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기부에도 이유가 필요하다

by 쏘냐 정

기부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부터 수혜자는 정해져 있었다. 바로 미혼모.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왜 콕 집어 '미혼모'냐고 누군가 물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네가 하는 프로젝트라 도와주고 싶지만, 그 대상이 미혼모라서 망설여져." 어쩌면 이 말이 정답인지도 모른다. 내가 꼭 미혼모를 돕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에 대한 가장 좋은 예시.


내가 여러 가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기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돕는 일을 꼭 한 번쯤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내 마음속에 들어온 그 사명감 비슷한 것. 그걸 무시해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baby-2416718_1920.jpg 출처: https://pixabay.com/ko/users/RitaE-19628/?utm_source=link-attribution&utm_medium=referral&u


사실은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만나본 적 없는 그녀들을 만난 건 회사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마케터였던 내게 맡겨졌던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업무. 보통 사회공헌 부서에서 하는 일들을 마케팅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미션이었다. 마케터로서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기회들이 생겼다. 한 번은 사회공헌을 연구하는 사외 조직으로 파견을 간 적이 있다. 마침 거기에서는 새로운 사회공헌 프로젝트 기획이 진행 중이었다. 우리가 생각한 몇 가지 프로젝트 후보들을 구체화하기 위한 사전조사. 그때 미혼모 센터를 방문했다.


아직 미혼이었고 당연히 아이도 없었던 나에게는 조금 낯선 만남이었다.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방문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나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눈빛을 만났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아기 냄새를 맡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했던 인터뷰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만은 강렬하게 기억이 난다. 경계하는 듯한 눈빛은 간절하고 순수했다. 그들이 용기 있게 선택한 그 삶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순수하고 순수한, 아기들과 함께였다.


당시 진행할 프로젝트는 하나였고 여러 개의 후보 중에 미혼모 관련 프로젝트는 선택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업에서 진행하기에 부담스러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첫째, 기업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대중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어린이라든지 암환우와 같이 대중들 누구나 공감할 만한 대상. 그런 대상을 돕는 프로그램이어야 공감받기가 쉽다. 인정받기도 쉽다. 게다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넘쳐난다. 굳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상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둘째,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홍보가 가능해야 함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미혼모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그것이 힘들다. 그들이 사회적 시선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림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는 건 기업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문제다.


당시 회사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글로벌 CSR 프로그램도 대상이 어린이였다. 그 프로그램을 정할 때 벤치마킹을 위해 다른 기업들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결과를 보면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이 많았다. 글로벌 프로그램이 없어 각 지법인이 알아서 하고 있던 프로그램도 취합해보니 대부분이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회사에서 만났던 미혼모와의 기억은 그저 거기에서 끝이 났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새로운 목표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이런 경험이 내가 미혼모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시작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것이 전부였다면 엄마가 되고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이 마음 역시 나의 것이 아니었다며 떠나보냈을 것이다. 엄마가 되면서 새롭게 만난 나의 삶 앞에서 나는 그들을 다시 떠올렸다.


나름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하던 잘 나가는 여자였던 내가, 어느 날 전업주부가 되었다. 비록 회사는 그만뒀지만 아이만 키울 수는 없다며 무언가를 배우러 나간 자리, 거기에서 나는 자기소개조차 어려운 나를 만났다. 그저 엄마라고만 말해야 하는 그 자리가 너무 힘겨웠다. 하필 같은 그룹에 여전히 좋은 회사를 다니는 아이가 없는 또래 여자가 있었다. 의도하지 않게 자꾸 그녀와 비교되곤 했다. "역시 ㅇㅇ다니는 사람은 다르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기분은 바닥을 뚫고 들어갈 만큼 다운됐다. 불과 몇 달 전 내가 듣던 얘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은 그저 남의 것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 날 발표 후 교수님으로부터 자료공유를 요청받은 건 나였다. 지금껏 이런 시각에서 정리한 자료가 없었다며 앞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그건 내 발표내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몸담는 조직이 없어지면서 주변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보던 타인의 안경이 벗겨지면서 나는 자존감의 추락을 경험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의 난 이성이고 뭐고 그저 지하에 숨거나 가시를 잔뜩 세우거나 두 가지밖에 할 줄 몰랐다. 진짜 내가 누구인가 보다 타인의 시선이 더 중요한가 보다 생각하던 어느 날, 다시 그녀들의 눈빛이 떠올랐다.


하아, 나는 그저 당연하고 평범한 이 눈빛이 이렇게나 힘든데 그녀들은 어떨까. 정말 대단한 사람들. 세상의 편견을 너무나 뻔히 알면서도 아이를 선택한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 존경의 마음이 절로 생겼다. 세상의 많은 눈들 속에서 그녀와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까.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돕고자 하는 이들이 미혼모라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던 이는 처음부터 그들이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인식 때문에 큰 조직들은 그녀들을 도와주기 힘든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가지게 된 일 또한 어찌 됐든 그들이 한 일이다. 하지만 그 아이를 낳기로 한 선택은 또 다른 이야기. 용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선택. 그 선택을 한 이들이 지금 미혼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선택에는, 그 용기에는 응원을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엄마로 살다 보니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그녀들의 수고로움 또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나는 가사와 육아를 적극적으로 돕는 남편과 산다. 그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이다. 이런 남편과 살며 육아를 하는데도 힘든 날이 참 많다. 남편이 없다면 얼마나 더 힘들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더 돕고 싶어 졌다. 그녀들을.


그리고 마지막 이유, 나는 육아서를 썼고 계약을 했고 곧 출간 예정이다. 이 책을 계약하고 최종 퇴고 본을 넘기기 위해 퇴고를 하던 중에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책에 들어있는 '아빠 육아' 이야기. 그 파트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미혼모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한부모 가정의 부모들에게, 이 파트는 아픈 파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들은 이 책이 아픔이 될 수 있다. 어. 쩌. 지. 고민을 했지만 그 파트를 뺄 수는 없었다. 나의 육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 또 많은 이들이 그렇게 여기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지만 마음에 남은 이 어쩔 수 없는 부채감. 그것이 의지에 불길을 당겨주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어쩌면 위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 망설여지곤 했었다. 돕겠다는 나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나는 돕는 사람이지, 그 수혜자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나의 프로젝트가 어찌 비칠까, 나의 선의가 왜곡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에 켜켜이 쌓은 이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돕는 일도 결국은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할 때 그 일을 끝까지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에게는 이런 이유들이 그랬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소명감 같은 것이 생겼기에. 내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내 마음이 기쁘고 싶어서.


그래서 권해본다. 이런 일을 계획한다면 마음에 꼭 물어보라고. 그 이유를. 그리고 그 일이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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