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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May 30. 2022

공항까지 태워다 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망설이는 사이....


"이야, 그럼 공항까지 저희 태워다 주실 수 있을까요?" 2년 전 2월, 막 하와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였다. 남편은 체크인을 하러 가고 나는 아이들과 로비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마주친 반가운 한국인 신혼부부. 이제 막 8살, 4살이 된 아이들이 캐리어를 가지고 노는게 귀여웠는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한국인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신혼의 풋풋함이 너무 예뻐서 한두마디 건네다보니 대화가 시작됐다. 주변에 갈만한 곳 얘기를 하다가 이 부부는 차를 렌트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됐다. 우연히 체크아웃하는 날짜 역시 같았다. 공항까지 태워줄 수 있냐는 말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기에 자연스러운 질문이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인 걸. 행선지가 같으니 같이 가면 좋지.' 언뜻 보면 단순한 일.


문제는 그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는 거다. 하와이 여행에 당연히 짐이 많을거라 예상했고 험한 길을 운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큰 차를 렌트했다. 우리 가족으로서는 처음 타보는 큰 차였기에 처음 봤을 때, 차알못인 나는 정말정말 넓다고 생각했다. 트렁크에 짐 넣을 공간 역시 당연히 넉넉할 줄 알았다. 으음, 그런데 짐을 싣다보니 그다지 여유롭지 않다. 게다가 미국에선 아이들의 카시트 설치는 법으로 강제된다. 뒷좌석 두 개는 각각 카시트 하나씩으로 꽉 찼다. 7인승으로 보이는 차는 사실 완벽한 4인승이었다. 카시트가 등장하는 순간, 대충 끼어앉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트렁크에는 우리 짐만으로도 만원이고 4개의 좌석은 완벽히 꽉 찬 상태.


저 질문을 받는 순간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이 상황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태워다 주는 건 어렵다는 말을 하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든거다. '아,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에게 저 큰 차에 자리가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그녀의 눈에는 당연히 차 안의 공간이 넉넉해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예쁘게 웃어주던 부부에게 거절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눈동자만 굴렸다. '나는 차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일단 남편이 오면 혹시 두 명과 그들의 짐이 더 탈 수 있도록 차 안의 공간을 조절 가능한지 물어보자.'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사실은 둘을 더 태울 수 있는데도 내가 잘 몰라 거절하게 되는거라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어색한 침묵. 이 화기애애함을 이어가고 싶어 미소는 유지한 채 머리만 열심히 돌렸다. 하지만 상황은 나의 의도와 반대로 흘렀다. 고민하느라 몇 초간, 혹은 몇 분간, 이어진 정적 덕분에 더할 수 없이 어색해진 것이다. 그 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신혼 부부 중의 남편과 (부인이 나에게 태워달라고 말할 때 남편은 잠시 로비 저쪽 편에 있어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체크인을 끝낸 남편이 거의 동시에 돌아왔다. 


"오빠, 우리 공항가는 날 이분들 태워줄 수 있냐고 묻는데...."까지 말했는데, 신혼 부부 남편이 바로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픽업 차량 벌써 예약해 놨어. 그거 타면 돼." 여기에서 대화 종료. 하아. 나는 거절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한거였는데, 바로 이어 ".... 우리 차에 공간을 더 만들 수 있을까?"를 물으려고 했던건데.... 결국 나는 태워줄 수 있냐고 묻는데 그저 망설이기만 했던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께림직하게 생각하는'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뭔가 말을 덧붙이기도 어색하고, 체크인도 끝난 터여서 그저 미소지으며 인사하고 헤여졌다. '혹여라도 또 마주친다면 자연스럽게 설명해야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준비까지 해두고, 호텔을 드나들 때마다 두리번거렸지만 한번 더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순간들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왜 그렇게 명료하지 못한가 하고. 왜 그렇게 거절을 어려워하는가 하고. 모든 부탁을 다 들어줘야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 어째서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건 핑계로 느껴지는걸까? 그러한 이유로, 더 성실하게 설명하면 할수록 더 구차한 핑계가 되는 악순환. 자주 나는 이렇게 결심하곤 한다. "최대한 말을 줄이고 간단히. 이유만 설명할 것. 할 수 없다면 더 빠르게 대답할 것." 하지만 또 같은 상황에 처하면 나의 짧은 답변에서 불친절함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슬금슬금 말이 길어지는, 그것이 내 문제의 굴레.


자, 중간을 찾아보자. 극단적으로 질질 끌고 질질 길게 쩔쩔매는 거 말고, 극단적으로 짧게 딱 끊어 말하는 거 말고. 적당한 템포로, 적당한 길이로. 정말이지, 중간을 하는게 제일 어렵다는 말은 진실 중의 진실.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지나고 후회하는 날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으니까. 그러니 오늘도 중간을 찾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수 밖에. 적당한 말, 적당한 친절, 적당한 순발력, 적당한 걱정... 과하게 친절하고 싶었던 마음이 가져온 참사들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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