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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승 Sep 18. 2020

정부가 내 손에 쥐어 준 창업자금

내돈 없이도 창업이 가능하다.

#2013년 눈 내린 겨울 어느 날


창업을 위해 무엇부터 시작할지 공동 창업자와 얼굴을 마주하였다.


필자: 우리 툭 까놓고 이야기해 보자. 자네는 초기 자금으로 얼마 정도나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아?

공동 창업자: 제 사정 아시잖아요. 지금으로선 아무리 끌어와도 2,000만 원 정도가 최대치일 것 같아요. 여러 번 창업하고 실패를 해서 집의 돈은 아마 불가하고 은행 긴급 대출을 해서(당시 정확히 답을 받지를 못했다)….

필자: 나도 가족들 걱정시키면서 무리하게 돈 쏟아부어서 시작하고 싶지 않아. 무슨 대안이 없을까?


그러한 솔직한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길을 찾게 되었다.


나&공동 창업자: 그래, 우리 일단 정부 과제를 먼저 따놓고 사업 진행을 하자. 과제 선정되면 법인 설립하고, 그러고 나서 금융권의 자금을 차입하든지 하자. 정부 과제에 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잖아.


#합의 완료. 결국 초기자금 확보와 리스크를 hedge하는 대안을 찾게 되었다.

 그랬다. 당시 공동 창업자는 연이은 사업 실패로 사업자금을 댈수 있는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필자는 그동안의 직장생활을 통해 저축해 놓은 얼마간의 여유자금과 퇴직금, 또 프리랜서로 각종 특강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수입이 있긴 했지만, 내 퇴직금이나 그동안 모은 은퇴자금을 쏟아부어서 창업을 시작한다는 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솔직히 가족과 주변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업을 시작하는 게 큰 부담이 됐다. 무엇보다 법인 설립이 급한 게 아니라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한 후 시작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 컸다. 다행히 당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창조경제 바람을 타고, 다양한 창업 지원제도( 문재인정부에는 더더욱 창업이 강조 되고 지원책이 넘쳐난다)가 쏟아지고 있었다. 주어진 기회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도 분명 실력이리라. 그때부터 우리는 온갖 정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정부지원 과제를 살펴보니 중소기업청부터 과기부, 산업자원부,문체부 등 각 부처별 지원사업의 종류도 수없이 많았고, 사업 업력별 지원 가능 사업의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기왕이면 여기도 넣어보고 저기도 넣어 보면 하나라도 걸리지 않을까?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필자는 이 당시에 다양한 자금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에 정부부처의 온갖 공개 설명회에 발품을 팔고 다녔다. 지금 되돌아보면 쓸데없는 짓을 한 셈이다.(많이 보고 많이 다닌다고 승률이 높은 건 절대 아님을 이후 깨닿게 됨) 모든 일이 그렇다. 미리 내가 필요로 하는 자금과 나의 현재 위치 등을 사전에 명확히 한 후 정보를 선별하고 치밀하고 계획성이 있게 접근했어야 했었다. 한 부처의 정부지원 행사만 검토하는 것도 엄청난 시간 허비다.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하나 구입하더라도 사전 구매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가게에 들어서면 신속하고 스마트하게 쇼핑을 할 수 있고, 쓸데없는 상품을 구입하게 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하지 않았어도 될 수고와 발품을 팔며, 길을 돌고 돌아 정보를 모은 끝에 우리가 선택한 과제 중의 하나는 바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의 ‘BI 연계형 사업’ 과제(사업의 아이디어만 평가되면 선정이 가능한 과제- 지금 은 R&BD 로 비지니스 즉 사업화가 중요한 평가 항목이 됨)였다.


우리가 제안한 ‘시선 타이핑’기술은 기술 자체의 혁신성을 토대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어필이 가능하리라 생각했고, 이를 서면평가 서류에 꼼꼼히 녹여 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서면평가 이후에 이어지는 대면평가를 위해 예상 질문 등을 작성해서 철저한 준비도 함께 병행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다행히… 결과는 합격이었다! 정말 하늘을 날듯이 기뻤다. 사실 우리 두 창업자는 ‘준비하고 노력하면 이게 되는구나’ 하고 속으로 놀라기도 했었다. 법인도 설립하기 전에 무려 3억 3,000만 원(민간 부담금 10%인 3,000만 원 포함)이라는 지원금으로 제대로 판을 벌일 수 있는 불씨가 지펴진 것이었으니,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금 확보에 대한 고민을 털어 버리는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야말로 가장 큰 수확이었던 것 같다. 주변인들에게도 우리 사업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게 된 건 물론이다.


 정부 과제에 선정되고 나서 사업 추진을 위해 법인 설립이 필요했고, 지원금 총액의 10%(3,000만 원)를 민간(기업)자본을 현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규정상, 나와 공동 창업자 각각 2,500만 원씩을 출자해서, 2014년 12월에 5,000만 원으로 공식적인 창업을 하게 된다. 법인 설립을 위한 사업장은 대전 한밭대의 산학협력단 창업선도 공용공간 2평 정도의 자리를 무상으로 얻어서, 의미 있는 여정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많은 유니콘기업들이 처음 시작을 허름한 창고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것처럼 우리의 시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부지원금이 가상계좌로 들어오자 우리는 가장 먼저 핵심 개발자를 뽑았고, 우리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주목할 점은, 정부 과제로 첫 출발을 했던 덕분에 얼마 되지 않아 운 좋게도 엔젤투자까지 유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엔젤투자 당시의 우리를 돌아보면, 참 어설펐다. 투자자들 앞에서 IR을 하고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 개발 계획 등을 밝히는 과정에서 진땀을 흘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당시 우리 발표자료는 객관성이 결여돼 있었고, 사업화에 대한 확실성도 미흡해서 투자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 한계가 있었다. 초기 기술 개발 목표가 눈으로 타이핑을 치는 기술이었는데, 그 기술이 개발되고 어디에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는 궁색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뭐 초기 스타트업이 얼마나 nice하겠느냐마는 투자자들 눈에는 한심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투자자들은 나와 공동 창업자의 의지와 능력을 믿고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었던 것 같다. 사업 아이템보다도 두 명의 창업자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였다는 후문을 몇 년 뒤에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정부 과제에 선정된 아이템이라는 ‘비교우위 요소’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엔젤투자를 받으려는 초기 스타트업들의 아이디어나 실력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물론 떡잎부터 남다른 몇몇 예외 기업도 있겠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가능성에 투자를 하는 엔젤투자자 입장에서는 무엇 하나라도 다른 기업과 달라 보이는 차별적 포인트에 시선을 줄 수밖에 없으리라. 그 때문에 정부 과제 선정 아이템이라는 점은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큰 메리트일 수밖에 없다. 정부 과제로 선정 받은 아이템은, 엔젤투자자에게 상당한 신뢰를 준다. 국가가 인정한 기술이라는 든든한 보증수표와 시드머니가 있으니, 일단 투자자들에게 점수를 따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훈장 하나를 목에 걸고 있으면 투자자들을 끌어내고 설득을 하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엔젤투자를 유치할 때 일일이 투자자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회사를 알리고 기술의 우수성 등을 어필하는 IR(기업투자 유치자료)에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노력과 시간을 덜 들이고도 비교적 남들보다 수월하게 5,000만 원이라는 엔젤투자금을 창업한 지 5개월 만에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이

다.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사업의 성장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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