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러시아에 가고 싶었던 이유

러시아 행의 최종 목적지

by 쏘냐 정

러시아 문화 수업 시간이었다. 한 학기 동안 참 많은 그림을 보았다. 러시아답게 대체로 어두웠던 그 그림들 중 딱 하나의 그림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로 미하일 부루벨의 "앉아있는 데몬"이라는 그림이었다. 데몬은 악마라는 뜻. "앉아있는 악마"라고도 불린다.

미하일 부루벨 (Mikhail Bruvel) , 앉아있는 데몬 (1890)

분명 이 그림 속에 앉아있는 이는 악마다. 그런데 그의 슬픔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져서 악으로 느낄 수가 없었다. "악마"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 어떤 주인공보다 더 "인간"같아 보였다.


이 그림은 러시아 산문의 아버지,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의 서사시 "악마"에 영감을 받아 그린 "악마" 연작의 하나이다. 연작의 그림들은 대체로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늘에서 추방당한 천사, 돌아갈 곳 없이 죽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악마. 하늘에도 지상에도 속하지 못한 영혼. 그러한 악마의 이야기이니 밝을 리 없다.


끝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사랑이 찾아온다. 상대는 타마라 공주. 데몬은 그녀의 정혼자를 죽이면서까지 타마라 공주에게 직진한다.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악마를 대하던 타마라 공주였지만 결국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딱 하룻밤 사랑의 시간을 보내고 죽음을 맞게 된다. 신은 악마에게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악마에게 사랑을 허락한 타마라 공주를 용서하지 않았다. 하늘로 올라간 타마라 공주의 영혼. 결국 데몬은 다시 혼자 남았다.


이 그림은 그 이후의 데몬이다. 끝낼 수 없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 고독의 시간들. 그 끝에서 만난 사랑마저 하늘로 보내고 난 후의 그. 그에게는 신에 대한 분노마저 남지 않았다. 그저 부서진 채로 그는 앉아 있었다. 그의 눈빛은 공허로 가득 찼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부유하던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들 했다.


내가 이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 건, 지독한 외로움이 이 그림 가득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크린을 통해 본 그림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아우리가 퍼져 나왔다.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생각했다. "데몬" 그는 정말 악마인 걸까? 어쩌면 그를 철저한 고독 속으로 밀어 넣는 신과 인간들이 진짜 악마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데몬을 만들었다 데몬이 되었다 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데몬과 인간은 그저 서로 가해와 피해를 주고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데몬"이 너무나 안쓰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레르몬토프의 "데몬"에 비해 부루벨의 "데몬"은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한다. 부루벨이 그렇게 생각하며 그렸기에 나에게 그 아픔이 그대로 전해졌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부루벨은 정말 천재잖아!' 더 놀라운 것은 그림 속의 데몬 주변의 저 아름답지만 음울한 색채. 그 어느 곳을 보아도 똑같은 아픔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아, 나 이 그림 실제로 꼭 보고 싶어.'


그게 내가 러시아 교환학생을 꿈꾸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교환학생의 이유가 고작 그림 하나 때문이라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러시아 모스크바를 갈 가장 쉬운 방법은 교환학생이라 느껴졌고. 러시아 모스크바의 뜨레짜꼬프 갤러리 (Tretyakov Gallery)는 내 러시아 교환학생의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 실제 러시아에서 만난 "앉아있는 데몬"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 볼게요.^^

keyword
이전 10화"지진? 그럼 엄마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