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그럼 엄마 죽었어?"

아냐 아냐. 엄마 오늘 꼭 한국으로 돌아갈게.

by 쏘냐 정

*이 글은 이 링크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요. 이 글부터 읽고오시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 여행중에 지진을 만난적 있나요?: https://brunch.co.kr/@jsrsoda/63





"그럼 엄마 죽었어?"


엄마가 있는 곳에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6살 첫째의 첫마디는 이랬다고 한다. 나를 화장대 밑으로 들어가게 했던 지진대피훈련. 그때 지진의 위험성에 대해 너무 많이 봤나 보다. 듣는 순간 섬뜩한 이 말을 하면서 아이는 또 얼마나 놀랐을까. 오늘 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얼른 집에 가서 아이를 안심시켜줘야지.


trinity-moss-CwlFCanvxr8-unsplash.jpg Photo by Trinity Moss on Unsplash


우리는 오늘 꼭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런데 TV 뉴스에서는 자꾸 보여줬다. 공항으로 가는 길이 무너져버린 장면을. 물론 처음부터 차로 이동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길이 무너질 정도라면 다른 방법이라고 무사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시간 동생은 일본인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친구는 우리가 해석하지 못한 기사들까지 해석해서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마도 검색을 통해 찾았을 공항에 갈 방법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지금 어느 역 앞에 가면 공항 가는 교통편 티켓을 판대요. 어느 어느 선은 운행을 안 하고 어느 어느 선은 지금은 운행 안 하지만 티켓을 판매 중이래요. 몇 시 정도면 재개될 예정인가 봐요. 다양한 정보들이었다.


일단 옷을 챙겨 입고 거리에 나섰다. 어떤 표라도 일단 구해야 했다. 오늘 공항에 가려던 사람이 하나둘은 아닐 터. 남아있는 공항행 열차표에 몰릴 테니까.


예상대로 호텔 엘리베이터는 멈춰있었고 계단을 찾아야 했다. 밖에 나와보니 생각보다 바깥세상은 평온했다.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고 상인들은 지진으로 떨어지고 부서진 것을 치우느라 바빴지만 요란스럽진 않았다. 다만 그 장면이 우리에게 슬픔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우리의 쇼핑을 모두 마지막 날로 미뤄놨었기 때문. 마지막 날 쇼핑을 하려던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뭐. 일단은 쇼핑이고 뭐고 공항으로 가는 교통편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공항으로 가는 열차를 타는 역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많아졌다. (그사이 도로가 재정비가 되었던 건지 우회도로가 있었던 건지 기억은 좀 가물가물하지만) 그 열차 역 앞 택시 정거장의 줄은 역을 한 바퀴 돌만큼 길었다. 우리도 얼른 짐을 싸서 나와 이 택시를 타야 하는 건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의 비행시간은 너무 많이 남았고,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다. 최대한 열차를 알아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가까웠던 그 열차역 안은 북적거렸다. 그리고 모든 열차가 중단 상태였다. 미리 표를 발행하는 시스템도 아니었다. 그때 거기에서 정보를 하나 얻었다. 걸어서 30분 정도 가면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표를 발급 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출발. 6월 말, 태양은 너무 뜨거웠고 물 하나 챙겨 오지 못한 우리는 목은 탔지만 쉴 시간이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그 표를 구하지 못할까 봐. 사촌언니와 나와 동생. 셋이서 지도를 찾아가며 경보하듯 걸었다. 마침내 도착. 그리고.... 버스 운행이 중단돼서 표를 팔지 않는다는 비보를 접했다.


하아. 이제 방법이 없었다. 이러다 안되면 짐을 싸서 나와 택시를 타는 수밖에. 어차피 비행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기다렸다가 택시라도 타자. 그사이에 또 추가 여진은 오지 않겠지? 그러다가 공항 가는 길이 또다시 다 폐쇄되진 않겠지. 마음은 불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걸.


이쯤 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어차피 나는 이 땅 위에 있고 우리의 비행기는 시간이 돼야 뜰 테고. 이제 그냥 남은 몇 시간 지진이 지나간 이 도시라도 둘러보기로 했다.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오전이 다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어있었다.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 둘러보니 백화점도 큰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았던 오전과 달리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끝내 우리가 꼭 보고 싶었던 백화점은 문을 열지 않았지만) 문을 연 아무 데나 들어가 햄버거를 하나 사 먹고, 호텔로 향하며 문이 연 곳을 찾기 시작했다.


오오. 빅카메라가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라도 쇼핑을 좀 해야지. 마지막 날은 쇼핑의 날. 뭐라도 사야만 했다. 이 불안하고 아쉽고 헛헛한 마음은 쇼핑으로라도 보상하고 싶으니까. 빅카메라에 들어가 아이들 장난감을 잔뜩 골랐다. 그곳에서 남아있던 엔화를 최선을 다해 탕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항 가는 길". 진짜 공항 가는 길은 어땠을까? 하하.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허무했다. 오전에 호텔에서 잠이라도 더 잘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오후가 되니 열차와 지하철이 대부분 정상운행을 시작했고, 만약을 대비해 일찍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선 우리는 적당한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탈 때까지 혹시라도 그사이 여진이 와서 비행 편이 취소될까 조마조마했지만 그 역시 기우였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휴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다시는 일본 여행은 가지 않을 거야."


분명 오사카에는 지진이 잘 오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는 관측 이래 최고였다는 지진을 만났다. 하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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