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딱 좋은 시기일지도 몰라
지난 겨울, 우리 가족은 하와이로 여행을 갔다. 여행 첫 날, 역시나 나는 시차적응에 실패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디서든 금방 잠드는 남편과, 고맙게도 바로 시차적응을 해준 아들 둘은 곤히 잠든 밤. 침대에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퇴사 후 처음으로 나에게 수입이 생기는 그 타이밍. 어쩌면 내가 해보고 싶었던 그 일을 시작할 가장 좋은 시기일지도 몰라.'
여행을 떠나기 3주전 쯤, 나는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지난 몇개월, 나의 시간과 노력을 모두 갈아넣어 완성한 100장의 원고가 선택을 받은 것이다. 두근두근 출판사 대표님을 만났고 계약서에 싸인했다. 그리고 출발 하루 전, 퇴고를 마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꿈에 그리던 내 책이 드디어 세상에 나온다는 생각에 마음이 붕붕 떠있는 날들이었다.
그 여행의 첫날 밤 딱 떠오른 아이디어는 '기부'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특별히 더 선하다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다만 회사에서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담당했었기에, 그 분야에 조금 더 노출되었던 경험이 있다. 마케터로서는 흔치않게 퇴사 전 CSR을 담당했던 덕분에 언젠가 해보고 싶은 '아이템'을 마음에 품고 퇴사를 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위해 벤치마킹을 하다가 만나게 된 '핑크리본' 캠페인. 그 캠페인이 나의 소망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역시 신규 프로젝트 기획을 위해 나섰던 인터뷰에서 만난 미혼엄마들의 눈빛과 센터에서 들었던 아가들의 울음소리. 그 장면이 소망 위에 더해졌다. 미혼엄마와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나쯤 해보고 싶다는 소망은, 그때부터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이 딱 좋은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드디어 나에게 판매할 나의 물건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의 책이 나에게 수입이라는 것을 가져다 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리고 있는 프로젝트는 작은 기업 (1인기업, 지식판매자 포함)들이 모여서 하나의 캠페인을 펼치며 판매를 하고 수익을 기부하는 형태였다. 그런데 지금껏 나에게는 판매할 것이 없었으니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어이, 거기, 저랑 같이 기부하실래요?'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밤새 '지금이 바로 그 일을 시작할 때'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겁이 났다. 엄마로만 산 시간이 자그마치 7년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아무런 조직도 가지고 있지 못한 내가, 그런 일을 할 수는 있는걸까. 그와 동시에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러한 망설임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 나는 할 수 없다며 마음 깊숙히 넣어버리고 말았던 그 시간들. 책쓰기라는 도전을 해보았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시작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다음 날 아침이, 남편이 눈을 뜨자마자 나의 의지를 전했다. 내 입으로 한 첫번째 공표였다. 그리고나서 SNS에 공표하는 글을 올렸다. 용기를 내고싶어 이 글을 남긴다는 말과 함께, '기부캠페인'을 해보겠다고 명확하게.
이렇게 기부프로젝트 러브체인은 시작되었다. 이름조차 없고 진행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만 있었던 저 시절. 마음먹은 것을 버리지 않고 시작했기에, 올해 9월 기부프로젝트 러브체인은 멋지게 런칭할 수 있었다. 우리는 즐겁게 기부에 동참했고, 함께의 힘을 더욱 믿게 되었다.
개인이 기부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은 아니다. 솔직히 힘든 날도 많았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나는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도전을 통해 나는 나의 쓸모를 발견했다. 이 세상에서 나의 쓸모를 발견하는 일이란 행복 그 자체일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조금씩 함께'가 가지고 있는 힘을 알릴 수 있어서, 나는 너무나 뿌듯했다. 나 역시 '많이' 기부할 수 있는 이가 아니었기에 "괜찮아요. 우리 조금씩 함께 해봐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같은 사람이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얻을 수 있는 또하나의 의미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조금씩 손을 내밀어 세상에 희망을 내어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