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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단 정선옥 Jul 14. 2024

A.M. 7:10

시루!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갈까?

시루는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이 곧바로 방향을 잡는다.

오늘은 자주 가던 길 건너 2단지 방향이 아니라 도서관 쪽으로 향한다.

도서관 쪽으로 가는 길에는 해바라기를 닮은 루드베키아꽃이 한창이다.

볼 때마다 강렬한 노란색에 발길을 멈춘다.

여름이 시작되는 7월에 잘 어울리며 노란색 포인트로 아파트는 활기 넘쳐 보인다.

골목을 돌아 산책로로 들어가는 순간 로봇 아저씨가 저 앞에서 내쪽으로 온다.

마치 양손을 늘어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일정한 폭으로 산책하는 모습이 절도 있는 로봇 같아 로봇아저씨로 불리고 있다. (물론 나 혼자만의 별칭이다) 매일 나 홀로 산책이고 이틀에 한 번씩은 마주치지만 인사는 하지 않는 사이이다. 묵묵하고 매번 같은 모습이라 살짝 긴장이 된다. 그런데 오늘은 누군가와 인사하는 소리에 살짝 돌아보니 절도 있는 로봇의 모습으로 인사한다. 그 모습을 훔쳐보자니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 지었다.    

  

시루는 연신 냄새를 맡느냐고 분주하다.

강아지의 산책 이유는 걷기보다는 냄새를 맡기 위해서란다. 그만큼 냄새 맡기는 강아지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행동이다. 유기견 시루가 처음에 집에 왔을 때는 플라스틱이나 시멘트 기둥 냄새만을 맡아서 도저히 알 수 없는 녀석의 과거가 궁금했다. 그러나 요즘은 나무나 풀냄새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룰루랄라 하던 시루가 갑자기 얼음땡!이 됐다. 저 멀리 두 마리의 푸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녀석들은 푸들 형제로  먼저 달려와서 시루 주변을 맴돌지만 시루는 질겁을 했다. 멀리서 그 녀석들이 오는 느낌이 들면 방향을 휙 바꿀정도이다. 푸들 남매의 주인은 할머님이셨는데 시루가 줄행랑을 치면 섭섭해하셨고 나는 매번 미안해했다. “아무래도 두 마리여서 인 거 같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치는 시루를 따라간다.  

     

우리는 도서관옆 작은 공원으로 들어섰다.

도망치던 시루는 푸들 남매가 안보이자 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도망친 곳은 다른 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줄타기 연습을 하는 곳이다.

며칠 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정도로 보이는 꼬마 녀석이 책가방을 옆에 둔 채 줄타기 삼매경에 빠져있다.

어찌나 열심인지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연습용 줄타기라서 땅에서 높이가 높지는 않지만 그 녀석은 연습 내내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연신 몸을 움직였지만 아슬. 아슬 잘 버텼다. 그런데 저 녀석! 누가 시켜서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걸까? 순간 금해졌다. 아이들이 마지못해 공부하는 모습만 보던 나는 완전 초집중해서 혼신의 힘으로 연습하는 걸 지켜보니 왠지 감동스럽다. 연습에 방해를 줄 것 같아 살그머니 자리를 옯겼다. 저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곧 인간문화재가 될 것 같다. 녀석의 도전에 응원을 보내면서 공원 반대쪽으로 걷다 보니 맨발 걷기 코스가 나온다.

맨발 걷기를 마친 아주머니가 맨발로 나무 밑에 앉아 책 읽기를 하고 계신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가니 독서 아주머니와 매번 만나게 된다. 이제는 얼굴이 마주치면 서로 눈인사를 하는 사이가 됐다.

다음에 만나면 무슨 책을 읽고 계신지 슬쩍 봐야겠다.  

   

작은 공원을 나와서 다시 아파트로 들어왔다. 들어오는 입구에는 여러 운동기구들이 놓여있다.

역시 부지런하신 분들이 열심히 운동 중이시다.

매번 보는 모습인데 그중에도 유독 열심히 하시는 할아버님이 인상적이었는데 근육이 만만치 않으시다. 비싼 헬스장이 아닌 아파트 내 운동기구로도 근육유지가 가능함을 깨닫는다. 중요한 건 무엇보다 성실함인 것 같다.  

                  

이제 슬슬 다시 집 쪽으로 방향을 잡는데 저어기 노부부가 산책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등이 살짝 굽은 부인에 손을 꼭 잡고 오늘도 역시 열심히 대화중이다. 항상 할아버님이 이야기를 하고 할머님은 열심히 듣고 있다. 분위기상 소소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느껴진다. 부부가 산책하는 모습은 자주 보지만 저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다.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암튼 두 분 건강하시길 바란다.    

 

오늘은 시루의 친구인 형식이를 만나지 못했다. 형식이는 두 살짜리 대형견이다.

아침마다 젊은 부부가 산책을 시키고 있고 시루의 유일한 친구이다. 6킬로 소형견인 시루는 특이하게도 대형견을 좋아한다. 두 마리 푸들 형제는 무서워하면서도 덩치가 두 배가 훨씬 넘는 형식이에게는 달려간다.

덕분에 젊은 부부들과는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고 그들은 아침마다 산책을 시키고 출근을 한다고 한다. 지금은 아침 8시이고 남편과 아이들의 출근사이 50분 산책은 끝이 났다. 산책 후에 아이들이 출근하면 나의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

산책의 에너지가 나의 오늘에 스며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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