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이 무서워졌다
"언니 거기서 뭐해?"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제야 나는 화장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이곳은 2018년 6월의 오사카. 진도 6.1의 지진이 발생했다. 시간은 오전 8시경. 여행의 마지막 날. 며칠의 강행군으로 피곤한 우리는 아직 자는 중이었다. "드르르르르륵" "와장창창창창창" 이상한 흔들림과 불안한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화장대 위의 물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언니, 지진이야." 한번 잠들면 잘 깨지 않는 동생도 깨어있었다.
동생과의 해외여행.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가까운 자매다. 내가 대학 3학년, 동생이 대학 1학년이던 그 해. 우리는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그리고 그 21일을 보내고 와서 나는 선언했다. "다시는 내 동생이랑 둘이 여행 같이 안 가." 우리의 유별난 관계가 문제였다. 동생은 "언니는 제2의 엄마 같아."라고 말하곤 했었다. 언제나 언니는 최고라고 말하는 고마운 동생이었다. 함께 여행의 문제는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언니의 엄마 노릇에는 한계가 있었다. 힘들었던 배낭여행에서 그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다시는 동생과 둘이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예외가 생겼다. 그건 바로 일본 여행. 동생은 일본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대학 때 일본어를 전공하지는 못했지만 일본어를 진심으로 배웠고, 온라인을 통해 일본인 친구도 사귀었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나보다 더 잘 알았다. 간단한 대화도 가능했다. 언제나 언니를 엄마처럼 여기는 동생이었지만, 유일하게 언니보다 주체적 자아가 되는 경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일본 땅 위에 서있을 때였다.
그렇게 단 둘이 일본 여행을 경험하고, 이번에는 이모와 사촌언니까지 넷이서 일본에 와 있었다.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그 지진을 만난 것이다. 나는 당황했고 동생은 침착했다.
지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6살 아들내미가 유치원에서 '지진대피훈련'을 했다며 알려줬던 내용이 떠올랐다. "엄마, 지진이 나면 일단 머리를 감싸고 단단한 것 밑으로 대피해야 한대."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대 밑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서 몸을 욱여넣을 수 있는 위가 막힌 공간이라고는 화장대 밑 밖에 보이지 않아서. 자다가 깨더니 벌떡 일어나 화장대 밑으로 몸을 욱여넣는 나를 보고 동생은 말했다. "언니, 거기서 뭐해?"
하하, 지진대피훈련이라는 게 뭔지 들어보지 않은 동생에게는 얼마나 우스운 모습이었을까. 슬금슬금 흔들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비록 보는 사람은 동생뿐이지만 너무 민망하기도 해서 화장대 밑에서 다시 기어 나왔다. 동생은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니, 오사카에는 원래 지진이 잘 안 나는데 진도 6의 지진은 처음이래." 나중에 알아보니 1923년 1월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 큰 지진은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엔 5.9로 발표되었던 진도는 이내 6.1로 수정 발표되었다.
TV 속에는 무너진 도로, 무너진 건물이 즐비했다. 사망자, 부상자 소식이 계속 업데이트되었다. (총 네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날 저녁 기준 358명의 부상자가 집계되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공항으로 가는 길이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 으헛. 우리는 오늘 한국으로 가야 한다. 오후 비행기가 예약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바로 오늘. 우리는 공항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공항에 못 간다고 해도 방법은 있다. 비행기 일정을 조정하고 호텔 1박을 더 알아보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오늘 꼭 이 땅을 떠나고 싶었다. 도심을 덮친 지진. 여진이 몇 번 더 올지 모른다고 여기저기서 떠들고 있었다. 이 공포를 한번 더 경험하기 전에 나는 떠나야겠다.
다행히 마구 흔들리던 방은 조용해졌고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공항에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
* 지진으로 멈춘 도시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의 여정은 다음 글에서 이어갈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