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거대한 악마를 만났다.

언젠가 또 만나고 싶은 악마

by 쏘냐 정

* 이 글은 아래 글에서부터 이어지는 글이에요. 먼저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아 링크를 남깁니다.

- 내가 러시아에 가고 싶었던 이유: https://brunch.co.kr/@jsrsoda/65


러시아로의 교환학생을 꿈꿨지만 몇 년째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교환학생 TO는 0이었다. 4학년 1학기. 교환학생을 갈 수 있는 마지막 학기. 그때 운명처럼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 교환학생 자리가 3개나 떴다.


'교환'학생이 성립하려면 양쪽 학교 서로 간에 가고자 하는 학생의 수가 맞아야 한다. 몇 년 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우리 학교로 오고자 하는 지원자가 없었고.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도 교환학생을 보낼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노어노문학과 학생으로 지냈던 2년 반 동안 교환학생 지원을 하지 못한 이유였다.


노문학을 너무 사랑했지만 노어는 너무 힘들었던 나는,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전과를 준비했다. 그렇게 내가 신문방송학과 전공자가 되고 나서야 러시아 교환학생의 문이 다시 열렸던 것이다. 전공자만 지원 가능한 자리. 알면서도 나는 일단 지원서부터 작성했다. 제출하러 들른 과 사무실에서 처음 들은 답은 예상대로였다. "타과생의 지원서는 받을 수가 없어요." 결국 제출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전공자들도 몇 년을 기다렸던 자리였다. 교환학생을 원하던 노어 전공 동기들이 결국은 자비를 들여 어학연수를 떠나는걸 나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진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던 친구들은 이미 러시아로 떠났기 때문일까. 운이 좋게도 나는 마지막 날 남은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기숙사는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 건물이 가진 역사는 우리를 감탄하게 할 웅장함을 남겼다. 그리고 역사라고 불릴 만큼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시설은 늙고 늙었다. 그래도 나는 그 모든 것이 좋았다. 딱 러시아다웠다. 왠지 모르게 낭만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브루벨의 "앉아있는 데몬"을 보러 갈 수 있다. 모스크바에 도착을 하기만 하면 바로 달려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러지 못했다. 당시의 러시아는 스킨헤드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유색인종을 테러하는 그들이, 지난 학기에는 지나가는 중국 친구에게 불을 던졌다 했다. 내가 도착하기 전 주에는 어떤 유색인종 꼬마가 지하철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지하철을 탔는데 스킨헤드가 보이거든 바로 내리라는 경고도 들었다. 러시아 지하철은 칸과 칸 사이 이동이 불가하다. 지하철 안에서 스킨헤드를 만나면 다음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기 전까지 퇴로를 차단당한 채 당해야만 한다.


절대 혼자 외출하지 말 것. 어두워지기 전에 기숙사로 돌아갈 것.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진 경고 중 하나였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 쉬이 혼자 갈 수가 없었다. 막 도착했던 2월이 지나고 조금씩 날이 풀리던 봄날. 드디어 지인들과 길을 나섰다. 트레차코프 갤러리로.


사업가 파벨 트레차코프가 기증한 작품들로 채워진 곳. 트레차코프는 그림을 보는 기쁨을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들을 기증했다고 한다. 트레차코프가 수집한 러시아 미술과, 그의 동생이 가지고 있던 서유럽 미술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매년 15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국립 트레차코프 미술관". 동선을 따라 걷다 브루벨의 그림을 발견했다.


데몬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왜인지 데몬이 전시되어 있던 그 방은 휑하고 추운 느낌이 들었다. 그게 벌써 17년 전이니, 지금도 같은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너무 넓어서 마주치지 않아서인지. 그 방 안에 서서 한참을 보는 동안 혼자가 된 느낌이 들었었다.


큰 그림을 한 번에 모자면 뒤로 물러서야 했고, 데몬의 표정이나 표현된 색채가 궁금할 땐 다시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울렁거렸다. 세상의 모든 고독이, 가까이하고 싶지만 다가서지 못하는 슬픔이. 데몬이 아닌 인간들에게도 필연적으로 주어진 굴레 같은 아픔들이 그 방 안을 가득 채운 듯했다.


처음 그곳에서 데몬을 보고 나오며 몇 번이고 더 와야지 생각했었다. 학기만 끝나면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매일이라도 가야지 생각했었다. 학기가 끝나면 바로 응급실에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모르고. (러시아 응급실 여정이 궁금하다면 이 링크로 https://brunch.co.kr/@jsrsoda/55) 결국 응급실을 거쳐 입원한 그곳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퇴원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일주일 남짓의 시간 사이에 트레차코프 갤러리에 한번 더 들렀다. 러시아에서는 '뜨레짜꼬프스까야 갈레리아'라고 부르는 그곳.


브루벨의 데몬 앞에 두 시간가량을 서있었던 것 같다.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작별인사를 했다.


러시아에서 돌아오면서 책들은 거의 다 버렸다. 그래도 딱 두 권. 버리지 못한 책이 있다. 하나는 "러-영 사전". 한국에서는 생각보다 구하기 어렵고 비쌌기에. 그리고 또 한 권은 브루벨의 화집이다. 처음 이 화집을 발견했을 땐 첫사랑을 만난 듯 설레는 기분으로 바로 구매했더랬다. "데몬"이 있는 페이지를 찾아 폈을 때 실망의 깊이도 그만큼 컸더랬다. 직접 봤을 때의 감동을 1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의 흔적이라도 가지고 있고 싶었기에 소중히 한국까지 가지고 왔다.



결혼을 하면서 내 짐을 한번 더 정리했다. 몇 번의 정리에도 브루벨의 화집은 여전히 내 책장에 꽂혀있다. 이 글을 쓰면서 가만히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그사이 화집 모서리의 색마저 바랬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더 트레차코프 갤러리에 가야지. 페테르부르크는 영영 못 가더라도. 러시아의 대표로 꼽히는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는 가지 못하더라도. 모스크바는 꼭 다시 한번 가고 싶다. 브루벨의 "데몬"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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