족들과 함께 센터를 방문했다.


국화라는 이름의 푸들과 요키의 믹스견인 녀석은 생각보다 덩치도 크고 나이도 많고 완전히 아웃사이더였다.


다른 강아지와 어울리지 못했고 산책도 좋아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간 가족들은 녀석이 온순해서 마음에 든다고 했고 특히 딸아이를 잘 따랐다.


한번 마음에 품고 데려오기로 했던 강아지를 나이가 많고 덩치도 크고 아웃사이더라고 해서 안 데리고 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국화라고 불리던 믹스견은 그렇게 우리 집에 오게 됐다.


믹스견이 이어서 털 색깔이 오묘했고 떡시루 색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시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2년이 지난 시루의 털색은 좀 더 밝아졌다. 스트레스가 덜하면 털색이 밝아지고 윤기가 흐른다고 한다.


유기견을 두 마리째 키워보았지만 사랑을 받은 유기견이 예뻐지는 건 시간문제다.



살림이란 살려낸다는 뜻이란다.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아난 시루는 오늘도 나와 함께 산책을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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