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우리나라가 이겼어.

여기는 올림픽 현장입니다.

by 쏘냐 정

"우와 와와와~~~~~"

"우리나라가 이겼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돼?"

"얼른 일어나. 바로 뛰어나가 차를 타고 출발한다."


이 곳은 2012년 8월 5일 밤, millennium Stadium Cardiff.

대한민국 축구팀이 영국을 이기고 4강 진출을 확정하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스포츠 마케팅 담당자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우리 부서의 옆 파트에서 담당하던 일일뿐. 2012년엔 런던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고 한동안 부서의 모든 업무는 2012 런던올림픽 위주로만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상무님이 나를 불렀다. "정대리, 영국 좀 가야겠어." "네?" "지금 업무 담당자가 임신 중이라서 서포트할 인력이 필요해." 그렇게 런던올림픽 현장으로의 출장이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결혼한 지 이제 막 3개월. 장기 출장은 그리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나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 올림픽이란 세계인의 축제.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현장이지만, 나는 그냥 TV로 보는 게 더 좋았다. 게다가 이건 자유로이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다. 업무를 받아 떠나는 출장. 모두가 신나는 현장에서 일을 하는 건 더 싫었다. 하지만 지시는 떨어졌고 나는 준비해야만 했다.


이런 출장 지시는 언제나 급하게 떨어진다. 첫 출장은 런던올림픽 개막 전 성화봉송 기간. 성화봉송은 꽤 오래 진행된다. 그 중간에 투입된 나는 2주 영국 체류, 한국에 돌아와 3일, 다시 영국에서 열흘. 이렇게 출장이 이어졌다. 어느새 성화봉송은 끝나고 올림픽 개막. 성화봉송팀에 합류했던 나의 출장도 끝인가 보다 했던 그때. 다시 한번 출장 지시가 떨어졌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영국에 도착했다. 이번엔 런던 한 복판에 딱. (성화봉송은 성화를 받아 런던으로 들어가는 여정이기 때문에 소도시들을 돌곤 했었다.) 이미 올림픽이 개막한 런던은 떠들썩했다. 근데 이 서포트라는 위치가 참 그렇다. 출장은 왔는데 주 업무는 없다 보니 이리저리 필요한 일들을 돕는데 일을 하면서도 잉여인력인 느낌. 그때는 그게 참 싫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좋은 기회. 덕분에 나에게 이 출장은 출장이라기보다 여행으로 기억되는 게 아닐까 싶다. 업무는 있었으나 책임은 덜했으니까.


"8월 5일 밤 축구경기 보러 갈 사람?" 여기는 런던이고 지금은 올림픽 중이고 나는 이미 현장에 와있다. 그렇다면 경기 하나쯤 보면 좋지. 얼른 손을 들었다. 이런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VIP 들과 관람하기 위해 미리 표를 사두게 된다. 올림픽에는 각본이 없다. 몇 위전에 누가 출전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사전에 미리 사는 표에 누가 출전할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저 언제 어디에서 진행되는 몇 위전 표를 구매할 뿐. 지금 관람 예정인 경기 역시 그렇게 미리 구매한 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스알못까지 손을 들게 됐던 건, 그 경기가 바로 한국의 경기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올림픽 8강에 한국이 올라있었다.


영국 대 한국. 8강전. 저녁에 진행되는 경기여서 사무실 업무를 마무리하고 차에 올랐다. 런던에서 거의 3시간을 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물었다. "근데 영국에서 하는 영국 대 한국 경기. 만약에 한국이 이기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과격한 영국 축구팬들이 난동을 부렸다는 기사를 접한 직후였다. 그리고 대부분이 영국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순간에 한국이 이긴다면? "만약에 한국이 이긴다면 얼른 도망가야지."


Photo by Emilio Garcia on Unsplash


사실 그런 대화를 하면서도 한국이 이길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기는 영국이고 원래 홈경기는 유리하다. 게다가 영국팀 아닌가? 그저 올림픽에서 한국팀이 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우리가 우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퇴로를 고민해야 했다. 마지막 승부차기. Goal in!! 4대 5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옆에서 소리쳤다. "다들 얼른 일어나서 나가. 차량이 바로 게이트 앞에 오기로 했어. 얼른 나가서 바로 차를 타고 출발한다."


우리나라가 우승을 했는데. 4강에 진출을 했는데. 그 감격적인 순간. "우와"하고 오래 환호할 시간 따위 없다. 얼른 일어나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탑승. 모두 탔는지 확인하고 바로 출발. TV로 이 경기를 관람하던 이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을 그 시간, 우리는 싸한 분위기를 실감하며 달려 나가고 있었다. 오버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여행이 아닌 출장이고 업무였다. 사소한 사고도 조심해야 했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우리는 환호했다. 우리끼리 우승의 감격을 주고받았다.


그리 달갑지 않았던 올림픽 출장이 감격스러워진 순간이었다. 정말이지 세상에 섣불리 장담할 일이란 하나도 없다. 이 출장이 이리 오래 행복한 기억이 될지 어찌 알았을까. 나에게 올림픽은 언제나 런던에 머물러 있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하늘, 그날의 거리, 그날의 환호와 야유. 모든 것이 참 그립다. 아마 다시는 가지지 못할 그 기회가 그 해 나에게 주어졌음을 다시 한번 감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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