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기부프로젝트가 뭐 어때서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선하게 쓰겠다는 의지 아니겠어요?

by 쏘냐 정

기부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날.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기획을 시작하면서 그 옛날 프로의 마음을 다시 장착하기로 했다. 나에겐 분명 프로였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부서 배치 면담을 했었다. 사실 마케팅이란 영역이 아주 방대하다보니 마케팅 부서도 한두개가 아니었다. 워낙 큰 회사이다보니 더 그랬다. 입사 전 마케팅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던 나는 면담 앞에서 내 목소리를 지킬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생각한 딱 그 일을 하고 싶었고, 그들이 제안하는 다른 부서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로 가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 당연히 나는 쉽사리 그리로 가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끝까지 버텨서 결국 성공했다. 내가 원하는 그 부서로의 배치. 그렇게 나는 글로벌마케팅팀에서 제품의 론칭 전략을 세우는 부서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언제나 일은 많았고,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덕분에 매일 피곤하고 매일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참 즐거웠었다. 세계 최초인 제품들의 론칭을 담당하고 홍보를 실행하는 일은 힘들지만 짜릿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사 글로벌마케팅실로 전배 발령이 났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던 조직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옮겨간 그곳에서 나는 CSR이란 업무를 부여받았다.


CSR. Corporate Social Respensibility. 음. 여기는 마케팅팀인데 왜 사회공헌을 하고 있는거지? 실제로 당시 그 조직에서도 이제 막 이 일을 시작한 참이었다. 그래서 담당인력도 없던 그 타이밍에 딱 내가 전배를 갔고 그 자리에 낙점되었던 것이다. 물론 회사 내 사회공헌 조직은 따로 있었다.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부서 역시 따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팅팀에서 진행하는 CSR이란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것 역시 당시 내가 해야 할 업무 중의 하나였다.


마케터라는 자리에 애정이 있었다. 입사 부서배치 면담, 대부분의 신입사원이 인사팀의 설득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무식한 듯 끝까지 우길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마케터이고 싶었다. 마케터로 사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CSR이라는 업무는 사실 달갑지 않았었다. 물론 그건 선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나는 그저 마케터이고 싶었다. 마케팅과 CSR의 결합이라니 내가 생각하는 그 마케팅과 먼 느낌이었다.


한국의 대기업이지만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 그 곳에서 나는 전세계에서 동시 진행할 글로벌 CSR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했다.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는지부터,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것을 분석하는 것부터 나의 일은 시작되었다. 큰 회사였고 큰 조직이었지만, CSR을 전문으로 하는 마케터는 처음이었다. 전세계 지법인에서 각자 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모두 분석하고, CSR에 앞선 회사들의 벤치마킹 포인트들을 찾았다. 그렇게 우리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회공헌을 담당했지만, 마케터라는 본분은 녹아있었던 그때의 그 프로젝트. 덕분에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고 기획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마케팅의 시각에서 CSR을 기획하는 일은 새로운 시도였기에 완전 처음으로 돌아가 조사부터 기획, 가이드 작성, 실행까지 그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큰 수확은, 마케터이기 때문에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기여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업의 사회공헌.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결국 장삿속에 지나지 않을거라고. 그런데 내가 기업에서 사회공헌을 담당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이 홍보효과를 불러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비난만 하기에는 긍정적인 효과 역시 크다는 것을. 기업에는 돈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그 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다.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공헌 활동을 어여삐 봐주는 소비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돈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어쩔 수 없는 기업의 생리. 그렇다면 나는 사회공헌 활동을 홍보 요소로 사용하는 것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기획의 바탕이 진정 선한 의도인가. 물론 아무도 모르게 몰래 하는 선행은 더없이 귀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낸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우리는 고민했다. 진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기획해야 하는가. 그것을 회사가 오래 지속해나갈 수 있는 형식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우리 회사의 CSR 프로그램을 보여주기 식이라고 비난했지만, 내가 그 안에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기획하는 단계에서 진심을 다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사항이 하나 있다. 선한 의도를 지닌 회사를 응원하는 소비자가 많아질 때의 긍정효과가 그저 돈의 흐름에만 있는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회공헌 활동에 열심히인 회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지속가능한 성장'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은 결국 기업에게도 득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환경보호 활동이다. 협력업체와의 상생 역시 여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의 사회공헌 활동은 하다보면 소비자의 관심과 상관없이 지속하게 되기도 한다.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대기업에서 마케터의 자격으로 사회공헌 업무를 하면서 나는 이런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한 일을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가진 긍정효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마케터인 내가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나고보니 무엇보다도 가치있었던 그 시간들. 그래서 나는 기부프로젝트 러브체인을 시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무것도 아닌 나의 기부프로젝트가 개인프로젝트가 아닌 함께 프로젝트가 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뒷담화를 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느 마케터의 장삿속이 아니겠냐고.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이해도 된다. 그때도 그런 욕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는 이 기부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마케터라는 나의 경력은 결코 실이 아닌 득이라고 생각한다. 선한 의도를 가진 이들이 알려지기를 바란다. 소비자들이 그들을 알아봐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선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 선한 의도가 꼭 필요한 이들에게 흘러들어가는 통로가 조금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기부프로젝트 러브체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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