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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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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Dec 22. 2023

쓰는 쏘냐의 시작점에서

2023년을 회고하며...

사진: Unsplash의engin akyurt

1년 내내 나이가 헷갈렸다. 작년에는 마흔이 되었다는 인식이 분명했는데, 올해는 왜 그렇게 헷갈렸을까? 자꾸 마흔 하나 말고 마흔이라고 답하고 싶었다. 마흔과 마흔 하나. 둘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였다. 이상하게 마흔 하나는 갑자기 폭삭 늙어버린 듯,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2023년은 마흔 하나가 된 나를 받아들이는 한 해였는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해였다.


쓰는 사람 쏘냐. 첫 책을 쓰던 해, 나는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쓰는 사람이라고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곧 '시작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시작했다.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의 성과가 따라왔다. 굳이 나를 규정하지 않는 날들이 좋았다. 그러다가 2022년, 큰 도전이었던 취업과 두 번째 퇴사를 경험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할 때라는 것도 깨달았다. 다양한 상황에서 내 키가 되어주었던 '선택과 집중'. 이번에는 좀 더 대대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 나는 쓰는 일에만 집중해 보자고 결심했다. 


나의 2024년은 쓰는 사람 쏘냐의 길을 다시 열어 첫 단을 쌓는 해였다. 덕분에 만난 2023 세 개의 감사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나의 두 번째 책 <아이를 키우니 팬클럽이 생겼습니다>가 출간되었다. 두 번째 책이라서 마음이 더 힘들었다. 첫 책이 나올 때는 잘 몰라서 무모했다. 책 한 권 세상에 나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의 나는 잃을 게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는 달랐다. 책 출간이라는 사건 하나가 얼마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지 이제는 안다. 게다가 첫 책 때와 달리 진지하게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다. 더 잘 써야 할 뿐 아니라, 더 잘 팔려야 한다는 압박이 커졌다. 


그 압박 때문에 2년이나 미뤄둔 일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계속 써야 할 사람. 그러려면 산을 피하지 말고 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출간이라는 피하고 싶었던 산을 다시 오르기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마음먹자마자 쓰기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출간 계약까지 이어졌다. 그 책이 올해 출간됐다. 수많은 고민 끝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면서 해왔던, 출간과 이후의 모든 활동들을 훌륭하게 끝낸 나를 칭찬한다. 출간이라는 도전이 쉽지 않은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누구보다도 크게 내가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두 번째, 의미 있는 북토크를 진행했다. 출간 후 독립서점에서 몇 건의 북토크를 했고, 앨리웨이 <동네살롱>에도 연사로 섰다. 그리고 경상남도 여성가족재단 양성평등주간 행사인 <마음카페> 북토크쇼에도 저자로 출연했다. 하나가 하나를, 또 그 하나가 두 개를 불러오는 과정이었다. 


첫 책을 내는 작가님들이 가끔 묻는다. "책 출간 후 북토크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사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일단 나는 북토크가 가능할 것 같은 곳에 찾아가서 묻는다. "곧 제 책이 나오는데 북토크가 가능할까요?" 그때 "YES"라 답해주는 분들과 함께 기획하고 시작한다. 일단 책을 들고 무작정 찾아가 책 소개를 하고 오면, 몇 달이 지나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북토크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가 경상남도 여성가족재단의 북토크 섭외 연락을 받았다. 모든 북토크가 내게는 의미 있지만, <마음카페>가 좀 더 특별한 건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이곳이 명확히 '여성'을 위한 곳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책을 내놓으면서 가장 닿고 싶었던 타깃은 나와 같은 엄마들이다. 그래서 출판사도 나도 '여성'을 위한 기관에 북토크 제안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이곳이 '재단' 그러니까 기관이라는 점. 아무래도 재단의 행사에 참여한다는 건 무게가 달랐다. 게다가 '양성평등주간' 행사라니. 내가 닿고 싶은 그곳에 딱 닿은 것 같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또 하나 특별했던 건, 섭외과정이다. 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내 북토크에 다녀와서 누군가 쓴 블로그 후기가 시작이었다고 말해주셨다. 그 글을 보고 나서 검색했더니 내 블로그가 있었고, 거기에 어디든 가서 북토크를 할 수 있다는 내 글이 있었다고. 나의 노력들이 한 땀 한 땀 닿아서 새로운 섭외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뿌듯하게 했다.


세 번째, 나의 글쓰기 프로젝트 "쓰는 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게 내 첫 번째 글쓰기 프로젝트는 아니다. 2020년부터 꾸준히 다른 플랫폼에서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타인의 플랫폼에서 진행하는 것과 내가 단독으로 시작하는 건 여러모로 다르다. 모객도 진행도 오롯이 혼자서 해야 한다. 기획단에서 의문이 생길 때 의견을 구할 곳도 없다. 전적으로 나만의 무게로 프로젝트를 끌어가야 한다. 수많은 부담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꽤 오래 미뤄온 일이다. 그런 일을 드디어 올해 시작했다. 1기를 지나 2기가 현재 순항 중이다.


이렇게 세 가지 사건을 골라놓고 보니 빼놓기 아쉬운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KAC 인증 코치가 된 일. 왜 갑자기 코칭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쓰는 쏘냐가 되기 위한 선택이었다. 쓰는 쏘냐는 혼자만 쓰지 않고 함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쓰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알기에 나누고 싶다. 그게 꾸준히 글쓰기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이유다. KAC 인증 코치 시험을 본 건, 글쓰기 프로젝트에 코칭을 접목시키고 싶어서다. 글쓰기는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오는 일. 그 과정에 더 좋은 질문으로 더 좋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코치가 되고 싶다. 


나의 2023년이 이렇게 흘러간다. 2024년에는 마흔둘이라는 나이에 좀 익숙해 질까? 그건 확신할 수 없지만, 또다시 최선을 다해 채워나가리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 쓰는 쏘냐가 되어 가장 좋은 건 내가 나를 더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니까. 나는 내가 늘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를 잃지 않는 하루하루를 원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믿는다. 나의 2024년에도 나는 늘 나로 존재할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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